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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PRICORN Mar 13. 2023

태도의 교차로

그 태도는 내가 만드나 상황이 만드나.


경희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전업주부로 평범한 삶을 살고있던 그녀에게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소식이 찾아왔다. 그녀의 남편 선호가 암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3기, 약 3cm의 크기의 악성 종양은 그녀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었다. 그녀는 남편을 붙잡고 울었다. 오빠 아파서 어떻게 라는 말을 입에서 되뇌었지만 속으로는 무엇보다도 그녀의 안위가 걱정이 됐다. 남편의 암은 2.5기 였다. 생존 성공율이 이미 10% 내외 였으며 길어봐야 3년 이라고 했다. 마흔살의 선호는 벌이가 꽤 넉넉했으나 남편이 모은 돈과 집으로 평생 살 수 있을리 만무했다. 그녀는 답답했다.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는 어느정도 보험 적용이 됐으나 더이상 쌓이는 생활비보다 나가는 지출이 더 많은 상태였다. 그녀에게 남편은 더이상 짐 덩어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의 사이는 썩 나쁘지 않았지만 막상 현실에 문제가 닥치자 그녀의 눈에는 남편의 단점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키워야 할 아이들이 아직도 두명이었다. 아이들의 교육비부터 앞으로 아파트 대출금까지 앞으로 지출 될 수많은 돈 많이 그녀의 눈 앞을 아른 거렸다. 


암을 선고 받았지만 몇 주간 선호의 건강은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고 그녀는 그저 남편이 긴 연차를 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1차 항암을 받은 후 남편의 건강이 빠르게 악화됐다. 178에 78키로 정도 나가던 건강한 체격의 남편은 64키로로 그녀보다도 더 마른 몸을 가지게 됐고 부쩍 수척해졌다. 처음에는 그녀도 남편 옆에서 잘 될 것이라고 우리 같이 해결해 가자고 손을 부여잡고 말했었다. 물론 그것도 어느정도는 그녀의 진심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은 그녀의 오판이었다는 것을 그녀 몸소 깨달았다. 그녀는 그에게 들어가는 모든 돈이 아깝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회피를 하고자 한 경희는 갑자기 선호 병, 즉 암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다. 당신이 담배를 피워서 그런거 아니야, 집의 DNA가 문제인 것은 아닌가, 그의 할아버지가 암으로 빨리 돌아가셨나. 그녀는 현재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원인을 찾기시작했다. 원인을 찾는 과정은 선호에게는 폭력이었다. 그저 그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위로였을 뿐이었다.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에 단 2시간을 마주하던 부부는 이제 12시간 이상을 붙어 있어야 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대화는 점점 차가워 지기 시작했다. 선호도 마음이 복잡했다. 앞으로 자신이 죽고 난 뒤의 경희와 아이들이 걱정됐다. 그리고 항암을 하면서 그에게도 육체적 고통이 잇따랐다. 밥을 먹는 족족 토했다.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배는 더이상 고프지 않았다. 밥을 잘 먹지 못하니 살은 빠졌고 체력이 약해졌다. 약해진 체력은 암이 활개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와중에 시작된 경희의 잔소리는 그의 마음을 더 병들게 했다. 외벌이었던 것을 후회한적이 없던 지난 10년 간의 세월이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해 돈을 벌었는가. 이미 육체적으로 병들어가던 선호는 마음까지 병이 들기 시작했다. 처음 시도한 항암은 실패로 돌아갔고 이는 선호와 경희 부부 에게 악재였다. 38평의 그들의 포근한 보금자리는 선호와 경희 둘 모두에게 지옥 같은 곳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더이상 회사를 가지 않는 선호의 집에는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선호의 교우관계는 나쁘지 않았다. 그들은 올때마다 각종 몸에 좋은 먹을 것과 선물을 사가지고 왔으나 경희는 속으로 생각했다. 


‘저 것들을 줄 바에는 돈으로 주지’  


그의 사촌들과 친인척들이 와서 그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그녀에게 남편을 잘 챙겨줄 것을 당부하는 일도 모두 그녀에게는 부담이었다. 경희에게 그녀의 남편은 그저 돈 먹는 하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차피 죽을텐데 이 돈은 앞으로 살아갈 나와 나의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한번 그녀의 머릿속에 박힌 생각은 머릿속에서 빠져나갈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든 순간부터 그녀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물론 그녀도 최소한의 도리는 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밥맛이 없는 남편인데 그 정도만 해주자. 항암은 보험처리가 되니까 항암까지만 하자. 보험이 드는 치료는 하지 않는 것이 옳다. 몸에 좋은 음식은 줘도 토하니까 더이상 줄 필요가 없다. 그 돈이면 남은 우리 세가족에게 쓰는 것이 옳다. 한 번 그녀의 머릿속에 돌고 돌은 생각이 행동으로 보여줬는데 그녀의 남편이 그것을 눈치 못챌리 없었다.


끊임 없는 잔소리로 윽박지르던 경희의 행동이 변하자 선호는 바로 알아차렸다. 토하더라도 어느정도 구색을 갖춰주던 그의 식단이 어느 순간 흰밥과 김치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흰밥과 김치는 삼시세끼 며칠간 지속됐다. 반찬 투정을 했지만 집안 사정 상 다른 반찬을 사기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가끔 집안에 방문자가 있는 날 그들이 사온 음식이 그에게는 특식이었다. 선호는 경희에게 화를 내보았다. 그러나 경희는 오히려 울면서 자기도 힘들고 앞으로 나는 어떻게 살아가냐며 선호의 죽음 이후를 선호에게 말할 뿐이었다. 선호는 반복되는 경희의 말에서 경희의 마음 속에서 선호가 죽었음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누군가의 부축없이는 거동이 어려운 그에게 경희 마저 떠나갈까 무서움이 앞섰다. 그렇다고 선호는 본인의 홀어머니에게 더이상 걱정을 더해드리기 싫었다. 이미 그의 암투병 소식으로 집이 떠나가라 울던 어머니의 모습이 그에게는 선했기 때문이다. 선호는 ‘암 투병’이 이렇게 힘들 바엔 빨리 죽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이 모든 것은 투병 두 달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투병 세 달째가 됐다. 항암 치료 뿐 아니라 다양한 치료법이 있다고 그들 부부에게 여러 사람들이 정보를 물어다 주었다. 다들 어디서 이런 치료법을 알아오는지 선호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러나 경희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가지고 온 치료법을 듣는 순간 “그래서 보험은 적용 돼요?”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막을 새도 없이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에 당혹감과 약간의 혐오의 표정이 잠깐 떠올랐지만 경희는 신경쓰지 않았다. 경희는 치료법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매우 위선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왜 나를 생각하지 않을까. 이제 앞으로 혼자 남게 될 나와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까라는 생각을 못하나. 사람들이 오면 웃으며 그들을 반겨주긴 했으나 그녀는 그녀의 입가가 호선을 그리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그녀의 마흔 셋의 나이에 처음 알게 됐다. 


선호의 어머니 순희는 눈치가 빠삭했다. 그녀의 길거리 장사 짬밥은 40년이 넘었다. 순희가 반찬을 들고 경희와 선호의 집에 방문 했을 때 아들의 눈가에 스친 여러 감정을 그녀가 모를리 없었다. 그리고 항암을 위한 여러가지 치료법을 그들의 친인척, 친구들이 들고 왔을 때 그녀의 며느리 경희의 눈과 입에 담긴 감정은 너무 날 것 그대로라 그녀의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미 순희의 주변인들은 모두 한 뜻으로 입을 모아 말했다. 


“아들 불쌍해서 어떻게해? 악처를 만났네” 


순희는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선호에게 자신의 집에 오는 것을 제안했으나 아들은 ‘내 집 나두고 어디가냐’라는 말로 그녀의 제안을 고사했다. 물론 며느리가 아들의 병간호를 하는 상황이라 그녀는 며느리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기도 했다. 그럼에도 제일은 아들이기 때문에 순희는 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며느리에게 작게 한마디 하곤 했다.  


“애 아픈데 밥은 잘 챙겨 주고있니” 


그러나 이런 그녀의 말은 며느리의 앙칼진 말에 묵살되었다.


“밥을 챙겨주면 뭐해요 못먹는 걸” 

“그래도 먹여야지…” 

“저도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병수발 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아세요?”


순희는 그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어쨌든 같이 사는 것은 경희, 그녀였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반찬, 약간의 용돈, 그리고 안부인사 정도가 끝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말을 했을 때 경희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이제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정도로 경희는 무엇에 홀린 듯 매우 뾰족해 있었다. 자신이 모르는 선호의 히스테리라도 있던 것인가. 그래도 부부사이의 일은 관여하지 않는 것이 답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거기서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경희에게 “그래도 선호 잘 부탁한다.” 라며 뱉는 듯한 말투로 마지막 말을 하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렇게 세달이 지났다. 선호는 햇빛에 바짝 마른 오징어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생존율이 낮은 암이었지만 작은 크기의 종양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빠른 악화가 비정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겉으로는 그 때 취했던 항암이 맞지 않았던 건가 라고 입밖으로 안타까움을 내뱉었다. 그러나 주변의 모두가 알고있었다. 단순 항암이 맞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선호는 삶을 이어갈 의지를 잃었다. 의지를 잃은 환자의 죽음은 앞당겨질 뿐이었다. 또한 경희의 무관심은 점점 심해졌다. 차라리 싸우면 좋으련만 최소한의 의무감으로 들여다 보는 그녀는 선호의 삶에 대한 의지를 더욱 더 깎아놨다. 선호는 생각했다. 


‘차라리 빨리 죽었으면,.. 더이상 이런 수모는 겪지 않을텐데’


노인들이 입밖으로 자주 내뱉는 말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의 진심은 통했는지 그의 몸은 하루가 다르게 수척해졌다. 병원에서 더이상 항암을 권하지 않았다. 몸 상태가 매우 좋지 않은 그에게 항암은 사치였다. 순희는 이 것이 마지막임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러나 엄마인 그녀는 아직 기회를 믿었으며 유명하다는 의사들을 그녀의 얕은 인맥으로 더듬어 가며 찾아가고 상담했다. 그러나 수술 성공율이 높은 의사들은 ‘결국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환자를 수술 했기 때문’이라는 뼈 아픈 현실을 맞닥뜨릴 뿐이었다. 선호에게는 수술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이번주가 고비라는 말 외에는 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처럼 의사에게 화도 내보고 울어봤다. 그러나 얼마전에 종영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던 의사들은 선호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 드라마는 드라마가 아니라 동화에 가까웠다.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선호는 더이상 말을 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선호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선호 본인만이 알 뿐이었다. 교대로 아들을 돌보기 위해 하던 일 까지 접은 순희는 매일 아들의 몸을 쓰다듬으며 제발 삶의 의지를 되 찾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 모습을 경희가 냉소적인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빨리 죽기를 기도 했던 남편이었다. 그러나 막상 죽음을 목전에 둔 남편의 모습을 보자 여러 감정이 썰물처럼 밀려들어왔다. 선호가 누워있는 순간에도 차곡차곡 누적되는 병원비도 걱정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투병기간을 걱정 했었지만 그 순간이 빨라도 너무 빨랐다. 막상 자신이 바랐던 그 순간이 다가오자 이 것을 본인이 바라고 있었던 것인지 의심이 되면서 인류애를 져버린 자신에게 혹시나 하늘의 벌이 내려오는 것은 아닌가 걱정까지 되었다. 


죽음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내일이 고비라고 말하던 의사는 그 말을 벌써 5번째 되풀이 중이었다. 선호의 팔과 다리는 깡말랐으나 그의 배는 복수로 가득차서 임산부 처럼 튀어 나와 있었다. 가끔 선호가 눈을 떠서 눈을 꿈뻑 였지만 그 행동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이었다. 얼마전까지 천벌이 두려웠던 경희는 혹시 이것이 천벌이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혹시 이 상태로 남편이 몇 달이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것이 경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이 끝난지 채 얼마 되지 않아 선호의 심장이 멈췄다. 


경희가 바라고 바랐던 선호의 죽음이었다. 이미 그녀 마음 속에서는 죽었던 선호였지만 환자감시장치에서 계속 울려대는 ‘삐–’ 라는 소리는 현실에 있던 그녀를 저 멀리 다른 시공간으로 데려간 듯 했다. 소리에 놀란 간호사가 의사를 데리고 왔고 의사는 환자의 죽음을 알리는 사망선고를 했다. 


“현재 시간 10시 37분, 김선호 환자 사망하셨습니다.”


그 때 병원에는 경희 뿐이었다. 경희는 전혀 현실감이 없었다. 그녀는 이 감정을 해방감이라고 표현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해방감이라고 그 감정을 정의한 순간 분주한 주변 속의 경희를 덮친 감정은 죄책감이었다. 결혼 생활에 딱히 큰 문제는 없었다. 남들이 다 안고 사는 정도의 문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남편을 돌보고 위로해야 한다는 현실이 아닌 남편이 죽고 떠난 후의 미래에 집중한 자신의 비정함이 자신의 가슴을 찌르는 듯 했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찾아왔다. 남편이 죽기 전까지의 시간은 정지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천천히 흘러갔다. 그러나 남편이 죽은 후의 모든 처리 과정은 새벽의 텅 빈 고속도로 처럼 막힘없이 흘러갔다. 


그날 밤 11시, 순희는 경희에게 전화를 받았다. 자신이 그토록 끔찍하게 여겼던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다. 슬슬 교대 시간이라 나갈 준비를 하던 차에 걸려온 전화는 불안했고 그 불안함은 어김없이 적중했다. 순희는 아들의 죽음을 눈으로 보기 전엔 믿을 수 없었다. 


약 2주 간 눈만 간신히 뜨던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아들이라도 살아만 있어다오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였었다. 돈이 얼마가 들던 상관이 없었다. 선호의 죽음은 순희에게도 후회감과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아들이 아프다는 것을 조금 더 빨리 알아챘다 라면이라는 가정은 그녀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그녀의 심장은 평소보다 더 빠르게 쉼 없이 뜀박질 쳤다. 이미 죽은 아들이었지만 병원으로 가는 길 별의별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문득 한 생각이 그녀를 스치고 갔다. 


'결국 내 아들을 죽인건 경희가 아닐까?'


몇 십 가닥으로 떠오르던 생각들이 저 문장 하나로 한 줄로 꿰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들의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 슬픔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고 싶었고 그 대상은 바로 며느리였던 경희였다. 아들이 아프기 시작한 지 며칠이 채 되지도 않아 이미 아들을 본체만체하던 그녀였지 않은가. 본인이 보는 앞에서도 그랬는데 둘이서만 있었다면 그 상황은 더 심각하지 않았을까.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더니 그때 아들이 처음 며느리를 데려온 날까지 도달했다. 물론 선호가 누구를 데려와도 순희의 성에는 차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경희가 유독 정이 가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고 순희는 그 이유를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이 생각은 아들이 눈을 감은 병원으로 가는 30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병원에 도착했다. 아직 아들의 몸은 살아있을 때 그대로 말랑했고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아직은 미약하게 나마 온기가 남아있었다. 관을 열고 살아온 할머니 이야기 같은 도시전설 이야기들이 그녀에게도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녀는 그것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이야기인지 알고 있었다. 암 진단 후 항암치료가 잘 되지 않고 나서 그들에게는 수술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하늘도 무심하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옆에 서있던 경희를 보았다.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호에게 온갖 눈칫밥을 주더니 기어코 선호의 명줄을 줄여놨다. 살아갈 희망을 억지로 손에 쥐어주어도 모자를 판국에 경희가 오히려 희망을 망치로 부수어 손 바닥 속 모래처럼 만들어 버리지 않았나. 


어느날 병원에 찾아온 그녀에게 선호는 ‘내가 빨리 죽는 것이 돈도 아끼고 경희와 자신의 아이들을 위해 더 좋은일이 아닐까’라며 자신을 붙잡으며 울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냐고 너는 네 몸만 생각하라고 조금 더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외쳤다. 그러나 선호의 눈에는 이미 의지가 없었다. 그 즈음 선호가 음식을 잘 못먹고 먹어도 게워낼 때  순희는 여러 종류의 죽을 쒀서 아들에게 가져다 주었고 경희에게 종류별로 먹여보라며 건냈다. 그리고 찰나였지만 순희의 귀로 스쳐지나가듯 작은 말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또 토할 거, 쒀와서 뭘한담. 치우는 건 난데.’


순간 화가 난 순희가 한 마디 하려고 할 때 선호와 눈이 마주쳤다. 선호는 살짝 고개 짓을 하며 순희를 말렸다. 그의 눈에는 체념만이 가득했다. 선호는 더이상 경희와 한바탕 할 기력이 없었으며 순희가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 모든 눈치를 감내할 자가 바로 선호였다. 경희는 이미 병실문을 나선 이후였고 순희는 그런 아들이 가여웠다. 


“그냥 이혼하고 엄마랑 같이 살자”

“아니야… 엄마는 엄마의 삶이 있잖아.”


선호는 완고했고 순희는 그런 아들의 행동에 오히려 먹먹했다. 그 게 고작 3주 전이었다. 

이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할 병원은 수술 성공률이 낮다는 이유로 아들의 수술 날짜 조차 잡아주지 않았다. 수술의 성공률이 곧 의사의 명성이고 병원의 명성이었다. 반면에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잡고 싶은 것이 환자와 환자의 가족이다. 그러나 병원은 모든 것을 확률로만 바라 보았다. 불행히도 몇차례 시도 했던 항암은 선호와 전혀 맞지 않았고 결국 선호는 암을 선고후 4개월도 채 되지 않아 삶을 마무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병원도 그녀의 며느리 경희도 모두 원망스러웠지만 결국 마지막 화살은 본인에게로 돌아왔다. 


‘그 때 그냥 데리고 갈 걸.’


그의 아들이 지나가면서 그녀에게 했던 말들이 하나 둘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최근 몇 달 간의 기억들도 있었지만 그 기억들은 파노라마 처럼 대학교, 고등학교, 중학교때로 거슬러갔다. 모든 날이 완벽할 수는 없고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이 당연할지언데 그 모든 행동 하나 하나들이 아쉬웠다. 순희가 선호의 죽음으로 많은 것들을 주목하고 지목했지만 결국 그녀가 가장 크게 지목한 것은 그녀 자신이었다. 매 번 삶에 최선을 다할 수 없음에도 그 때 결국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그녀가 원망스러웠다. 다시 돌아간다면 아들에게 온 정성을 쏟을 자신이 있지만 이미 아들은 떠나버리고 난 다음일 뿐이다. 순희는 그렇게 아들의 비쩍 말라버린 어깨와 팔을 끌어안고 쓰다듬으며 오열했다.


경희는 순희의 그런 모습을 뒤에서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미 선호가 죽은지 1시간이 다 돼가고 있었다. 순희가 온 뒤 경희는 선호의 발 언저리에 서서 선호의 점점 차가워지는 발만 만지작 거릴 뿐이었다. 언제 선호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올지 모르니 지금이라도 최선을 다해 선호를 마주하고 그를 기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왜 살아있을 때는 짐만 같았던 남편을, 만지기 조차 싫었던 남편이 이제와서 아쉽고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눈에 물이 차올랐지만 그녀는 본인이 울 자격이 있는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울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오히려 그녀의 눈물샘을 자극 했다. 그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선호에게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그녀의 시어머니 순희가 왔을 때 순희와 눈이 마주친 순간 경희는 그녀의 눈속에서 원망어린 시선을 발견했다. 순희가 그녀의 많은 부분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애초에 그녀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아들에게 항시 지극정성이었던 순희가 그녀와는 많이 다른 경희를 마음에 들어 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경희가 일부러 선호에게 퉁명스럽게 대했다는 것을 순희가 알고 있을까 겁이 났다. 그동안은 살아있던 선호가 그녀의 마음 속 방패였다. 왜냐하면 어쨌든 그녀는 선호의 보호자였으니까. 그러나 선호가 죽은 지금 그녀의 내면의 방어막이 순간 약해졌다. 그리고 그 약해진 내면의 틈으로 그녀가 했던 행동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남편 죽은 후의 경제상황, 경단녀로서의 미래 등 모든 것들이 깜깜하기만 했다. 선호를 향한 측은지심도 물론 있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걱정이 앞섰던 것은 사실. 토하던 남편을 외면하던 일, 힘들어하는 남편을 못 본 체했던 일, 문득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났다는 남편에게 매몰차게 대했던 일. 그녀는 벌을 받을까 두려워졌다. 그러나 사실 이런 고민들의 기저에도 그 중심은 경희였다. 


그런 생각들도 잠시 경희에게는 선호의 죽음에 대한 감정과 자신의 죄책감을 돌아볼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죽음 이후의 절차는 매우 기계적이었다. 정해진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도착하자마자 우는 사람들을 보며 경희는 생전에 선호가 꽤 덕을 쌓았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다. 선호의 회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저마다 선호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며 경희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 어떤 이들은 경희보다도 더 서럽게 울어서 오히려 경희가 먼 친척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경희는 멀리서 순희의 모습을 보았다. 멀리서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 문득 순희와 눈이 마주쳤고 경희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순희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다시 친척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경희는 그런 순희를 보며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생각 조차 그녀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녀는 애써 마음을 고쳐잡았다. 이제 곧 순희는 ‘남 같은, 남 같지 않은’ 사이가 될 사람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손주 손녀를 보러 오겠지만 딱 그정도의 사이만 지속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이가 좋다면 이상한 홀어머니의 아들과 며느리가 아니었나. 그러다 문득 조의금을 그녀, 순희에게 나눠 줘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 까지 이어졌다. 본인의 아들이라고 돈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영정사진 속 선호와 눈이 마주쳤다.


‘왜. 여보. 이제 난 혼잔데. 철저하게 이기적이어야 이 험난 세상을 살아 내지 않겠어?’


그녀는 잠시 손님이 끊긴 대합실에서 선호의 영정사진을 보고 그녀 내면의 선호를  끄집어 내어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의 기억속의 선호는 건장한 체격의 아프기 전의 듬직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건강한 선호 때는 전혀 몰랐다. 그녀 자신이 이렇게까지 좁아질 수 있는지. 원래도 그렇게 남을 배려하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철저하게 본인만을 생각하게 될 줄은. 남편이 죽은 그녀에게 앞으로의 삶은 생존 그 자체였다. 앞으로 남은 대출 이자, 학비까지 모든 것이 선호를 떠나보낸 그녀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오늘 장례식장이 속된 말로 그녀의 마지막 경제적 버팀목이 될 공간이었다. 살짝 흐릿해진 경희의 눈은 선호 영정사진을 보았고 그 후 선호를 보기 위해 찾아온 객들을 살폈다. 선호를 앞 세워 받아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이 드니 눈시울이 앞을 가렸다. 그녀는 앞으로 지금 보다 더 이기적이 될 것이라고 다짐하며 다시 건강했던 선호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울타리였으며 동반자였지만 이제는 떠나보내야만 하는 그녀의 남편을.  그리고 다짐했다. 아마 자신을 위해, 짧은 투병을 보냈던 그라면, 이런 생각이 드는 자신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자신을 위해 짧은 투병 생활을 보냈다고 생각하는 것 조차도 그녀 중심적인 생각이었다. 은연중에 그녀는 알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투병기간 동안 선호에게 했던 행동들이 의도적이었다는 것과 선호도 그녀가 ‘빨리 죽기를 바랐다는 것’을 눈치 챘다는 것을.


선호의 장례식장은 매우 빨리 끝났다. 장례를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저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체했다. 점심을 한번 사는 등의 최소한의 도리를 해야 한다고 머리로는 알고있었지만 당장의 벌이 수단이 없다는 현실은 그녀의 지갑을 꼭꼭 닫게 만들었다. 장례식장의 부의금 역시 어느 정도 순희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나 고민 했으나 결국 그녀가 모두 가져갔다. 순희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듯 했으나 입을 꾹 다물었고 그런 시어머니를 경희는 무시하는 것으로 장례식장은 마무리가 됐다. 


이 후 선호의 인망이 좋았던 덕분에 경희는 선호 친구의 회사에 사무보조원으로 출근할 수 있었다. 월급은 물론 적었지만 그래도 살아갈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었다. 경력단절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 한 순간에 해결 됐다. 또한 장례식 이후 선호의 사망보험금과 회사에서 정산 받은 금액은 상당했다. 당장에 아파트 빚을 모두 갚고도 꽤 많은 돈이 남았던 것이다. 이 정도로 많이 남는 것을 알았다면 선호 살아 생전에 그렇게 모질게는 안했을 자신이었다. 투병기간 중에 뭐에 씌인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호가 없는 경희의 삶은 평온했다. 이 현실에 안도감이 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경희는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오빠 미안해…"


말과 말 사이로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슬픔과 죄책감 그리고 약간의 원망이 뒤섞인 짐승 같은 울음이었다. 경희는 비로소 선호의 슬픔을 마음 껏 애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큰 울음 소리에 달려온 아이들은 그녀의 우는 모습을 보며 그녀 등을 감싸 안으며 소리내어 같이 울었다. 맘껏 슬퍼할 수 있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했던 경희였다. 오늘이 지나면 그 슬픔도 곧 잊혀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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