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엘리베이터가 금요일부터 고장 났다. 그리 고층은 아니었기에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곳곳에 형광등 센서가 고장 나서 핸드폰의 작은 불빛에 의지해 계단을 올라야 하니, 조금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무섭기만 한 건 아니었다. 의외의 작은 즐거움도 있었다. 내가 사는 빌라는 계단이 중앙에 있고, 두 세대가 마주 보는 구조라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올라가다 보면,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지럽게 걸린 우산, 쌓여 있는 택배 상자, 밖에 내놓은 유모차 등이 그들의 주거 형태를 짐작하게 한다. 익명성이 가득한 현대 사회에서 사람만 만나도 깜짝 놀라는 나에게는 이 경험이 새롭게 다가왔다. 다만,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번거로울 택배기사님들이 걱정될 뿐이다.
처음엔 하루 이틀이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고장 난 상태다. 관리실에서 수기로 붙여 놓은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공지가 이제는 그저 원망스럽기만 하다.
이제는 재활용을 버리러 나가기도,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기도 귀찮아졌다.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일들이, 고장 난 엘리베이터 때문에 더 번거롭게 느껴진다. 오히려 그 때문에 청소 욕구가 자꾸 자극된다.
오늘도 술에 취해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간다. 빌라촌 한가운데 있는 내 집은 여름 열기로 가득 차 있고, 술기운에 더해진 열기가 속을 더 뜨겁게 만든다. '술 마시고 운동까지 하다니! 완전 럭키비키잖앙'이라는 요즘 유행하는 파워 긍정 에너지 밈이 떠오른다.
고장 난 엘리베이터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깨닫게 해 준다. 평소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그리고 무심코 지나쳤던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