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그리고 우리 자매 이야기

시샘도 그러려니

by 그러려니

얼마 전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시리즈가 있었다.

제목은 ‘은중과 상연’.

예고편부터 여자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시샘과 동경, 설렘 같은 감정들을 너무나 잘 표현해서,
공개되는 날만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친구 사이의 이야기였지만, 나는 그 감정선이 자매 사이에도 충분히 존재한다고 느꼈다.
왜냐면, 내게도 두 살 터울의 언니가 있기 때문이다.


언니는 아빠를 닮았고, 나는 엄마를 닮았다.
그 한 문장 안에 우리의 모든 차이가 담겨 있었다.

언니는 어릴 때부터 ‘첫째는 살림 밑천’이라는 말을 싫어했다.
그만큼 일찍부터 설거지를 시작했고, 도시락도 스스로 싸서 다녔다.
나는 언니가 설거지를 시작한 지 몇 년이 지나서야 설거지를 했다.


돈에 대해서도 정반대였다.
언니는 손에 돈이 있으면 바로 쓰는 타입,
나는 1원이라도 남기려는 짠순이 타입이었다.

어느 날 아빠가 퇴근길에 전화를 걸어 물었다.
“뭐 먹고 싶어?”
언니는 “떡볶이!”라고 대답했고,
아빠가 “여기 있는 거 다 사갈까?” 하자 “응!”이라고 답했다.


잠시 후 내 차례였다.
“너는 뭐 먹고 싶어?”
“순대요.”
“여기 있는 거 다 사갈까?”
“아니요. 1인분만요.”

그날 이후 나는 깍쟁이, 언니는 기분파로 굳어졌다.
비교 아닌 비교 속에서 언니 덕분에 조금은 이득을 보는 인생을 살아갔다.


언니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은 안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고

본인 스스로 결정이기도 했지만 집안 사정도 있어서 상고에 갔다.

그 시절에는 그래도 세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 상고로 진학했었다.


이 때부터 언니와 나는 점점 다른 길로 갔다. 같은 집에서 태어난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귀밑 3cm의 운동화만 신고 다니던 (가장 찌질했던) 몸무게 최고치를 찍던 중딩 시절에

언니는 머리도 길고 구두도 신고 뭔가 신나게 사는 것 같았다.

항상 새로운 머리띠나 소지품을 가지고 다녔다. 사실 그런 자유로운 언니가 부러웠다.


언니는 상고를 졸업하고 바로 취직했다.

성인이 된 언니는 화장을 하고, 연애도 했다.
나는 몰래 언니 옷을 입고 나갔다가 들킨 적도 있고,
언니 남자친구가 사준 신발을 신었다가 크게 싸운 적도 있다.


20대가 되어서 나는, 그저 열심히 살아야 했다.
아빠의 빚, 엄마의 눈물, 그리고 생활비.
그때 나는 돈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돈에 매달렸다.

언니는 그런 나와 달랐다.
돈이 생기면 바로 써버렸고, 사고도 잔잔하게 치고 다녔다.
늘 즐거워 보였다.
그게 미웠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언니는 20대 후반에 결혼했고, 나는 20대 후반에 내가 원하는 회사에 취직을 했고 안정적으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30살이 되던 해, 오랜만에 만난 언니가 말했다.
“나는 네 나이에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았는데, 넌 왜 아직 아무것도 안 하니?”

그 한마디가 심장을 콕 찔렀다.
나는 억울했다.
그 긴 20대를 악착같이 버텼는데,
아무것도 이뤄놓지 못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둘 다 40대가 된 지금, 이제는 서로 다른 인생을 살고 있다.
나는 결혼 후 경제권을 남편에게 맡기며 마음의 여유를 찾았고,
언니는 가정의 가장으로 여전히 씩씩하게 산다.
언니는 여전히 낙천적이고, 나는 여전히 생각이 많다.

요즘도 만나면 언니는 툭툭 던진다.
“너 머리 왜 그래?”
“인스타엔 또 자랑질했네~”


언니의 말투는 여전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슨 일 있으면 나는 늘 언니부터 챙긴다.
엄마 말로는 내가 늘 언니 걱정부터 한다고 한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때였다.

고등학교를 멀리가서 얼굴도 잘 못보던 고1 언니와 중 2였던 내가 함께 썼던 교환일기 속 한 문장이 기억이 났다.



"련아, 언니가 돈 많이 벌 테니까

너는 걱정 말고 꼭 대학 가... 언니가 보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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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려운 시절에

나를 살리던 것은 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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