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너를 맞추지 말고, 너에게 맞는 회사를 찾아.
갑자기 연락이 왔다.
전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던 상사였다.
“울 조카가 인사 관련 취업을 하고 싶다고 하는데, 혹시 팀이나 얘기 나눠본다거나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아, 네네 그럼요~”
“미팅이 낫겠죠? 지금 놀고 있으니, 시간은 거기에 맞추라고 할게요^^”
그분은 저녁 식당까지 예약을 해두셨고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받은 연락이었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먼저 따뜻해졌다.
내가 예전에 했던 경험들이 누군가에게 여전히 ‘도움이 될 만한 것’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무엇보다 그 도움을 줄 사람으로 나를 떠올려 주었다는 것이 고마웠다.
나는 사실 그 전의 일들은 그냥 그렇게 마무리된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아무리 3–4년 동안 열심히, 정말 열성적으로 일을 했어도
지금 그 회사에 나는 없고 나는 이미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더더욱 이 연락이 나를 과거와 현재 사이 어딘가로 살짝 다시 끌어와 준 느낌이었다.
드디어 만나기로 한 날.
조카는 프린트한 이력서를 하나하나 챙겨 와 내게 건넸다.
작은 노트에는 궁금한 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손끝이 살짝 떨리는 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긴장한 표정이었다.
나는 몇 가지를 먼저 물어봤다.
왜 인사(HR) 일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회사에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일하면서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건 무엇인지
그리고 자연스럽게 적성 검사를 추천했다.
“일단, 본인을 먼저 아는 게 좋아요. 강점이 뭔지, 약점이 뭔지.
성향이 어떤지 알고 나면, 그다음에 ‘회사’와 ‘직무’를 보는 게 훨씬 쉬워져요.”
고용 관련 사이트나 취업지원센터에서 할 수 있는
무료 직업심리검사를 안내해 줬다.
취업지원> 취업가이드> 직업심리검사> 직업심리검사 실시
버크만 검사처럼 유료로 하는 심리검사도 있지만 처음에는 이렇게 가볍게 무료로도 충분히 시작해 볼 수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은 일에 나를 맞추는 시대가 아니라 나에게 맞는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일은 ‘버티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즐길 수 있느냐’의 문제일 때가 훨씬 많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정작 직무에 대한 구체적인 조언보다,
15년 넘게 사회생활을 해왔던 직장인 선배로서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더 많이 흘러나왔다.
회사 안에서의 인간관계
조직 안에서 나를 너무 잃어버리지 않는 법
평가와 승진에만 매달리지 않는 시선
‘좋은 회사’와 ‘나에게 맞는 회사’는 다를 수 있다는 점
이야기를 해주고, 질문에 답해주고 조금은 현실적인 얘기들도 건네다 보니
긴장이 풀렸는지 조카는 그제야 식어가던 스파게티를 포크에 돌돌 말기 시작했다.
표정이 조금 편안해졌고 고개도 더 자주 끄덕였다.
조카는 20대 후반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나의 20대 후반이 떠올랐다.
나는 지금은 퇴사한 그 회사에 들어가 “아, 이제 난 안정적인 직장인이구나”라고 안도하던 시기였다.
결혼 전, 미혼의 직장인으로 가장 재미있게 회사를 다녔던 시절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꽤 빨리 ‘안정’을 선택했었다.
26살부터 직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불만도, 큰 불안도 없이
그냥 ‘이대로 쭉 다니면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그렇게 15년이 흘렀고 40대가 된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아닌 것 같다.”
회사도 좋았다. 좋은 사람도 많았고, 복지도 괜찮았다.
그런데 점점 나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이 컸다.
우물 안 개구리여도 사실 괜찮았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인지, 우물 벽에 붙은 이끼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게 내겐 참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는 결국, HR 업무를 내려놓고 퇴사를 결정했다.
조카에게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신기하게도 퇴사 이후의 삶을 이야기하는 동안
내 목소리가 조금씩 업되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눈빛에도 다시 생기가 도는 걸 느꼈다.
그때 문득, 속으로 이런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직장인으로만 살아온 내가, 이제는 진짜 ‘직업인’이 되어가고 있구나.”
나는 그날,
한 20대 후반의 조카와 스파게티를 먹으며 나의 20대와 40대를 동시에 마주했다.
그리고 조카에게 해줬던 그 말들을 지금도 내게 그대로 들려주고 있다.
“일은, 버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야.
나에게 맞는 일,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을 찾는 것도 충분히 중요한 능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