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려니는 없었을 것이다.
요즘 부쩍 예전 동료들에게 이런 안부를 자주 듣는다.
내가 떠난 뒤 들려오는 회사의 변화들, 그리고 그 안에서 여전히 견디고 있는 사람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만약 내가 여전히 그곳에 남아있었다면 어땠을까.
나 또한 그들처럼 매일 이직 사이트를 뒤적이며 답답한 마음을 쏟아내고 있지 않았을까. 아니, 난 그런 용기 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나이에 갈 수 있는 곳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예전의 나는 일과 나를 분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일이 곧 나였고, 성과가 곧 나의 자존감이었다.
상사에게 혼이라도 나는 날엔 온 세상이 무너진 듯 밤잠을 설쳤고,
회사 근처는 가기도 싫을 만큼 괴로워했다.
반대로 작은 칭찬 하나라도 듣는 날이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인정해주는 것 같은 착각 속에서,
나는 기꺼이 일과 나를 하나로 묶어둔 채 '인정'이라는 보상을 갈구하며 살았다.
그런데 참 신기한 일이다. 이직한 지금, 나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되었다.
지금 하는 일이 즐겁기는 하지만, 과거처럼 일에 대한 지독한 욕심은 없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지도, 대단한 칭찬을 듣고 싶지도 않다.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은 지적 호기심에 학원을 등록해 따로 공부는 하고 있지만,
이것이 '일을 더 잘해서 박수받기 위함'은 아니다.
이런 내 모습이 처음에는 무척 낯설고 어색했다.
스스로에게 몇 번이나 되물었다. '열정이 식은 걸까? 마음을 못 붙여서 그런가? 아니면 여기가 내가 오래 머물 곳이 아니라서 그런 걸까?'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한 채 낯선 평온함 속을 유영했다.
그러다 오늘, 이직을 앞둔 옛 동료와 카톡을 나누며 내 상태를 짧게 털어놓았다.
나의 '욕심 없음'과 '어색한 평온'에 대해 들은 동료는 뜻밖의 대답을 건넸다.
"매니저님, 그거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진짜 삶의 만족도가 높은 상태인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일이 내 인생의 전부를 차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나는 일의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단단함을 얻었다.
칭찬에 둥둥 떠다니지 않기에 비난에도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는다.
내가 학원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오로지 나를 향해 있고, 회사에서의 나는 그저 내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건강한 직업인으로 존재한다.
어쩌면 나는 이제야 일과 나 사이의 가장 건강한 거리를 찾은 것 같다.
뜨거운 열정보다 중요한 건, 나를 잃지 않는 적당한 온도의 평온함이라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