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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갱 Apr 29. 2022

내 냄새

 주변에  개코가 있다. 내가 바로  개코였다. 글쓰기, 댄스, 운동, 공부 이런 쪽에 타고난 재능이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필 내가 타고난 재능은 후각이었다. 별로 필요도 없는.

 급식 메뉴를 보지 않아도 저 멀리 급식실에서 희미하게 실려오는 고등어조림 냄새 조각을 캐치해 오늘 나올 메뉴를 대충 알 수 있었다. 심지어 교실에서 누가 방구를 끼면 대충 실려오는 방향을 예측해 누가 꼈는지 몇 번 맞추기도 했다. 친구들이 이런 나를 개코라고 불렀다.

 우리 중학교는 한 반씩 돌아가며 학교의 공용 공간을 청소했는데 우리 반은 그날 체육창고를 청소하는 날이었다. 서늘한 온도의 쾌쾌하고 먼지가 날리는 이 공간에 들어갔을 때 누가 말했다.


 "어? 이거 재용이 냄샌데?"


 그러자 주변 아이들이 깔깔 거리며 맞다고 너 여기서 사는 거 아니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나도 같이 웃으며 태연하게 넘어갔다. 얼굴이 엄청 화끈거렸다, 아마 많이 빨개졌을 것 같다. 어두컴컴한 창고라 표정을 숨길 수 있어 다행이었다. 다른 냄새는 잘도 맡았는데 내 냄새는 정작 내가 맡지 못하고 있었다.


 어둡고 습하고 쾌쾌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체육창고와 우리 집은 비슷했다. 그래서 나한테는 체육창고 냄새가 났나 보다. 더불어 거실이라는 공간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부엌이라고 부르기 애매한 공간에 퍼지는 밥 냄새도 내 몸에 쉽게 배었다. 김치찌개를 먹으면 나한테 김치찌개 냄새가 났고 된장찌개를 먹으면 나한테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나한테는 쾌쾌하고 습한 냄새를 바탕으로 그날 먹은 밥 냄새가 났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나한테 나는 내 냄새들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나를 쫓아오는 이 냄새를 떨쳐낼 수가 없었다. 뭐라 하는 친구가 있었던 건 아니다. 나한테 원래 나는 내 냄새였으니까.


 교실에 유독 좋은 냄새가 나는 친구들이 있다. 섬유유연제 향도 있고, 햇볕에 잘 말린 뽀송한 향이 나는 친구들도 있었다. 강아지들이 서로의 냄새를 가지고 많은 정보를 유추하듯, 나도 그런 친구들의 향기를 맡으며 많은 것들을 알아내곤 했다.

 맞바람이 치는, 햇볕이 잘 드는, 부모님이 다정하신, 집이 깨끗한, 중산층의, 화목한 냄새들을 풍기며 다니는 친구가 부러웠다. 나도 그런 척하고 싶어서 빨래를 하고 페브리즈를 뿌리고 올리브영에서 샘플용 향수를 뿌려봐도 쾌쾌한 내 냄새는 지우지 못하고 그 위에 얹어져 더 역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반지하의 냄새 안에 깊이 베인 아빠의 술냄새와 엄마의 고된 노동의 찌든 냄새들을 도저히 지워낼 수가 없었다.


 중3 무렵, 청소년기의 아이들이 으레 하듯 나도 친한 무리가 생겼다. 현식이랑 태호랑 마음이 맞아 몰려다니며 친하게 지냈다. 셋은 학원을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셋에게는 비슷한 냄새가 났다. 무슨 동물적인 감각을 이용해 비슷한 냄새나는 친구들을 찾은 건 아니고 그냥 어떻게 어울리다 보니 이렇게 친해졌다. 향기 나는 친구들처럼 범접할 수 없는 이질감이 아니라 나랑 비슷한 냄새가 나는 동질감이 들었다. 이 친구들은 나를 헤치지 않을 것 같았다.

 다른 친구들보다 시간이 많았던 우리는 베프가 되어 거의 모든 학창 시절을 함께 보냈다. 그렇게 친하게 지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지만 한 번도 자기 집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나 마음을 터 놓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시시한 농담들만 하면서 우리한테 나는 냄새들을 잠시 잊기도 하고 희석하기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를 나와 작은 중소기업을 다니며 독립했다. 내가 꿈꾸는 독립은 서울 전경이 보이는,  북유럽 감성으로 채워진 오피스텔이었는데,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던 것 같다. 내가 가진 돈으로 집을 구하다 보니 외곽으로 외곽으로, 아래로 아래로 옮겨 다니며 집을 구했다. 결국 나는 또 반지하에서 살게 되었다. 내가 가진 돈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새로 구한 싸구려 내 방은 익숙한 내 냄새가 났다. 내가 살기 전부터. 신기했다.

 지겹고 무서웠다. 나는 이 저주 같은 냄새를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사회초년생의 급여는 기가 찼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절약했다. 일만 하고 집에서 잠만 잤다. 식비도 아껴가며 돈을 모았다.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나한테 나는 냄새부터 지워야만 했다. 그래서 거의 5년 만에 바람이 통하는, 햇볕이 드는 지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향기에 대한 광적인 집착이 생겨 섬유유연제를 들이붓고 향수를 많이 뿌렸다. 회사 동료들은 이제 향기로운 냄새를 내 냄새라고 했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는 내 냄새가 남아있다고 했다. 그런 소리를 들으니 안심했다. 성취감도 느꼈다. 내 냄새를 지워가는 나 자신이 대견했다.


 같이 놀던 2명의 친구들은 인생이 비교적 잘 풀렸다. 태호는 고등학교 때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도 안 가고 독학으로 인 서울에 명문대에 들어갔다. 태호는 공부에 재능이 있었다. 원래 태호를 알던 친구들은 기적이라고 했다. 태호는 대학교를 졸업해 대기업에 다닌다.

 현식이는 요식업계에서 매니저로 일하는데 무슨 능력인지 비트코인을 통해 돈을 좀 벌었다고 한다. 얼마나 벌었는지는 말해주진 않는데 이번에 자기가 살고 있는 빌라를 샀다고 하는 걸 보니 그 금액이 꽤 큰 모양이다.

 바빠진 우리는 예전처럼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진 않지만 가끔 만나 소주를 마신다. 지금도 말도 안 되는 농담들, 여자 이야기, 시답지 않은 공상들만 늘어놓는다. 술을 아무리 많이 마셔도, 한 번도 자신의 가정사나 속을 터놓는 깊은 이야기를 한 적은 없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톨스토이의 문장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저마다의 불행은 공감하기도 어렵고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들다. 차라리 그 시간에 웃고 떠들며 잊는 게 효율적이었다.

 근데 이 친구들을 만나면 저 멀리 미풍을 타고 우리한테 예전 우리 냄새가 밀려온다. 이제 아무도 예전 우리 냄새가 나는 사람은 없는데 셋이 있으면 코 끝 어딘가 섬뜩하게 예전의 내 냄새가 난다. 다시 만난 내 냄새가 반가웠다.

 향기가 나는 나는 거짓 연기하는 것 같았는데 냄새가 나는 나는 진짜 같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문신처럼 박제된 것 같은 내 냄새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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