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지니고 있는 힘
시작은 어린이 불교 학교였다. 내성적이었던 탓에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 하고, 사람들 앞에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쭈뼛거리기 일쑤였던 어렸을 적의 나. 그런 내가 걱정되었던 엄마는 동생과 나를 어린이 불교 학교로 보냈다. 불교 학교와 사교성이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그 당시 엄마 주변에 어린이 불교 학교 예찬론자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그곳에서도 나는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동생과 가만히 앉아 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기억들이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 보니 아무것도 아닌 시간은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려 가슴 앞에 합장을 하고 돌탑을 빙빙 돈 뒤 법당으로 들어갔던 기억,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면서 반복해서 따라 읽었던 염불, 그리고 이따금씩 선생님은 우리를 대법당에서 작은 방으로 데려와 가부좌를 틀어 앉게 한 뒤 눈을 지그시 감고 시간을 흘려보내도록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함께 해주셨을 텐데, 머릿속에서 증발된 지는 오래. 저릿저릿 해져 오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언제 끝나나 눈을 살짝 떴다가 감았다를 반복했던 기억만 남아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야 그게 명상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첫 번째 명상 경험이다.
본격적으로 명상을 접한 건, 작년 여름이다. 그 당시 여러 가지 스트레스로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산을 넘고 있었는데, SNS 파도타기를 하다가 우연히 명상 프로그램을 발견한 것. 명상원 광고였다면 읽지도 않고 넘겼을 텐데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명상이라고 하니 궁금하기도 하고,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문을 두드렸다. 여름 해가 느릿느릿하게 넘어가는 시간, 낯선 사람들과 옹기종기 모여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는 것을 반복해나갔다.
명상 첫 시간, 선생님은 이런 말을 하였다.
"명상을 한다고 화내지 않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니에요."
힘이 쭉 빠졌다. 명상의 고단수가 되면 화를 내지 않는 온화한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하지만 다음 말에서 위안을 받았다.
"그렇지만 변화할 수 있어요. 내 감정에서 한 걸음씩 빠져나오는 연습을 하다 보면 감정을 조금씩 다스릴 수 있게 되어요."
그 정도면 됐다. 그 정도면 명상을 습관 들여도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신청한 프로그램은 2회 차로 진행된 맛보기 강의여서 명상에 대해서 많은 것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명상과 함께하는 삶의 좋은 길라잡이가 되어주었다. 그 뒤로 나는 틈틈이 명상을 했다. 그러다가 또 일상에 틈이 없을 땐 잊고 살기도 하다가 또다시 명상에 빠져드는 삶을 반복해오고 있다. 명상을 한다고 삶에 큰 변화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하고, 감정 컨트롤을 못하는 순간도 많지만 만약 명상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하기 싫을 만큼 큰 위안이 된 순간도 있었다.
명상을 하면서 ‘숨 쉬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본다. 그전까지는 단순히 생명을 지속시켜주는 행위라고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호흡에는 많은 힘이 있다. 명상의 가장 큰 핵심은 현재에 머무르는 것이다. 생각이 과거와 미래에 머무르고 있으면 불행해지기 쉽기 때문인데, 숨을 쉬고 내뱉는 행위에 집중하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흡에는 과거와 미래가 없기 때문이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는 건 지금 이 순간에만 할 수 있는 것이므로 호흡에 집중한다는 건 곧 지금을 살아가는 일이다. 반복적으로 들이마시고 내뱉던 숨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현재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다.
요즘은 불안을 덜어내는 명상을 자주 한다.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불안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기에 일종의 예방 접종과 같은 것이라고 해야 할까? 명상을 통해 나를 위협해오던 불안감과 거리 두기를 해보고 있다.
불안감은 우리의 이성보다 앞서 몸에 긴장된 느낌으로 이미 존재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불안을 일으키는 부정적인 생각을 바꿔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몸 안에 불안한 느낌을 먼저 이완시켜주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몸이 안정을 찾고 편안한 상태에 이르면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와도 불안한 느낌을 크게 증폭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명상 앱 「코끼리」
명상 앱 「코끼리」에서는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3 3 6 법칙을 알려준다. 3초 동안 숨을 들이마시고 3초 동안 숨을 멈췄다가 6초 동안 길게 숨을 내뱉는 건데 이렇게 호흡을 조절하는 것만으로도 불안한 마음이 사그라드는 것이다. 호흡 하나로 이렇게 쉽게 불안을 덜어낼 수 있을 줄이야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어디선가 불면증에도 이와 같은 호흡법이 굉장히 효과적이라는 글을 본 기억이 있는데, 숨을 잘 쉬는 것만으로도 많은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쉬운 방법을 두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길을 헤매었던 걸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명상을 한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숨쉬기로 세상에서 가장 컨트롤하기 어려운 나의 감정을 다스려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