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있었으면 좋겠어
가을로 향해가는 채플힐의 아침이 눈부시다. 내가 앉은 주방 식탁은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서 아침 햇살이 창을 통해 길게 뻗어 들어온다. 주방 전체가 환하다. 내가 돌보고 있는 화분 몇 개가 해를 받아서 반짝인다. 참 예쁘다. 얼마 전에 심은 아보카도 씨앗이 제법 뿌리를 잘 내리고 자리를 잡아 초록 잎사귀를 심심찮게 내고 있다. 선물 받은 수채 고무나무가 아차, 한 순간에 과수분으로 죽어가고 있었는데 과감하게 가지를 치고 물꽂이를 인내하며 몇 번 거쳤더니 화분이 세 개로 늘어났다. 이 아침에 ‘기분 좋은 무드의 플레이리스트’라는 제목이 붙은 유튜브의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는 여유는 지난 12년동안 없던 것이었다. 이런 아침을 맞게 될 것이라고는 기대할 수 없었던 지난 날들이었다. 식물을 키우는 것, 벽에 액자를 거는 것, 식탁에 치우지 않은 잡동사니들을 올려 두는 것과 같은 일상적이고 사소한 일들이 우리 집에서는 시도조차 하지 못하던 것들이었다.
나는 가끔 지금의 나, 미국 땅에서 운전을 하고 커뮤니티 칼리지를 다니고 영어만 사용하는 사람들이 가득 찬 카페에 앉아 있는 ’나‘를 자각할 때면 ’내가 어쩌다 이곳에 흘러들어 이렇게 살아가고 있나’ 아연하게 된다. ‘지금의 나’는 내가 한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던 모습이다. 특히, 희귀 유전자 질환을 가진 아이를 키우게 될 것이라고는 단 한번도-누구도 그런 삶을 상상하긴 어려운-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도 미국에서.
첫째 딸 선율이는 육아 책에서 말하는 소위, ‘천사 아기‘였다. 몇 번의 시도만 반복하고 나면 무엇이든 쉽게 습득했다. 말도 빨랐고 이해력도 좋았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를 어렵지않게 눈치챘다. 매를 들 필요도 없었고 잔소리를 반복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뛰어난 육아 기술 덕분이라고 자만했다. 나도 몰랐던 능력-엄마로서의 자질-이 아기를 낳으면서 드디어 발현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선율이는 네 살까지 나와 모든 시간을 공유하는 초밀착 동거인이었다. 선율이는 이웃에 사는 자기보다 한 두살 어린 아가들을 예뻐했다.
어느 날, 선율이가 불쑥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도 동생 있었으면 좋겠어.“
”동네 사는 아가들 많잖아. 내일 우리집에 오라고 할까?“
”아니, 그 동생들은 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잖아. 집에 안 가는 동생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내 모든 시간을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욕구와 기대와 정서가 모두 충족되고 있으리라 착각했었다. 선율이의 동생 요구는 나를 적잖이 당황하게 했다. 나는 사실 결혼 전부터 아이를 넷 가져야지 하는 소망이 있었다. 선율이를 출산했을 당시, 산부인과 담당 선생님이 ”이 엄마는 아이 넷도 낳겠다!“면서 나의 쉬운(상대적으로)출산을 칭찬했을 때, 호기롭게 ”어떻게 아셨어요? 저, 아이 넷 낳을거예요.“ 했었는데 선율이를 낳고 기르는 4년이라는 시간이 다른 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고 호로록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것이다.
”선율아, 아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니까 선율이가 오늘부터 동생 달라고 기도해.“
그 이후, 선율이는 잠들기 전에 꼭 동생을 달라는 기도를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후에 둘째를 임신했다는 것을 알고 선율이에게 소식을 전했다.
”선율아, 너가 기도해서 하나님이 동생 주셨나봐.“
감격스러운 표정 뒤로 어딘지 쭈뼛거리던 선율이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그런데 나 기도 그렇게 열심히 안 했어.“
나는 그 말이 너무 귀여워서 한참을 웃다가 선율이를 꼬옥 안아 주었다.
”괜찮아. 하나님은 니 마음 다 아셔.“
뒷마당에 잡초가 무성하다. 푸른 잔디를 욕심내던 남편은 매주 부지런히 다듬어야 하는 잔디 관리를 차일피일 미루었는데 결국 잔디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뒷마당은 언제부터인가 잡초들에 잠식당해 버렸다. 잡초가 자란 뒷마당에는 토끼들이 수시로 굴을 파고 새끼를 낳았다. 얼마나 많은 토끼들이 나고 자라서 우리 집 뒷마당을 거쳐갔는지 셀 수조차 없다. 뒷마당에 잡동사니를 넣어두는 작은 임시창고 아래, 살짝 뜨인 틈이 있는데 거기에 토끼 한 마리가 집을 지은 모양이다. 대부분의 다른 토끼들은 어느정도 자라면 뒷마당을 벗어나 숲으로 흩어지는데 이 녀석은 창고 밑에 아예 집을 짓고 정착한 것 같다. 문득 내다 본 뒷마당 잡초들 사이에서 쫑긋하고 조그만 두 귀가 햇빛을 받아 투명하게 움찔거린다. 나의 두 딸과 남편은 여전히 잠들어있고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던 배경음악은 어느새 끝이 나 주변이 고요하다.
13년 전, 둘째를 가진 배를 쓰다듬으면서 두 딸과 함께 할 미래를 가슴 벅차게 기다리던 젊은 내 모습이 아련하면서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지금의 나를 상상할 수 없었던 그 날의 나는, 지금의 나와 같은 사람이었을까. 과거로의 회귀가 가능하다면 13년전 그녀에게 ‘모두 다 잘 될 거야’라고 미리 알려주고 싶다.
앞으로 너의 시간은 ‘내‘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 될 거라고 격려와 사랑을 담아 뜨겁게 안아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