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아이와 같은 믿음 없이는
우리의 뿌리 깊은 기복(祈福) 신앙은 시련 앞에서 송두리째 뽑혀나갈 위기에 놓였다. 맑은 정화수를 떠놓고 정성을 다해 ‘비나이다 비나이다’ 읊조렸던 우리 선조들의 전통적 기도 방식은 그 모습 그대로 한국 기독교의 근간이 되었다. 이 땅에서의 평안을 기원하는 간절함은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인 욕구 중 하나이기 때문에 ‘복’을 비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도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7)’라고 하지 않으셨던가. 하나님이 구하라고 하신 것이 설령, 이 땅에서 우리가 바라는 방식의 ‘복’은 아닐지언정 적어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재된 간절한 ‘안정의 욕구’를 억제하라 명하지는 않으셨다. 우리의 기복 신앙이 가진 가장 큰 약점은, 내가 빌던 그 복이 나에게서 나타나지 않을 때 쉽게 무너진다는 것에 있다.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면서 -내가 살던 울산은 그 당시, 비평준화였기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본고사를 치러야 했다- 나는 매일 책상 앞에 말씀 한 구절을 붙여놓고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포스트잇에 정성스레 적은 말씀 한 구절이, 나에게는 옛 선조들의 정화수였던 셈이다. 그 말씀의 앞뒤 문맥과 배경, 하나님의 진짜 의도는 애초에 내 관심 밖이었다. 나는 그저 내가 원하는 학교에 떡 하니 합격시켜 줄 ‘시험의 신’이 필요했다. 말씀을 내 구미에 맞게 각색하고 해석한 뒤, 한 해의 운세를 점치듯이 하나 뽑아 들고 그것을 미래에 대한 확실한 보장인 것처럼 맹신했다. 내가 만약, 원하는 학교에 합격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좀 더 일찍 하나님의 진짜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을까? 글쎄,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미성숙한 인격과 덜 익은 신앙은 어쩌면 ‘불합격’이라는 잠깐의 돌풍에 후두두 떨어져 바닥에 짓이겨졌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어린 신앙을 탓하지 않으신다. 그 단계에서의 나를 조심히 다루시며 신앙이 자라기까지 기다리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오늘의 이 사건 -장애아이가 태어나는-이 우리에게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6)
천대까지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고작 4대에서 그치고 만 것인가? 우리는 이 비극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우리의 치성이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부지불식 간 가족 중 누군가가 하나님 앞에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던 것일까. 신앙의 뿌리가 단단하다고 믿어왔던 양가 모든 가족들에게 이 사건은 그야말로 대 혼돈이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 허벅지까지 덮는 깁스를 차고 젖을 제대로 빨지도 못했던 아기는 밤마다 찢어지는 울음을 울었다. 우리는 그 울음이 갓 태어난 아기가 의례히 겪는 배앓이 때문일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것은 도무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한 달이 넘도록 이어졌다. 아기를 달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해갔고 가족들을 향해, 특히 나의 산후조리를 위해 방문 중이셨던 엄마를 향해 짜증을 쏟아냈다. 엄마는 밤마다 발을 동동 굴렀다. 잠들지 않는 아기도 걱정스러웠지만 엄마의 서른 된 진짜 아기가 마음 졸이며 우는 꼴을 도무지 지켜볼 수 없어 밤을 지새우며 함께 우셨다. 모성은 제 자식을 향한 일방통행 직진으로만 뻗는다. 두 여자는 제 품에서 나고 자란 자기 아기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매일 밤 고통했다. 화음이는 젖을 빨지 못했다. 수유 전문가의 진료도 받아보았지만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나중에 화음이가 ‘엔젤만신드롬‘ 진단을 받은 후에야 우리는 아기의 근육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젖을 빨지 못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아기는 젖을 빨지 못했을 뿐 아니라 겨우 삼킨 분유도 분수처럼 토해냈다. 아기를 도무지 눕혀둘 수 없었다. 아기는 집 안에서도 카시트에 앉아 잠을 자야 했다.
선율이는 동생으로 인한 이 모든 비극 속에서도 의연했고 여전히 명랑했다. 나는 선율이의 순수와 밝음에 때때로 웃을 수 있었다. 이제 고작 4살을 넘긴, 엄마 품에 마냥 파고들어 응석을 부려야 할 아이가 졸지에 ’ 언니’가 되어 자신의 엄마를 동생에게 내어줄 수밖에 없었음에도, 크게 요동치 않고 묵묵히 그 상실을 감내했다. 그 시기에 아기를 온전히, 조건 없이 사랑했던 사람은 어쩌면 선율이 혼자였던 것 같다.
어른들이 이 비극을 해석하고 소화하느라 ’ 사랑‘하라고 주신 아기를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의 사랑이 도대체 어디 있느냐며 하늘을 향해 가증스러운 손가락질을 해 대는 동안, 선율이는 자신의 기도의 응답으로 주신 ‘동생’을, 그 생명을 한없는 경이로 받아들였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없이는 결코 천국에 갈 수 없다(마태복음 18:3)’하신 말씀이 이런 것이었을까. 거센 풍랑 속에서도 단잠을 주무셨던 예수님처럼, 이 모든 혼란과 서로를 향해 달려드는 어른들의 드센 욕지기에도 잠잠히 동생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선율이의 평안이, 그 어떤 시련에도 사랑으로 오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라는 교훈은 아니었을까.
기형의 발을 가진 아기는, 그렇게 언니의 지극하고 사랑스러운 눈길 속에서 아픈 중에도 영차, 힘을 내었을 것이다.
사랑으로 당도한 이 세상이, 눈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아마도, 언니의 반짝이는 눈을 통해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두 자매는, 철없는 어른들의 의미 없는 싸움 속에서도 사랑으로 단단하게 서로를 묶었다.
* 제목 이미지 : 렘브란트-갈릴리 호수의 폭풍(1633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