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채플힐의 첫 풍경은 온통 초록이었다. 몇 년 전, 사회생활에 지쳐 너덜거리던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던 중 나의 조언을 가만 듣고 있던 친구가 영혼 빠진 목소리로 “넌 정말 초록 속에 살고 있구나. “ 했었는데 나는 그 당시 친구의 말속에 담긴 삶의 고단함을 읽어내지 못하고 내내 헤실거렸었다.
나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하고 대전으로 내려가 신혼집을 꾸렸다. 방과 후 교사와 입시학원 강사로 일하긴 했지만 친구들이 말하는 소위 ‘사회’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그들에게 건네는 어쭙잖은 조언은 그야말로 이상향에 가까웠다. 나의 ‘뭐든 둥글게 둥글게’ 식의 조언을 들은 그 친구가 어떤 마음으로 ’ 너는 정말 초록 속에 살고 있구나.’했었는지 지금에 와 돌아보면 참 낯이 뜨거워진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날 수화기를 통해 전해진, 약간의 공허가 섞여있던 친구의 그 말을 떠올리곤 한다.
친구의 말속에 담겼던 ‘초록’의 의미와는 다르긴 하지만 나는 이제 정말 문자 그대로의 ’ 초록‘ 속에 살게 되었다. 채플힐은 눈이 닿는 모든 곳이 나무였다.
2013년 3월 20일, 우리는 채플힐에 도착했다.
남편의 박사 후(Post Doctor) 과정으로 짧으면 3년, 길게는 5년 동안 머물 계획이었다. 이제 막 4살이 된 선율이와 뱃속에서 20주 차에 접어들고 있는 둘째와 함께였다. 미국에서의 장기 거주를 준비할 때 주변 이웃들은 ’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경험이 해외살이‘라며 부러운 소리들을 했었다. 그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남들의 부러움을 산다는 것이 내심 흐뭇했던 것 같다.
잘 다녀올게요, 다녀와서 만나요, 했었는데 그 인사는 지키지 못한 약속으로 바래져 이제는 이웃들의 얼굴조차 잘 떠오르지 않는다. 길면 5년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살이가 이렇게 12년이 될 줄 그땐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여행자의 마음만큼 가벼운 것이 없다. 물론, 여행의 목적에 따라 그 마음의 무게야 천차만별이겠지만 내가 미국에 도착했던 당시에 느꼈던 마음은, 뭐 하나 거칠 것 없이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낯선 것에 대한 긴장은 오히려 설렘에 가까웠다. 운전면허를 따고 중고차를 구매하고, 인터넷을 설치하고 기본적인 가구들을 들여놓는 등의 주거 인프라를 어느 정도 갖추고 나니 끝이 정해진 꿈같은 장기여행이 그제야 요이땅, 시작된 것만 같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뱃속 아기는 쑥쑥 자랐다.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뱃속에서부터 남다른 에너지를 자랑했는데 태동이 한번 시작되면 뱃가죽 위로 발바닥 모양이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로 좁은 뱃속에서 쭉쭉 다리를 뻗어댔다. 그럴 때면 나는 얼른 선율이를 불러와 뱃가죽 위로 불쑥 나타나는 아기의 발바닥을 만져보라고 설레발을 쳤다. 그러면 선율이는 와아, 경탄하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배 위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우리는 뱃속 아기를 ’ 포도’라고 불렀다. 첫째의 태명을 ’ 나무’로 지을 때에는 몇 날 며칠을 고심하며 진지한 논의를 거쳤었는데 둘째는 그냥 떠오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포도’가 되었다. 과일 중에 하필 포도였던 것은 특별한 이유 없이 그저 포도의 발음이 가장 동글동글하고 청량하게 느껴져서였다. 뱃속에서부터 포도로 불려 세뇌된 것인지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둘째는 지금까지도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청포도이다. 그렇게 내 뱃속에서 알알이 여물어가던 ’ 포도‘는 여름이 절정으로 뜨겁던 7월의 마지막 날 드디어 나의 품에 안겼다. 남다를 것 없던 우리의 사사로운 일상에 대변혁, 완전한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2013년 7월 31일, 저녁 7시 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