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 잠자리를 봐주러 침대방에 들어갔다가 쌍둥이가 잠들자 숨죽이며 몰래 방에서 나왔다. 곧이어 뒤에서 타다다다 소리가 나더니 어느덧 일곱 살 첫째 아들이 내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고 베시시 웃으면서. 저녁내내 시끌했던 공간이 이제 겨우 고요해졌는데.. 혼자만의 시간을 누릴려고 했더니 눈치 없는 그가 찬물을 끼얹는다.
어릴적 나도 종종 밤 늦게 드라마를 보는 엄마 옆을 기웃거렸기 때문에 자라고 모질게 타이르지 못했다. 결국, 드라마가 끝나면 자겠노라 약속을 받은 후 'tvn 산후조리원- 최종회'를 함께 시청했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옆에서 아이가 잔잔히 던지는 질문이 그때 그 시절을 상기 시켰다.
"엄마, 조리원은 다 가야하는 거야? 나도 저런 침대에 누웠었어? 엄마도 내가 새벽에 울때 아기띠하고 저렇게 안아줬어?
나는 얼마나 밤에 많이 울고 칭얼댔는지, 두 시간마다 우유를 달라고 보채서 엄마랑 아빠가 잠을 못자고 눈가가 쾡했는지 설명해 줬다. 어느 정도로 까다로웠는지 설명을 늘어놓는 엄마의 대답에서 아이는 본인이 얼마나 사랑받은 사람이었는가를 확인하고 느끼는 듯 했다. 그리고 부모의 체취와 음성으로만 어렴풋이 기억되는 영아 시기가 자기에게도 있었음에 안도하고 행복해했다.
남편과 정말 딱 한 시간만 마음 놓고 원없이 자보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쌍둥이가 태어나고부터는 아이들이 통잠을 잘 때까지 두 달 남짓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남편은 견디다 못해 회사 화장실에 가 졸기도 했다고.. 우리 둘 모두 길가에서 졸려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돌림노래처럼 내뱉었다.
‘날씨가 좀 추워졌다 싶더니만 또 아프네…. 나도 어릴 때 감기 잘 걸렸었는데. 나 때문인가?’
아픈 아이를 보면 오만 가지 생각에 마음이 어지럽다. 첫째는 자연 분만을 해서 나름 ‘면역력 샤워’를 해줬는데, 쌍둥이는 제왕 절개로 낳아 자주 아픈 걸까? 유도 분만을 하며 이틀을 버티다가 결국 수술을 한 것인데…. 그래도 더 버텨 볼 걸 그랬나. 코가 막혀 밤새 뒤척이고 마른기침을 연거푸 쏟아 내는 아이들을 볼 때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죄책감이 유유히 떠오른다.
초보 엄마 시절, 아이를 키울수록 자라나는 불안감은 나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자책과 우울의 마음을 불러오곤 했다.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이자 남편의 짧은 출산 휴가가 끝난 날, 불안한 마음이 시작됐을 것이다. 그날 나의 미션은 아이와 단 둘이 저녁까지 잘 버티는 것이었다. ‘과연 내가 너를 잘 돌볼 수 있을까’로 시작된 물음은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라는 끊임없는 반문으로 이어졌다.
내가 이렇게 열심인 이유는 결혼이 이제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혼은 더 이상 꼭 해야 하는 인생의 통과의례가 아니다. 자식을 낳는 것도 선택이 되는 현실에 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또 남들이 보기에도 완벽한 모습의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세상에 ‘좋은 엄마’란 없다고 생각한다. 내게 ‘좋은’이라는 수식어는 ‘만족할 만하다’, ‘적절하게 좋다’는 뜻 정도일 뿐이다. 누가 ‘좋은 엄마’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정확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좋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다만 ‘나다운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본 글은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에서 발췌되었습니다.
2020년 12월 중순 이후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