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육아와 욕과 클래식

by 김화영


'언제쯤 이 지겨운 일상을 그만둘 수 있을까'라고 되뇌이던 때가 있었다.

자매로 커온 내가 첫 아이로 아들을 출산하고 둘째로 아들 쌍둥이를 임신해 한창 두 살 터울의 세 아이를 삼둥이처럼 돌보던 시기였다. 쌍둥이 백일을 친정엄마의 도움으로 겨우 넘기고, 이모님 없이 세 아이를 유모차에 이고지며 힘겹게 돌봤다.


그땐 너무 힘들어서 벽을 보며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고 아이들이 울때면 '너네만 울줄 아냐! 엄마도 울줄 알어!'하면서 아이들 울음에 뭍어 같이 울어 재꼈다. 늘 어른 수보다 아이 수가 많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초조함은 툭툭 튀어나온 욕으로 발화되기도 했고 이따금 묵언수행의 형태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 내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내가 너랑 결혼해서 너를 이렇게 만들었구나'라는 육아 소회와 함께 가족을 이뤄 나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육아란 뭘까라는 궁금증을 품게 했다.


결혼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육아란 또 뭐란 말인가.

아이를 낳아 세대를 이어나간다는 것은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인 것일까.

육아의 의미는 무엇일까.

갖가지 의구점이 내 안에 마구 샘솟았다.


그 치열한 접점에서 나는 종종 화가 치밀거나 난감한 순간을 내 방식으로 다르게 해석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독박 육아가 사흘 이상 지속되면 욕이 절로 나오는 순간을 만난다. 새벽 여섯 시 반 남편의 출근을 시작으로 세 아이 모두 잠든 밤 아홉 시 반까지, 14시간이 넘는 시간을 육아와 집안일을 하며 보냈다. 아직 야근 중인 남편에게 집에 언제 올 거냐는 문자를 남겼다. 그는 야근이 끝나고 회식 중이라며 술에 취해 천진난만하게 웃는 사진을 보내 왔다. 문자를 확인하는 순간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일년 중 어떤 날은 남편이 ‘이번 달은 한 달 내내 야근을 하니 저녁에 나를 찾지 마시오’라고 통보하는 달도 있다. 물론 회사 일로 가장 바쁜 달이니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이건 18색 크레파스와 시베리안 허스키로도 모자라는 한 달이 될 것이라는 예보나 다름없다. 언젠가 한번은 아이들이 있는 상황에서 내가 욕을 하자 남편이 화를 낸 적이 있다. 얼마나 한계에 이르렀으면 욕을 했을지 생각하지 않고 잘못된 행동만 지적하는 그가 미웠다.


“한 달 내내 혼자 애 보면서 밤에도 애들 뒤척이는 소리에 잠도 못 자는데, 너는 이 상황에서 내가 우아하길 바라니? 내가 지금 정상적인 상태로 보여?”


나는 억울하고 악에 받쳤지만 차마 입으로 계속 욕을 할 수가 없어서 A4 용지에 욕을 썼다. 5분 정도 펜을 휘갈긴 후 써 놓은 욕을 찬찬히 읽어 봤다. 글로 적힌 욕을 쭉 읽고 나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머, 내가 이렇게 욕을 잘했었나?’



욕을 하고 나면 입은 시원해진다. 하지만 시원함 뒤에 오는 공허함이 있다. 속에서 올라오는 울분 덩어리를 밖으로 던져 뱉는 것일 뿐이니 그런 기분이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커가는데 매번 욕을 하며 근근이 버틸 수 없다.



재모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날, 뭐라고 따끔하게 말해야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을지를 생각하면서도 치솟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침 식사를 준비하며 틀어 둔 라디오에서 클래식 교향곡이 흘러나왔다.


마침 내 분노가 최고조에 이르려 할 때 쇼스타코비치와 라흐마니노프가, 숙련된 연주자의 신들린 손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줬다. 클래식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곡을 지은 작곡가는 물론 연주자들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선율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게 된다. 내 안에 들끓어 오르는 화를 경이로운 창작물의 감상으로 전환하면서, 집이라는 한 공간에서 내 영혼이 이동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클래식라디오그림.jpg 우리집 라디오는 늘 93.1 MH에 주파수가 맞춰져 있다. 언제든 틀면 음악이 나오도록...



*본 글은 2020년 12월 9일에 출간된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에서 발췌되었습니다.


책 정보 바로 가기:

교보문고 https://bit.ly/2K7ymSB

예스24 https://bit.ly/3qDoVLk

알라딘 https://bit.ly/3qQYFNM

인터파크 https://bit.ly/3oCvCv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