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아프면 내 시간도 멈춘다.
어제까지만 해도 날이 서듯 촘촘했던 하루가 아이 병간호로 올 스톱이다.
보통 일주일을 버티면 병세가 호전되기 마련인데 이번은 다른 때와 다르다.
일요일 오후부터 오르기 시작한 셋째 아이의 열은 서너 시간을 간격으로 금요일까지 지속됐다.
극도로 예민해진 나는 이미 세 아이가 잠든 후에도 늦은 밤과 새벽에 내 시간을 한 터럭이라도 마음 편히 보낼 수 없음에 화가 났다. 그리고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에 짜증이 났다.
열이 39도가 넘나드는 아이의 잠을 깨워 해열제를 먹이는데 먹지 않으려는 아이와 먹이려는 엄마의 사투에 왈칵 눈물이 났다.
평소 같으면 먹어야 열이 내린다고 온몸으로 거부하는 아이의 손사래를 막으며 어르고 달래는 힘겨운 새벽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매번 되풀이되는 상황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문득,
‘내가 지금 뭘 하는 것일까.. 쓰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은 아이를 돌볼 때인데..
내 일을 갖는 것이란 여전히 내게는 사치인 것인가.. 이 와중에도 글 쓸 시간을 조금이라도 찾으려는 나는 이기적인 엄마인가..’
라는 생각이 요동치며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여기지 말 것
사람들은 살면서 누구나 가슴에 삶을 지탱해주는 것을 하나씩 품고 살아간다.
그것이 돈을 쓰는 일이든 마음을 주는 일이든, 아니면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든 뭐든 말이다.
이따금 힘든 상황에 맞닥뜨리면 주어진 상황을 버텨나갈 수 있도록 내가 빗나가지 않게 단단히 잡아주는 것, 그것이 내게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일을 좋아했던 내가 일을 포기하면서 세 아이를 돌보는 육아에서 나를 잃지 않고 중심을 잡아준 버팀목이었다.
나는 행복하다는 말 대신에 ‘좋다’라는 말을 동의어로 잘 말하곤 한다.
정말 좋은지, 딱 그만큼 좋은지, 좋다 뒤에 오는 감탄사가 붙는지의 유무에 따라 행복의 유의어로 자주 쓴다. 그래서 ‘행복해’라는 말보다 좋다는 말이 내 행복의 증거일지 모른다.
그러다 보니 오늘 마주하게 될 ‘내 시간’에 예민해진다.
그래서 나는 ‘읽고 생각하고 쓰는’ 내 소확행을 위해 오늘의 육아라는 치열함을 뚫고 지나간다.
*본 글은 <엄마이지만 나로 살기로 했습니다(21세기북스)>에서 발췌되었습니다.
2020년 12월 중순 이후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