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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근영 Jan 27. 2020

지나가는 계절

시린 날들을 지나온 나에게

 레이크 디스트릭트, 동화책 <피터 래빗>의 작가인 베아트릭스 포터가 그녀의 생애를 마무리하는 장소로 선택했을 정도로 아름다운 영국의 국립 공원이다. 2018년 겨울의 한가운데, 나는 레이크 디스트릭트의 앰블사이드 피어에 있었다. 몇 개인가의 산책길과 크지 않은 잔디밭으로 이루어진 공원이 호수 옆에 조성되어 있었는데, 나는 그 곳의 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이 없어서 나는 호수가 가장 잘 보이는 명당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내 눈앞에 바라다보이는 앰블사이드 호수는 그림 같이 아름답고 평화로웠다. 호수는 무척 잔잔하고 그 너머의 언덕은 겨울임에도 푸릇하며 호수 전체에 낀 옅은 안개 덕에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앙상한 가지를 빽빽하게 뻗은 나무가 아름다운 무늬를 그려낸 호수의 왼편에는 좀 더 짙은 안개가 신비롭게 호수 위로 피어올랐고, 다른 쪽에서 두터운 구름을 뚫고 산 너머로 따뜻한 햇살이 퍼지고 있었다. 하늘에서는 구름과 햇살이 그려내는 빛의 무늬가 서광처럼 비쳐 따스해 보였다. 



 그 순간 왜였는지는 모르겠다. 호수가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랬을까, 그곳의 평화로움이 내 마음 속에 파문을 일으킨 걸까. 갑자기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이어폰에서 재생되고 있던 럼블피쉬의 <사랑의 계절> 속 가사가 불현듯이 귀에 꽂혀 들었다.     


그대와 나 손 꼭 잡고 이 길을 걷는다
시린 날들 모두 잊혀져 간다
다신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던 이 계절은
그대 있어 더 따스하고 따스하다

그댈 만나 내 가슴에 새 살이 돋는다
다시 수줍은 듯 꽃을 피운다
마치 단 한 번도 상처받지 않았던 것처럼
널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관계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갑자기 버려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아무것도 모른 채로 철저하게 관계가 단절되는 경험은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는 채 아물기도 전에 또 파내어지고, 또 파내어지곤 했다. 처음의 중학교 1학년 때의 단절도, 그 이후 재수학원을 다닐 때의 그것도, 마지막으로 대학교 1학년 때의 일도. 단절의 고통은 겪을 때마다 생경하기만 했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수많은 시간들을 공유하고 있던 이들에게 거부당할 때마다 마치 처음 겪는 것처럼 아프고 괴로웠다. 함께 했던 그 과거의 시간은 거친 생채기를 남기고 뜯겨 나갔다. 떠올리면 즐거웠던 순간들이 색이 바랬다.


 미숙한 나이에 남겨진 상처를 딛고 얼마나 성숙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었겠냐만은, 나는 그 단절의 원인을 마주하지 못하고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저 내가 겪어야 하는 고통이 원망스럽고 괴롭기만 했다. 반복되는 단절의 원인이 나에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 자신은 내버려두고 나의 밖에서 그 원인을 찾았다. 예고 없는 통보와 함께 떠나간 그들이 미웠다. 


영화 <이별계약> 스틸컷


 ‘너 자신을 알라.’ 일견 쉽고 단순해보이는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직접 깨닫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나는 세 번째 통보 후에야, 그제서야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문제를 발견했다면 개선하면 그만이었을 텐데. 나는 그만 더 위축되고 말았다. 아, 내가 문제였구나. 아, 다들 내 본질을 깨닫게 되면 나를 떠나겠구나. 더는 가감 없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기는 어렵겠구나. 그리 생각했다. 나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 나는 나 자신에게 참으로 가혹했다. 너, 네가 문제야. 나를 질책하고 비난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시름시름 앓았다. 관계에서 받았던, 채 아물지 않고 있던 상처가 곪아갔다. 곪은 상처는 나 자신을 삼켰다. 친구라는 게 뭔지 이제 더 이상은 모르겠어. 타인과는 점점 더 거리를 두었다. 내 편이라곤 하나도 없는 타지에서 나는 점점 더 외로워졌다.


 그렇게 몇 년을 홀로 있었다. 노래의 가사에서처럼 시린 계절들이었다. 새로 알게 된 사람들과도, 그 누구보다 가까워야 할 애인들과도 거리를 두었다. 언젠간 떠날 이들이니 마음을 주면 안돼. 그렇게 믿었다. 남들과 함께인 때도 외로웠고 혼자인 때도 지난 날의 상처를 곱씹기만 했다. 나는 마치 산산조각난 유리컵과도 같아서 다시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이란 천 년의 바위 같이 단단해서 쉽게 깨지지 않았다.


영화 <상성(상처받은 도시)> 스틸컷, eunzikim 블로그


 그러던 그해 영국에서의 그날, 앰블사이드의 호수를 바라보던 그 순간에. 주체할 수 없이 터지던 울음에서, 귀에 꽂혀들던 노래의 가사에서 불현듯 깨달음을 얻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던 계절이 내게도 왔구나. 아무리 거리를 두고 밀어내도 묵묵히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던 그 사람 덕분에 어느새 시린 계절을 지나왔구나. 코끝이 시린 겨울 공기 속에서 나는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지난날의 그 기억들을 견뎌내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나.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지. 매 순간이 절망이던 때,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가장 가혹했던 그 순간들. 이미 죽은 것 같은 상태로 혹독한 계절을 지나오던 때. 


 아름답고 평화롭기만 한 호수 앞에서 나는 그동안의 시린 계절들을 돌아보며 꾹꾹 눌러놓았던 감정들을 마음껏 풀어놓았다. 그 형태가 울음이었던 것은, 그 시절이 슬퍼서 그랬던 것보단 그 시절을 거쳐 잔혹하게 찢겼던 상처 위로 어느새 새 살이 돋아있는 것을 갑자기 깨달았기 때문이다. 곪아 터져있던 상처들이 어느새 아물어 있었다. 산산조각 난 유리조각들을 이어붙여봤자 너덜너덜할 뿐일 것 같지만, 깨졌던 조각을 이어붙인 이음새가 오히려 아름다운 무늬가 되어주는 것처럼 내 상처 또한 그랬다. 지난날의 상처는 오히려 아름다운, 그 때를 견뎌냈기에 아름다운 흔적으로 남았다. 그때 나를 떠났던 그들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나의 본질이 아니라 나의 행동에 불과했음을 이제는 안다. 나의 본질은 다른 이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아름답다. 그 깨달음은 마치 기적이었다. 



 나의 상처에는 기적처럼 새 살이 돋았다. 흉하다고 생각했던 흉터는 아름다운 무늬로 남았다. 여행은 때때로 기막힌 깨달음의 순간을 선사하는데 앰블사이드 피어에서의 그 순간이 바로 그러한 순간 중의 하나다. 나는 앞으로도 이 순간의 깨달음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소망했다. 내 본질은 아름답고, 따라서 나는 다른 것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에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힘든 일이 있어 잠깐 그 본질이 흐려져도 그 순간을 이겨낼 힘이 나에게 있음을 잊지 않기를. 현재에도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앰블사이드 피어에서의 순간을 기억에서 꺼내어 본다. 그러면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나 자신이 현재의 상처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어느덧 30대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서투른 나지만 조금씩 성장한다.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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