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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슬 Oct 31. 2020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대치 데모

날 좋은 주말이면 어딜가나 맞닥뜨리는 데모의 베를린

2019년 6월 1일  ·           


벨린살이 4년 되는 날 소회 - '나는 어쩔 수 없는 데모 고모'

왜냐면 오늘도 벨린은 데모 중. 

게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라는 극한의 대립각.


마침 독일살이 4주년을 기념하러 룰루랄라 놀러가는 길이었는데, 대중교통 환승역에서 전에 미투 그룹이 데모할 때 취재왔던 사진기자가 랩탑 두들기며 일을 하고 있더라고. 아는 척 할까 하다가 우리도 바빠서 그냥 갈아타러 가려는데, 출구마다 경찰들이 삼엄하게 늘어서 있길래 뭔가 싶어 나가보니...


사거리에서 '이스라엘이여 영원하라!' 외치는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 국기를 들고 '우리 아이들을 지키자!'고 외치는 팔레스타인 그룹이 경찰차들을 사이에 두고 대치 중.ㅜㅜ

최근 노래와 흥이 넘치는 데모만 보다가 일촉즉발의 심각한 데모를 접하니...가뜩이나 심각한 주제로 지켜보던 이슈라서 그런지 참으로 심란해졌다.


옆지기가 그러는데, 한 중도성향 정치인이 양측 데모를 모두 불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민주주의의 척도인 시위를 무슨 이유로든 불허할 수 없다'는 여론의 반발에 부딫혀 철회했다는 것이다.


응. 나 이런 곳에 살고 있는거지. 

웬만한 세상 갈등 다 드러나는 곳. 드러내는 곳.

4년 동안 데모한 기억밖에 없는 곳.

재미있고 창의적인 문화공간을 만들어보고자 모임 하나 만들려다가, 결국 아시아 인권을 생각하는 모임을 먼저 만들어야 할 처지가 된 그런 곳.

무슨무슨 '문제'라고 하지 않고 '이슈'라고 말하는 곳.


결론적으로, 세상 이슈 다 끌어안고 기도를 더 쎄게(!) 해야 하는 곳에서 4년 무사히 살게 해주심에 감사하자는 급마무리~




이-팔 갈등은 정말 가벼이 넘어갈 수 없는 주제이기에 페이스북의 기록(a.k.a 심화버전)을 남겨 봄.


2019. 2월

Antisemitismus in der DDR (구동독 시기의 반유대주의) 이라는, 시에서 하는 정치교육 세미나를 신청하고야 말았다.ㅜ 

2년만에 다시 다니고 있는 독어 학원이 어쩌다보니 유대인 Jewish 기관. 처음엔 무장 경찰이 지키고 있길래 여기 뭥미 했는데, 베를린 시내 모든 유대인 관련 시설에 경찰이 배치돼있고 그나마 여기가 경계가 덜 삼엄하다는 말에 후덜덜 하면서도 그런가부다 하고 다닌다.

고급 회화가 자유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포지션 잡기가 힘들지만, 평소 궁금했던 유대 역사 이야기의 한 가운데 있어서 매일매일이 흥미롭다고나 할까.


물론, 11살 아이가 학교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전하는 여성을 보며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아우슈비츠 생존자이며 독일 여성과 결혼해서 정착한 60대 연금생활자, 대사관 부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30대의 두 아이 엄마, 독일인 남편과 텔아비브에서 카페를 하다가 베를린에 카페 오픈하러 온 30대 여성, 독일 관청에서 일하는 초긍정 50대 여성 등등 다양한 유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간 피상적으로 생각해왔던 홀로코스트, 독일의 치열한 반성적 역사교육, 팔레스타인 점령지역에서 벌어지는 극악한 상황에 아이러니함을 느끼던 나의 문제의식이 생생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이번주는 ‘독일 사회에서의 터부 Tabu’가 주제였는데, 아마도 모두가 예상했을 ‘이스라엘의 터부- 시오니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드디어 오늘 말이 나왔다.

나는 혹시나 이들에게 아픔일 수 있는 얘기같아서 꾹 눌러 참고 있었는데, 평소 우아하고 조용하게 경청만 하던 뉴질랜드에서 온 편집자가 선생님을 통해 간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이스라엘에게 팔레스타인은 무엇인가?


아...이 질문 이후로 쏟아진 잠시의 침묵. 천명이 천개의 의견을 갖고 있다면서 모두 입을 다물었을 때 나의 부가 질문으로 인해 터져나온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 정리할 수 있을까. 마치 방언 터지듯 쌓여온 이야기를 쏟아내는 이들에게 선생님은 간간이(아마도 일부러) 문법적 오류를 지적해줄 뿐 조용히 듣고 있었다.


예멘, 루마니아 등등 각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의 후손인 이들은 자기 가족 이야기를 하며 누구는 흥분하며 600만 홀로코스트를 이야기했고(심지어 그 분은 한일관계와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했던 나의 발언을 되새기면서 당신네도 역사의 아픔이 있으니 잘 알지 않느냐, 해결점이 어디 있더냐는 말을...ㅜ) 누구는 침착하게 그럼에도 우리가 팔레스타인인들과 함께 공존할 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희롱당했다는 아이의 엄마는 ‘해결점은 없다'고 고개를 저었는데 나는 그게 제일 마음이 아팠다.


수천년 누적된 역사의 아픔, 근현대에 벌어진 끔찍한 일들 이 모든 축적된 분노와 증오와 슬픔이 왜 죄없는 아이들에게 대물림되어야 하는 건가. 


독일로 난민 백만명이 밀려온 수년 전에 난민캠프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각 인종과 종교에 따라 부모들의 증오를 그대로 내재화해서 서로 이유도 없이 뜯고 싸우던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 때의 좌절감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데, 그래서 이렇게 희망없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마음이 더 아픈 것 같다. 그럼 대체 어쩌자는 말인가. 이 아이들을…


어쩌자고 나는 유대인 중에서도 극우 근본주의자들 그룹인 하레디 이야기까지 하면서 대화에 끼었을꼬. 들으면 들을 수록 복잡하고 난해한 역사의 응어리들. 세계사 책을 꽤 읽었어도, ‘자기 이야기’로 말하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책 속의 이야기는 그저 ‘그들’의 역사일 뿐…왠지 비슷한 부침의 역사를 가진 것 같아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각자 자기 맥락이 있는 것이니 섣부른 동기화는 금물일 것 같다.


그럼에도 상처 깊은 역사가 없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려우니, 인류 보편의 지혜로 미래를 강구해봐야 할텐데…


‘반성하는 독일’이 그나마 이제까지의 국제관계 모델 중에서 좀 바람직해 보이는데, 그도 목소리 큰 나라를 상대로 한 반성이라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일본 아베 정권을 생각하면 이거라도 어디냐 싶지만.


내친김에 세미나 신청까지 했으니, 이번 기회에 지금 독일 사회의 뜨거운 이슈인 반유대주의 움직임에 대해 좀 더 들여다봐야겠다.

어제 시작된 베를리날레 행사에서 뮐러 시장이 '반유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는데, 국제 영화제에서 주최 도시 시장이 뭔 뜻으로 이런 얘기를 했을까(그만큼 상황이 심각하다는 의미로 60대 남성분은 이해를 하더라만은) 를 생각해보며...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점을 찾는다면 큰 소득이겠지만, 아니라고 해도 누가 말리겠는가 이 노머니 호기심을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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