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쁜 것에 홀려 놀다, 사람들의 꿈을 디자인하는 정원 디자인 이야기
그게 꽃을 즐기며 가든(정원), 원림으로 다가가는 일인 줄도 모르고
그냥 꽃에 취해 자연에 취해 청계산 자락의 야생화 작품 연구실을 어슬렁 거리며 꽃을 배웠다
산에서 한 삽 떠온 듯 자연스러운 야생화 작품 만들기를 배웠다. 어떤 이는 꽃집에서 처음 데려온 이쁜 튤립이나, 백합이나, 작약 한송이가 꽃밭-정원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겐 그날 거기서 선생님의 작품 중 유독 탐했던 분홍 산수국 하나가 시작이었다. 그날은 지갑도 안 갖고 머리 터지는
개발 프젝트를 잠시 잊으려 청계산 숲으로 가던 길이었다. 숲을 향하다가 아무 데나 그냥 이쁜 꽃이 보이면
서고, 들어가고 그랬다. 그러다 선생님의 야생화 작품 전시공간을 처음 만나 그 작품 화분들을 보게 되었다.
군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야생화 한 작품 앞에 서 있으니, 내게 "그렇게 좋으면 가져가라"라고
선뜻 내어 주신 그 선생님 호의로 이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날 트렁크에 가득 차서 문도 못 닫고
사무실까지 비상 운전을 해서 데려온 그 꽃 한 다발이 바로 시작이었다.
그 후 10여 년간 풀 꽃에 취해 배우고 놀며 나의 삶과 일에 풀 꽃의 아름다움을 들이게 되었다.
그러다 한 지인이 내가 가꾼 정원과 똑 같이만 해달라는 부탁을 해서, 그 공간을 구상하다
야생화의 생태 속성만 공부한 것으로 공간을 구상하고 만든다는 것은 무모하고 위험하며 무식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정원은 그저 꽃 밭이 아닌 자연의 집이자 사람이 생활하는 외부의 집, 즉 바깥의 또 하나의 삶의
공간임을 알아야 했었다. 그리고 그걸 아는 것과 그것을 만드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 간격을 채우고 익혀야 쓸 수 있음 또한 깨닫게 되었다. 정원 작가로, 자연을 삶에 들이고
함께 살게 하는 공간 디자이너로의 삶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알아야 할 것을 채우는 곳 학교- 꿈꾸고 바라는 바를 배우고 익혀 또 다른 삶으로 이동시켜주는
곳- 난 학교가 좋다. 그래서 영국 정원디자인 학교 1년간의 디플로마 과정으로 아쉬운 디자인
지식을 채우려 했다.
하지만, 런던 그 디자인 스쿨에서 만난 수많은 대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방식과 영국 ,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의 정원 스터디를 하며, 이 공부는 학교 안 뿐만 아니라 밖의 자연에서 평생 배우는,
끝나지 않는 수행과 같음을 알게 되었다.
학교는 뭘 가르치는 곳이기보다 평생 공부해야 할 목록을 잘 정리하여 끊이지 않고 공부할
용기와 방법을 깨닫게 하는 곳임을 또한 알게 되었다.
그냥 좋아하는 꽃 한 송이 심어 두고 보며 즐기자고 시작한 일이 너무 어마 어마 해졌다.
그렇게 다시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때 정원 작가가 되고 타인의 꿈과 삶의 공간을 구상, 창작하는 디자이너로 내 직업을 바꿔 놓은
것은 내 전 직업으로 한 창 잘 나가며 주가가 높던 2009년도의 초 가을 딱 9월 7일이었다.
그렇게 되는데 꼭 10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후 다시 13년이 지났다. 그러면서 이제야 꽃과 삶의 공간을
즐기는 짧고 간단한 길을 찾게 되었다. 공부를 많이 해야 쉬운 말로 이야기할 줄 안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그 좀 간결한 방법을 풀꽃 사랑꾼, 정원 사랑꾼들과 나누고자 한다.
이 땅의 일 중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이 일을 운전면허처럼 손에 쥐고 함께 그 긴 여행을 떠나길 바라며.
그리고 태어나면서부터 꽃 밭에, 자연에 살게 해 주신 아버지의 선물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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