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를 보면서 여러 감정을 느꼈다. 그 중 특히 부러움이라는 감정이 있었다. 양관식의 자식들이 나는 너무 부러웠다. 저렇게 오롯한 사랑을 주는 양관식 아빠를 가진 그들이 부럽고 부러워서 아빠 양관식에게 화를 내는 금명이와 은명이에게 그르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사실 내 아빠는 가정적이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정서적인 교류가 어릴 때부터 별로 없었기 때문에 성인이 된 지금은 약간 서먹할 정도이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 양관식 같은 아빠가 없음에 아쉽고 그런 아빠가 있는 금명이 은명이가 부러웠다. 그리고 금명이가 7년을 사귀고 많이 사랑함에도 파혼을 결정한 것, IMF로 회사에서 잘렸어도 나중에 사업을 시작해서 잘 된 것 등 어려움 앞에 위축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모두 든든한 양관식 같은 아빠 덕분에 할 수 있는 일들인 것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관계의 표상이 이후의 모든 관계와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애착이론이 나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 테다.
그런데 드라마를 다 보고 며칠이 지나서는 드라마 속 양관식은 양관식 같은 아빠가 없었던 것이 생각난다. 언제든 어떤 상황이든 시작은 있을터, 양관식이 시작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양관식 같은 아빠가 없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문득, 내가 양관식이 되면 되겠다는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의 아이, 남편에게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말이다..
누구나 양관식 하나쯤은 마음에 품고 살기를 권해본다.
무조건적인 온전한 사랑과 지지를 보내는 양관식 같은 존재 말이다.
양관식 같은 부모님이 없었더라도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면 어떨까?
그리고 나아가서 나의 중요한 사람들에게도..
마음속에 양관식 하나쯤은 우리 모두 품고 살아요.
비록 양관식 같은 존재가 삶에 실재하지 않았어도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