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매일 밤 초를 켰다. 우리가 생각하는 작은 티라이트나 보티브향초 하나가 아니라 팔뚝 하나만한 긴 장초를 매일 켰다. 엄마의 초에는 많은 기원이 담겨 있었다. 아빠가 술을 먹지 않기를, 아빠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되기를, 우리들이 잘 되기를, 우리들이 하느님의 딸로 잘 성장하기를, 가족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그리고 자신이 아프지 않기를. 초에는 정말 많은 기원들이 담겨있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내용은 제일 마지막에, 제일 끝이었나보다. 결국은 그렇게 스스로 삶을 놓아버릴 때까지 엄마는 초를 태웠다.
나는 그게 항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엄마는 자신이 아파서 죽을 것 같을 때에도 남을 위해서 기도를 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낫지를 않는데, 엄마가 좋아지지를 않는데, 그런데도 항상 다른 사람이 먼저였다. 자신의 아픔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는데 어떻게 자신의 아픔이 나을 수 있을까, 아무리 하느님이라도 그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괜히 하느님에게 화풀이를 했었다. 당신이 엄마를 그 우울의 구렁텅이로 데려갔으니까 책임지라고. 당신이 말한대로라면 엄마는 천국에 가야하는 사람이라고.
내가 아프고 병원에 간 이후 어느 날이었다. 나 역시도 초를 켜게 되는 날이 있었다. 어느 순간 그 일렁이는 불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 역시 아프게 된 그 순간을 저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삶의 굴곡은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삶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고 나 역시도 결국 불안과 우울로 약을 먹게 되는 삶이 되었으니까. 그 삶의 우연에 코웃음을 치고 싶었지만 나도 역시 우울증으로 자살한 엄마의 자녀가 되어 그 우울을 답습하는 것일까, 그런 끝도 없고 답도 없는 물음에 초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중이었다.
일렁일렁거리며 그을음을 내던 초는 금새 안정적으로 붙어서 불을 내기 시작했다. 불꽃을 바라보면서 마음에서도 불꽃이 일렁이는 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초에 대고 나의 이야기를 했다.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순간 번쩍, 초는 잠시 흔들리더니 다시 타올랐다. 나는 엄마처럼 죽고 싶지는 않아, 그리고 내가 겪었던 그 순간을 그 누구에게도 전달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나를 좀 살려주세요. 내가 좀 더 나아지고 안정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하느님, 제발 내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초를 켜고 향을 피우는 순간은 그런 이야기를 무수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빛의 일렁임은 나의 마음을 함께 일렁이게 하였다.
엄마, 그 초를 보면서 엄마는 무슨 기도를 했어? 그래서 마음이 조금은 나아졌어? 엄마를 살려달라는 기도는 언제나 마지막에 하면서, 마지막까지 혼자 외롭게 떠나갔으면서, 그래도 우리들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매일매일 바쳤어? 그런데도 그렇게 안녕을 빌었던 우리들을 떠나고 갈 만큼 많이 힘들었지? 그 촛불을 보면서 함께 기도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엄마, 나는 여전히 외롭고 참 쓸쓸해. 엄마가 엄마의 출구를 향해 달려갔던 것처럼, 나도 내가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열심히 살고 있어. 그래도 나는 떠나지는 않을 거야. 남은 자의 외로움과 고통과 슬픔은 내가 엄마보다 잘 알거든.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해. 나의 우울과 불안을 이해해주는 이들과 함께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해. 그래서 조금은 덜 괴로우려고 해.
그런데 엄마, 그 초를 보면서 했던 기도는 전부 이루어졌어? 그래서 지금은 편안해?
나는 여전히 답이 없는 물음을 계속, 계속 던진다. 나의 물음을 함께 머금은 초가 다 타서 녹아내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