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이 배밖으로 나왔나,
예전 같으면 자버렸을 것이다. 한 잠자버리고 나면, 머리를 꽉 채웠던 고민들도 어느 정도 가라앉고 새로운 시각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여유도 생기곤 했다. 나이가 들면서 새롭게 생긴 불면의 밤은 신경을 쇠약하게 만들었고, 기어이 병원에 입원케 하였다.
이제 병상을 두르고 있는 이 얇은 커튼은 방호막이 되고, 관계의 경계를 설정하며, 세상과 나의 선을 둘러주었다.
내 글의 색깔은 달라져버렸다.
“어머니, 제가 병원에서 외출을 허락받아서 집에 왔는데 이이가 자기 일정이 있다고 나가버렸어요. 이제는 연락도 받지 않고, 너무 서운해요.”
“큰 애가 다정다감한 앤 데 왜 그랬을까. 내가 그놈 뒤통수를 갈겨버릴 테니, 너는 집에서 괜스레 큰애를 기다리지 말고 그냥 병원으로 들어가 누워 쉬어라.”
시어머니와 통화를 하면 친정엄마와 다른 음색이 아주 드물게 위로가 된다.
“어머니, 이이가 제 연락도 받지 않고, 아이 연락도 받지 않고, 자기 일정이 있다고 나가버렸어요. 저는 병원인데 아이가 하루 종일 혼자 있게 생겼어요.”
“얘야, 나는 상속세문제만도 머리가 아프다. 네가 연일 연락을 하니 아주 신경이 쓰이는구나. 큰애가 너만 바라볼 수는 없다. 그걸 알고 너 알아서 하려무나.”
하루 만에 달라진 시어머니의 태도가 놀랍지 않다.
인사위원회에서 내가 제출한 병가에 대한 소명(?)을 하기 위해 동행한 남편이 두 팔을 걷어붙이고 대회의실에서 대기 중에 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내 두 손에 피를 묻힐 테니, 넌 가만히 있어.”
그 순간만큼은 중세의 그 어떤 knight보다 더욱 의기양양하고 멋졌다. 2주가 채 지나지 않은 지금 그는 나의 문자, 카톡에 대답이 없으며 전화도 받지 않고 있다.
동일인이라고 생각이 되는가?
인별그램에서 허겁지겁 용서를 하지 말라는 한 정신과의사의 멘트가 심금을 울린다.
아플 때마다 이 세상 누구보다 나를 외롭게 하는 사람. 배우자로 손 잡고 가는 게 맞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