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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누가 “중2병”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나 모르겠지만 참으로 용하고도 용하다. 중 2가 된 아이는 그야말로 반항 증세가 있는 “중2병”을 앓는 듯 했다.
“ㅇㅇ아~” 하고 부르기만 해도
“아, 왜애!” 하고 짜증을 부렸다.
“이것 좀….“하고 무슨 말을 시작하려 하면 다 듣지도 않고 무조건 ”싫어!“ 하고 잘라 말했다. 나는 이제 15살인 아이를 상대로 매일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언성을 높이게 되고, 이내 큰소리로 싸우다 쾅! 닫힌 방문을 사이에 두고 씩씩거렸다.
아이가 어릴 때 어른들은 말씀하시곤 했다. “애들은 잘 때 제일 예뻐.” 아이가 내 키를 훌쩍 넘길만큼 큰 지금도 아이는 쿨쿨 잘 때 제일 예쁘다. 낮에 그토록 치열하게 싸워놓고, 잘 자는지 아이 방 문을 빼꼼 열면서 ‘그래도 문은 안잠갔네.’ 싶어 문득 고마웠다. 잔뜩 웅크리고 자는 아이의 얼굴을 살짝 쓰다듬으며 그렇게 싸우다가도 금세 아무 일 없다는 듯 내게 와 종알종알대는 아이의 의연함이 또 문득 고마워 코 끝이 찡했다. 할머니와 내가 싸웠던 날도,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미안해하는 내게 아이는 말했다. “나는 괜찮아.” 그 짧은 한마디가 또 고마워 나는 울고 또 울었다. 매일매일 싸워도 어딜 가면 전화를 해 주고, 매일매일 짜증을 내도 어디 가자 하면 같이 따라 나선다. 그만하면 참 수월한 “중2병”이구나 싶어 나는 또 감사함이 차오른다. 이 아이가 내 아이라는 것이, 이토록 훌륭한 아이가 나의 아이라는 것이 나는 한없이 고맙고 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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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식었다. 몸 속에 불덩이가 이는 듯 땀을 뻘뻘 흘리다 이내 확 한기를 느꼈다. 원래도 감정적인 성격이긴 하지만, 감정의 기복이 미친년 널뛰듯 종잡을 수 없이 훅훅 바뀌었다. 불현듯 가슴 깊은 곳에서 이유 모를 서러움이 올라와 엉엉 오열을 하다 문득 내가 미쳤나 싶어 깔깔대고 웃었다. 눈이 깔깔한데 잠이 안 와 2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는 날이 반복됐다. 무엇보다 미치겠는 건, 모든 일의 원인을 내게로 돌린다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안좋은 이유들을 뾰족하게 갈아 내 가슴에 꽂았다. 나의 모든 것이 부끄럽고, 싫었다. 나는 하루에도 수백개씩 내가 얼마나 별로인지를 찾아냈다.
이대로 지내다간 안될 것 같았다. 세상 낙관적인 내가 이토록 비관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는 이유가 변해버린 성격 탓인건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 나는 알아야 했다. 그래서 병원에 가 갱년기 검사를 받았다. 할머니와 함께 살기 시작했던 때에도 비슷한 증상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때도 갱년기 검사를 받았었다. 물론 결과는 스트레스성 우울증이었지만 나는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졌었다. 내 탓이 아니다. 스트레스 때문이다. 그 한 가지 사실이 마음의 짐을 툭툭 덜어주었기에 나는 비관의 늪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번에도 나는 탓을 돌릴 대상이 필요했다. 내 잘못이 아닌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이라는 정당한 변명꺼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검사를 했고 일주일 후 나는 갱년기 진단을 받았다. 8년 전, 스트레스성 우울증 초기라는 진단이 오히려 나를 다시 밝음으로 이끌었듯, 이번의 갱년기 판정 또한 나의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었다. 맞아. 내 성격이 이상해서가 아니야. 내가 못돼처먹어서가 아니야. 그저 갱년기 때문이야. 이 시기만 지나면 나는 다시 괜찮아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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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암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나이가 많고 적음에 따라 암의 진행속도가 다르다고 한다.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의 몸 속 상황이 아무래도 느리다 보니 암의 진행 속도도 나이 든 쪽이 훨씬 느리다 했다.
치매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내 주변(시넷째할머니, 나의 두 이모들)의 상황만 보더라도 그렇다. 치매판정은 우리 시할머니께서 가장 먼저 받으셨지만 진행은 할머니보다 열 살 쯤 어린 시넷째할머니와 우리 넷째이모가 훨씬 빨랐다. 할머니보다 서너 살 어린 우리 둘째이모 역시 치매의 진행이 그리 빠르진 않았다.
지금, 할머니는 오히려 치매가 멈춘 듯 하다. 아니, 오히려 치매가 조금 나아진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짱해 보이신다. 치매가 나의 가장 큰 걱정일거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할머니의 편안한 임종이 가장 큰 걱정이다.
병원을 그렇게도 좋아하던 할머니신데, 요즘엔 병원에 ‘병’자만 꺼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신다. 식사를 못하신 지는 두 달, 액체류만 섭취하신 것은 한 달이 된 요즘, 할머니는 죽음의 두려움을 온 맘으로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내신다. 할머니의 가장 큰 걱정은 혹여 병원에서 혼자 죽게되면 어쩌지? 하는 것이다. 가족들 얼굴도 못 본 채 차가운 병실에서 혼자 죽음을 맞이하게 되실까 두려운 할머니는 병원만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 고집을 피우셨다. 우리 가족은 할머니의 뜻을 받들어 가정임종을 준비하고 있다. 준비래봤자 별 건 없다. 그저 할머니가 편안할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 그 뿐이다. 할머니의 뽀얀 얼굴은 어느 덧 회색빛이 도는 하얀색이 되었다. 팔과 다리의 근육이 다 빠져 살가죽이 젖은 빨래처럼 뼈 아래로 늘어졌다. 한번도 빠진 적 없던 뱃살이 푹 꺼져 고무줄 바지가 줄줄 흘러내렸다. 수면제 없이는 못주무시던 분이 하루에 반을 주무신다. 그래도 한참 치매증세를 보이시던 때보다 마음은 편안해 보인다. 이 얼마나 다행인가. 부디 숨을 거두시는 그 날 까지 할머니의 맘이 평안하고 편안하길 바란다. 그렇게 해 드리는 것이 할머니를 향한 나의 마지막 의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