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우리는 종종 이 말을 하곤 한다.
“내일 일은 모르는거야~”
맞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초여름까지 정정하시던 할머니가 6월 중순부터 하루씩, 이틀씩 센터 나가시기를 거부하셨다. 배가 아프시다는 게 이유였다. 센터 건물에 있는 내과에도 가보고, 할머니가 적을 두고 있는 종합병원에도 가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런 저런 검사를 하였지만 배가 아픈 원인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연세에 비해 너무나도 깨끗하고 건강하시단 소견만 연달아 들을 뿐이었다. 할머니는 이내 화를 내셨다. 본인은 아픈데 병원서는 자꾸 별다른 게 없다고 하니 답답하실 만도 하다. 영양제를 맞을 때가 되어 그러신가 싶어 제일 비싼 영양제도 맞혀드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영양제 양이 적다며 하나 소용없다고 또 화를 내셨다. 배가 아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다시며 7월부터는 아예 센터 가는 걸 끊으셨다. 참 이상도하지…… 배는 너무너무 아프시다는데 식사는 잘 하시니 말이다. 안먹으면 더 죽을 거 같으니 먹는다시는 할머니는 밥 한 그릇씩을 뚝딱 드셨다. 7월 중순 쯤, 이번엔 대변이 문제였다. 영~ 변이 안나온다며 또 화를 화를 내셨다. 가끔 변비가 심해지시면 응급실에 가 관장을 하곤 하셨기에 이번에도 그럴 요량으로 응급실을 방문했다. 응급실에서는 며칠 전 했던 검사들을 또 했다.
“이입분님 어디가 제일 불편하신 거세요?”
응급실 의사선생님께서 물으셨다.
“배가 자꾸 아프시다고 하시고, 변이 며칠째 토끼똥처럼만 나오고 안나온다고 하셔서요. 관장을 해야할까 싶어서요.”
“관장 할 필요 없으신데요? 여기 보시면 변이 그렇게 많지 않으세요. 혈액검사에서도 특별한 게 없으시고…… 특별히 이상은 없으신데요?”
이번에도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건강하시단 진단을 받고 응급실을 나오셨다.
“아니 내가 이렇게 아파 죽겠는데!!!”
할머니는 단단히 화가 나셨는지 집에 오신 후 아예 돌아누워 버리셨다.
그리고 또 며칠 후, 1년에 한 번 있는 대학 동기 모임 때문에 서울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신랑에게서 전화가 왔다. 119를 불러 응급실에 가고 있는 중이라고.
“뭐? 왜?”
“할머니가 몸을 막 떠시고 그래서……”
나는 깜짝 놀라 응급실로 달려갔다. 며칠 전 했던 검사들을 또 했다. 한참 뒤, 신랑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응급실 의사선생님께서 호출을 하셨다. 응급실 안으로 들어서니 침대에 누워 맞고 있는 수액을 살펴보고 있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할머니는 말짱해 보였다.
“이입분님…… 특별히 이상이 없으신데….. 어디가 불편하시다고 하셔서 오신거죠?“
이것은 데자뷰인가?……
“혈압이 너무 높아지셨을 때처럼 몸을 막 떠셨다고 해서…..”
“지금 보시면, 혈압도 괜찮으시고, 크게 문제되는 건 보이지 않으세요.”
“며칠째 계속 배가 아프시다고 하셨거든요.”
“장염 소견도 안보이시고, 특별히 이상 없으세요. 집에 가셔도 됩니다.“
집으로 오신 할머니는 또 화가 나셨다.
그리고 또 이틀 후. 일주일 전에 소변 검사를 해 놓은 것의 결과를 들으러 다시 할머니와 함께 병원을 방문했다. 다른 과들은 모두 이상없음. 그런데 비뇨기과에서 입원을 권유했다. 소변에서 수퍼박테리아가 발견되었는데, 매일매일 항생제 치료를 위해 내원을 하시기엔 할머니 연세가 너무 많아 편하게 며칠 입원치료를 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하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씀에 그리 하기로 했다. 병원에 입원하신다니 기분이 좋아지신 할머니는 입원 전 점심으로 호박죽도 한 그릇 다 드시고, 쌍화차도 한 잔 다 비우셨다.
그렇게 열흘쯤 병원생활을 하시다 퇴원 하신 할머니는 더 좋아지시기는 커녕 오히려 식사 거부에 들어가셨다. 여전히 배가 너무너무 아프다셨다. 밥 대신 죽을 조금씩 드시고 내내 누워계셨다. 죽을라면 얼른 죽기나 하지 왜 이렇게 지랄이냐며 눈물을 흘리시기도 했다. 8월 중순쯤부터는 일반 죽이 안넘어간다시며 단 것만 찾으셨다. 원래 혈당이 높고 조절이 잘 안되시는 터라 단 것 드시는 걸 자제해야 하지만, 요며칠 계속 제대로 드시는 게 없기에 단호박죽을 끓여 드렸다. 할머니는 단호박죽만은 그래도 잘 넘기셨다. 8월 말쯤엔 그마저도 안넘어간다시며 쥬스를 달라고 하셨다. 건더기가 있는 것은 삼키질 못하셨고, 조금이라도 걸죽한 걸 드시면 토하시기 일쑤였다. 할머니는 점점 차갑고 꿀떡꿀떡 넘어가는 걸 찾으셨다.
드시는 게 없고 누워만 계시니 근육은 하루가 다르게 빠져나갔다. 할머니의 종아리가 하얗게 마르고, 할머니의 팔뚝살이 쪼글쪼글 늘어졌다. 그렇게 9월이 되고, 할머니는 눈에 띄게 쇠약해지셨다.
할머니가 배아프시다며 드러누우신지 2달 반만의 일이다.
추석을 앞둔 지금, 할머니는 이제 나의 도움 없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지도 못한다. 드시는 거라고는 토마토 쥬스, 아침햇살, 뉴케어 뿐이다. 약 마저도 안넘어간다셔서 며칠 전 부터는 약도 끊었다. 수면제 없이는 잠도 못주무시던 분인데 지금은 하루의 반 이상을 주무신다. 늘 꺼지지 않던 TV인데, 요즘엔 영 켜지지 않는다. 그저 조용한 방에 누워 주무시다 멍하니 계시다를 반복하고 계실 뿐이다. 병원에선 이제 더이상 해 드릴 것이 없다고 한다. 그저 할머니께서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라 한다.
가족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영정사진을 준비하고,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코로나로 인해 왕래 못했던 친척들의 방문을 부탁드렸다.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고 넘긴다는데, 이번 추석이 어쩌면 할머니의 마지막 명절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추석을 쇠기로 했다. 넷째 할아버지네, 셋째 삼촌네도 오시게 해서 할머니도 봬드리고, 식사도 같이 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나씩 둘씩 우리는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른다더니…… 두달 반 만에 정정하다시던 할머니가 이렇게 눕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으랴. 이미 90을 넘기셨고, 이정도면 아쉬움 없이 돌아가실 때라고들 하지만, 죽음에 아쉽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죽음에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곤히 잠든 할머니의 꿈 속에 아무도 모를 내일이, 할머니만의 한없이 행복한 내일이, 더이상 미련도 두려움도 남지 않은 내일이 구비구비 펼쳐졌음 좋겠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꿈에서의 행복감이 여전히 남아 또 그 하루를 버틸 수 있는 작은 힘이 되었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