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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Jan 29. 2022

금슬

거문고와 비피의 노래

지리산 아래 외딴집에 노부부가 살았다. 언제부터인가 늙은 아내가 병들어 눕고 늙은 남편이 집안일을 맡았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하얀 요강 단지를 씻어 햇살 잘 드는 앞뜰에 엎어 두었다.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도 하였다. 오랜 세월 아내가 말없이 하던 일이다. 오후에는 마루를 닦고 마당을 쓸고 흰 고무신 두 켤레를 뽀득뽀득 씻어 댓돌 아래 가지런히 두었다. 허리가 꼬부라질 때까지 아내가 하던 일이다. 이제 늙은 남편이 담숭담숭 그 일을 한다. 아픈 아내는 마루 끝에 앉아 내내 남편을 바라본다. 늙은 남편의 굽은 등이 송구하다. 

“남자한테 그런 일을 하게 해서 미안해요.”


아내의 애틋한 시선이 등에 머무르고 있음을, 남편은 돌아보지 않아도 안다. 노인이 우울해진 노인을 위해 뒷짐을 지고 느릿느릿 닭장으로 간다. 노인 얼굴이 소년처럼 밝아져서 닭장을 나온다. 두 손에 담겨 있는 달걀 두 개를 아내에게 건넨다. 오랜 세월에도 식지 않는 남편의 온기가 고스란히 아내의 두 손에 전해진다. 아내가 소녀처럼 함박웃음을 짓는다.

“추운데 이제 그만하고 이쪽으로 오세요.” 

아내가 마른 손으로 마루를 쓰다듬어 자리를 권한다. 따스한 햇살이 어느새 금빛 돗자리를 깔아주고 남편이 아내와 나란히 앉았다. 햇살처럼 곁에 있는 아내가 고맙다.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다.

“나한테 시집와 오래 살아줘서 할멈이 좋소.” 

“영감님도 늘 곁에 있어 주어서 고마워요.”


남편은 따뜻한 물을 데워 아내의 머리를 감겨주었다. 아내는 순한 아이처럼 머리를 맡겼다. 남편이 서리 내린 아내의 머리카락을 참빗을 빗어주었다. 아내가 얌전하게 돌아앉아 비녀를 꽂는다. 남편이 말했다.

“자네, 머릿결이 시집올 때처럼 곱소.”

남편의 목소리가 옛날 옛적 사대 관모를 쓴 신랑 때와 똑같았다. 홍조 띠고 부끄럼을 타는 아내 모습도 족두리를 쓰고 수줍어하던 새 신부 모습 그대로다.


이윽고 밤이 오고 노부부는 잠자리에 나란히 누웠다. 천장을 보고 반듯하게 누운 늙은 남편이, 옆으로 손을 내밀어 늙은 아내의 손을 잡았다.

“할멈, 우리 한날한시에 같이 갑시다.” 

“그래요. 한날한시에 같이 가요.”

늙은 내외는 감실감실 단잠이 들었다. 


옛 악기 ‘금슬’이 그러하단다. 거문고 금(琴)과 비파 슬(瑟)은 제 소리를 잃지 않으면서도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곡조를 빚어낸단다. 기쁜 자리와 슬픈 자리를 금슬지락의 애틋한 정으로 오래오래 함께하였단다. 그래서 ‘금슬’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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