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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Feb 01. 2022

[동화] 색동옷

그해에도 섬진강에는 봄이 오고 있었지. 

2월 1주 설날 특집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완성하라!]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다양한 이야기로 만들어
발행해 주세요.

색동옷


얼었던 섬진강이 풀렸습니다. 흐르는 강물에 닿을 듯 말 듯 낮게 날고 있는 물오리 떼 옆으로, 나룻배가 살얼음이 남은 강을 천천히 지나갑니다. 설날 장을 보고 돌아오는 사람과 고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함께 강을 건너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흐르는 강물에 손을 내밀어 적셔보기도 합니다. 손끝이 차가웠지만 마음은 포근합니다. 빗자루도 집을 찾아온다는 섣달 그믐날이라서 그렇습니다.     


나룻배를 탄 사람들 속에 여자아이가 눈길을 끕니다. 검정 치마와 흰 저고리 차림에 단발머리를 한 아이는 어리지만 야무져 보입니다. 뱃사공이 노를 저을 때마다 나룻배가 흔들려도 아이는 단정한 자세를 잃지 않습니다. 옆에 있는 노인이 아이에게 묻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냐?”

“열 살입니다.”

아이가 고개를 숙여 대답합니다. 말투가 공손하고 분명합니다. 

“어디 사느냐?”

“진월면 이정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이정 마을이라면 나룻배에서 내려 한 시간 남짓 가야 할 먼 동네입니다. 노인이 고개를 갸웃하고 또 물었습니다. 

“어째서 혼자 강은 건너느냐?”     

아이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몰라 눈 만 반짝거렸습니다. 나룻배 뒤쪽에서 말없이 노를 젓고 있던 뱃사공 아저씨가 대신 말해 줍니다. 

“소학교 왜놈 교장이 입학을 안 시켜주는 바람에 멀리서 공부하고 오는 아이입니다.”   

“저런 저런.”


노인은 여자아이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을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 조선 사람들을 지독하게 괴롭혔습니다. 일본인 사토 교장도 그랬습니다. 자기가 밉게 보는 동네 사람은 그 자녀들을 학교에 입학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일본이 벌이는 전쟁을 반대하는 집안 아이들은 바로 퇴학시켰습니다. 여자 아이 아버지가 삼 년 전에 사토 교장에 맞서서 크게 다투는 바람에 쫓겨 다니게 되었습니다. 사토 교장은 그해 일 학년에 입학해야 하는 영재를 학교에 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자칫하다가는 학교에 다니고 있는 언니마저 쫓아낼까 봐, 할머니와 엄마는 사토 교장한테 말 한마디 하지 못하고 기다리기만 했습니다. 영재는 한 해를 더 기다리다가 끝내 집을 떠나, 강 건너 멀리 있는 이모 집으로 가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공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모 집 동네에는 조선인이 지은 학교가 있어서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벌써 일 년이 다 되었습니다. 

“너와 부모님이 흘린 눈물이 저 강물이구나.”     


노인이 강물을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처음 고향 집을 떠나 이모 집으로 가던 날, 나루터까지 나온 가족들은 강 이편에서, 여덟 살 영재는 강 저편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 후 아홉 살 영재는 한 달에 한 번 나룻배 타고 섬진강을 건넜습니다. 고향 집으로 오는 날은 웃음이고 이모 집으로 가는 날은 눈물이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혼자서도 잘 다니고 있습지요.”  

뱃사공 아저씨가 영재를 칭찬했습니다.

“기특하군요. 누구나 힘든 일을 견뎌내면 저렇게 단단해지지요.” 

노인도 대견해하였습니다. 나룻배도 삐걱삐걱 노 젓는 소리로 장단을 맞추었습니다. 갈대 사이에서 한가롭게 떠 있던 물오리들이 힘차게 날아올랐습니다.      

강물이 얕게 찰랑거리는 모래톱에 나룻배가 닿았습니다. 손님들은 버선과 신발을 벗어 들고 물가에 내려 마른땅이 있는 곳까지 맨발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햇살이 좋은 방죽에 앉아 발갛게 언 발을 녹였습니다. 그때 방죽 저편에서 검정 치마를 입은 여자아이들이 달려왔습니다.

“영재야!”

“학순아!”


영애 언니와 학순이가 나루터까지 마중을 나왔습니다. 아이들은 얼싸안고 콩콩 뛰었습니다.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날려 주었습니다. 영재와 학순이가 언니 손을 양쪽에서 잡고 들판 길을 걸었습니다. 아이들은 발걸음에 맞추어 동요를 부르고 어깨동무 놀이를 하였습니다.

“♩우리 집이 어디고  아직 아직 멀었다.

 우리 집이 어디고  아직 아직 멀었다.♪”     

"♩어깨동무 새 동무 다리가 아파서 쩔뚝

 어깨동무 새 동무 다리가 아파서 쩔뚝♪"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 고갯마루까지 왔습니다. 눈 아래 집이 보였습니다. 영재가 두 손을 나발을 만들어 크게 엄마를 불러 보았습니다.

“엄마!”

메아리가 높은 산을 한 바퀴 돌아옵니다. 영재는 오솔길을 힘차게 달렸습니다. 대문 앞에 나와 기다리는 엄마 치마폭에 얼굴을 묻었습니다. 얼마나 그리웠던 엄마 냄새인지 모르겠습니다. 대청마루에서 할머니에게도 큰절을 올렸습니다. 할머니는 두 팔을 벌려 한참 동안 안아주었습니다. 할머니와 엄마와 언니는 키가 훌쩍 자란 영재를 가운데 두고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어딘가에서 아버지도 흐뭇하게 웃어 주실 것 같았습니다.     


영재 가족들은 늘 감시를 당했습니다. 식구들이 점심밥을 마치고 설날 음식을 준비할 때였습니다. 대문이 활짝 열리더니 남자 어른들이 우르르 들어왔습니다. 면장과 소학교 교장과 순사, 모두 일본 사람들이었습니다. 세 사람 다 허리에 긴 칼을 차고 쩔렁쩔렁 소리를 내며 들어왔습니다. 그 뒤에 마을 이장과 일꾼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일본인 순사가 눈짓을 보내자, 일꾼이 지게에서 사기그릇 두 개를 꺼내 대청마루에 올려놓았습니다. 

“천황폐하께서 내려 주시는 구정 선물이다.”     


사토 교장은 황국 시민이니 뭐니 하면서 무언가를 설명했습니다. 그 사이 일본 순사는 실눈을 뜨고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수상한 사람이 숨어 있는지 값비싼 물건을 숨겨 놓은 것은 아닌지 찾는 중입니다. 쌀, 옷감, 쇠붙이, 심지어 사람까지 빼앗아 가고도 부족한 모양입니다.      


일본인들은 지난 추석에도 오늘처럼 들이닥쳤습니다. 엄마가 짚에 재를 묻혀 놋그릇을 닦고 있을 때였습니다. 놋그릇은 명절이나 생일 등 특별한 날만 쓰는 소중한 그릇입니다. 일본 순사는 전쟁에 쓸 무기가 부족하다고 놋그릇을 빼앗아 갔습니다. 남의 그릇을 빼앗아 총과 칼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도둑놈 강도라는 소리는 듣기 싫은지, 오늘 볼품없는 사기그릇을 대신 주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빼앗긴 놋그릇보다 어린 손자를 떼어 놓고도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찾아온 사토 교장이 괘씸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눈을 부릅뜨고 말했습니다. 

“덱끼, 몹쓸 사람! 천벌을 받을 사람들!” 

할머니 말은 사토 교장뿐만 아니라 세 사람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큰아버지 삼촌 그리고 아버지는 그 사람들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서로 마주 보고 비겁한 웃음을 짓더니 대문을 나갔습니다. 그들이 주고 간 사기그릇 옆면에는 ‘決戰(결전)’이라는 파란색 글자가 찍혀 있었습니다. 자기 나라 천황을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우라는 뜻입니다. 그날 밤, 파란 글씨가 박힌 사기그릇은 산산조각으로 깨져버렸습니다. 할머니는 밤중에 깊은 산에서 범이 내려와서 그랬다고 했습니다.


설날 아침이 밝았습니다. 일본인들이 우리 설날까지 빼앗을 수는 없었습니다. 설날 아침상에 떡국과 고소한 들기름으로 버무린 나물 그리고 구운 생선이 올라왔습니다. 맛있는 과자와 비싼 과일은 없었지만, 오랜만에 가족끼리 화목한 아침 식사를 하였습니다. 대문 밖에서 아이들 노는 소리가 까치처럼 울려 퍼졌습니다. 엄마와 언니가 부엌일을 하는 동안 영재는 방 청소를 했습니다. 부지런히 일을 끝낸 영재는 안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장롱 안에 있던 색동저고리와 분홍치마를 품에 안고 대문을 나왔습니다. 어제 학순이와 한 약속 때문입니다.    

  

이정 마을 사람들은 설날에도 한복을 입지 못했습니다. 일본 순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트집을 잡았습니다. 무엇이든 곱고 빛나는 우리 것은 닥치는 대로 시비를 걸고 가로챘습니다. 또 그것을 빌미로 다른 것을 얻기 위해 남의 집을 이 잡듯이 뒤졌습니다. 그들은 마치 궁지에 몰린 쥐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보통 때처럼 흰 저고리에 검정 치마차림으로 어른들께 세배를 드렸습니다.    

  

영재가 학순이네 사랑방 문을 살그머니 열었습니다. 어른들이 모두 성묘 가시고 안 계셨습니다. 학순이는 벌써 혼자 한복을 차려입고 얌전을 빼고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보기 힘든 하얀색 개량 한복입니다. 동화책 속에 나오는 백설 공주처럼 눈부셨습니다. 영재도 병풍 뒤에서 색동저고리와 분홍치마로 갈아입었습니다. 연꽃 속에서 피어난 왕비님 같았습니다. 사랑방이 어느새 커다란 궁궐이 되고 영재와 학순이는 커다란 잔치에 초대받은 귀한 손님이 되었습니다. 어디선가 나타나실 개구쟁이 왕자님이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들은 사랑방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녔습니다. 학순이 엄마가 곶감과 강정을 내어 올 때까지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렇게 놀았습니다.  


설날은 온갖 걱정을 떨쳐 버리고 어울려 노는 날입니다. 동네 타작마당에서 남자 어른들이 하늘 높이 윷가락을 던지고 놀았습니다. 여자 어른들은 마당이 넓은 집에서 널뛰기를 하며 놀았습니다. 이정 마을 풍물패도 떴습니다. 꽹과리, 북, 장구, 징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 신명 나는 놀이판을 벌였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었습니다. 묵은 것을 다 떨궈버리고 새롭게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이 온 마을에 가득하였습니다. 

   

꿈같은 설날이 지났습니다. 이제 강 건너 이모 집으로 가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영재는 할머니에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엄마가 돌아서서 앞치마로 눈을 닦았습니다. 영재는 뒤에서 엄마 허리를 안아 보았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잘 다녀올게요. “     

학순이와 언니가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그렇지만 꼬불꼬불 고개를 넘어 들판이 보이는 길에 이르자, 영재가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습니다.

“고마워, 지금부터는 나 혼자 갈게. 이제 열한 살이잖아.”  

영재가 작은 주먹을 쥐어 보였습니다. 언니와 학순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영재는 언니가 들고 온 보따리를 받아 들고 들판을 향해 걸었습니다. 학순이와 언니도 이정 마을을 향해 되돌아갔습니다. 떡국 한 그릇을 먹었을 뿐인데 모두 어른이 된 것처럼 당당했습니다.      


강 나루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뱃사공 아저씨도 손님들도 보이지 않고, 빈 나룻배만 한가롭게 물 위에 떠 있었습니다. 영재는 버선과 신발을 벗어 들고 모래톱을 걸어 나룻배에 올랐습니다. 물새들이 강물과 갈대밭 사이를 날아다니며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언제쯤 저 새들처럼 학순이와 학교 갈 수 있을까.’ 갈대밭 사잇길로 뱃사공 아저씨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영재야, 설날 잘 지냈냐? 내가 너 올 때가 됐지 싶었다.”

뱃사공 아저씨가 맑은 강물을 첨벙첨벙 건너 나룻배에 올랐습니다. 사공 아저씨는 혼자 나룻배에 앉아 있는 영재가 기특했습니다.  

“우리 영재 다 컸구나.”


아저씨가 긴 장대로 모래톱을 밀었습니다. 나룻배가 미끄러지듯 나루터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런데 갈대숲 저편에서 누군가 손을 저으며 달려오고 있습니다. 

“사공! 사공!”     

뱃사공 아저씨가 노를 저어 뱃머리를 돌렸습니다. 한 손에 가방을 들고 다른 손에 구두를 벗어 들고 허겁지겁 다가오는 그 사람은 바로 일본인 교장 사토였습니다. 그는 술을 많이 마신 듯 붉은 얼굴로 비틀거리며 나룻배에 올랐습니다. 교장이 움직일 때마다 허리에 찬 칼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철컹철컹. 영재는 귀를 막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정신 차려야 해. 정신 바짝 차려야 해.     

사토 교장이 툴툴거리며 물 묻은 바지를 닦다가 아이를 보았습니다. 교장이 일본말로 영재한테 말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하다니 맹랑한 녀석이구나”

영재도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우리 선생님이 아닙니다. 우리 선생님은 강 건너에 계십니다. ”

“뭐라고!”

사토 교장이 벌떡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나룻배가 기우뚱하는 바람에 제자리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교장은 영재를 쏘아보았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이가 자기가 입학하지 못하게 한 일을 기억한 듯 무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술 취한 그 말이 혼자 말인지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교장은 술을 깨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욧시. 욧시. 네 소원을 들어주겠어!”     

교장이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영재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너를 우리 학교에 다닐 수 있게 해 주겠어. 그러니까 내 옆으로 와!”

영재는 또박또박하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선생님이 아닙니다. 가지 않겠습니다.”

“난닷테? 키미노 쿠치오 사이테야루!(뭐라구? 입을 찢을 테다!)”

아이 눈빛은 선명하고 대답은 분명했습니다. 

“사토 씨! 정신 차려!”     


영재 입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사토 교장도 뱃사공 아저씨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할머니 가슴에 맺힌 한이 터져 나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바다 건너 일본에 있는 사토 교장의 아버지가 아들을 야단치는 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사토 교장은 부끄럽고 화가 나서 부르르 몸을 떨더니, 갑자기 허리에 찬 칼을 빼 들고 벌떡 일어섰습니다. 짐승처럼 일그러진 그 얼굴이 다가오자, 열 살 영재는 눈을 감고 스르르 쓰러졌습니다.      

그 순간 뱃사공 아저씨가 천천히 저어가던 삿대를 강물 깊숙이 찔러 한쪽으로 힘껏 당겼습니다. 나룻배가 몸을 뒤틀듯이 크게 기우뚱거렸습니다. 

“뭐야! 왜 이래! 멈춰!”

사토 교장이 중심을 잡으려고 들고 있던 칼을 배 바닥에 꽂았습니다. 사공 아저씨가 교장 말에 따라 잠깐 멈추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반대쪽 강물 깊숙이 삿대를 찔러 온 힘을 다해 당겼습니다. 길고 굵은 삿대가 날카로운 소리를 냈습니다. 배가 뒤집어 질듯 반대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영재 몸이 굴러 옆판에 부딪쳤습니다. 그리고 검고 커다란 짐승 하나가 나룻배 밖으로 날아 강물에 떨어졌습니다. 

“풍덩!”     

사토 교장이 떨어진 자리에 수많은 물방울이 튀어 오르고, 거센 강물은 기다렸다는 듯 그 커다란 몸을 잡아채서 끌고 물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잠깐 뒤에 물 밖으로 허우적거리는 손과 머리가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두 번 반복하더니 강물은 거짓말처럼 잠잠해졌습니다. 눈 깜빡할 사이였습니다.     


영재는 꿈을 꾸었습니다. 학순이와 둘이 손을 잡고 붉은 비단이 깔린 길을 나란히 걸었습니다. 비단길 양쪽에 울긋불긋한 꽃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공주님들이 앉을자리에는 푹신한 방석과 맛있는 음식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풍악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풍물패 속에 큰아버지. 아버지. 삼촌과 동네 사람들 얼굴이 겹쳐 보였습니다. 모두 큰소리로 껄껄 웃고 떠들고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노래 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아버지가 다가와 영재한테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하시는것 같았습니다. 영재가 눈을 떴습니다. 


뱃사공 아저씨 집이었습니다. 이모와 이모부, 뱃사공 아저씨와 아주머니 얼굴이 차례로 보였습니다. 

“아저씨, 어떻게 된 거예요?”

“괜찮아, 네가 잠시 꿈을 꾼 거야. 걱정하지 말고 더 자거라.”

영재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1945년, 섬진강에 봄바람이 불어오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끝.

           

* 새롭게 새해를 맞이하는 기쁨이   묵은 것을 다 떨궈버리고   작가님과 작가님 가족과 온 마을에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 매거진 이전 글, 로운 작가님의 글입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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