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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Feb 08. 2022

[동화] 만약 티라노사우루스라면...

아이들이 느려도 되는 이유 알아 보기

가끔 밤이 되면 나를 찾아오는 새가 있어요. 엄마 아빠와 같이 안 자고 따로 잘 때부터인 것 같아요. 어떻게 내 침대로 들어오는지는 잘 몰라요. 새는 숨어서 눈을 반짝이다가 살짝 들어와요. 그 새도 아마 엄마 품에서 떨어져 자야 하는 나이가 되어서 그랬겠죠. 그런데 왜 하필이면 나야? 내가 꼭 자기 엄마 같잖아요.      


새는 과연 어디서 잘 까요? 침대 밑? 베개 뒤? 이불속? 내 겨드랑이? 종아리와 종아리 사이? 땡! 모두 틀렸어요! 아침이 되면 벌써 날아가고 없어서 아무도 보지 못했어요. 가끔 식구들이 식탁에서 아침밥을 먹다가 새가 자고 갔다는 걸 알아채지만 별 말이 없어요. '그렇구나. 자고 갔나 보구나.' 그런 눈빛이죠. 그런 날은 교실에서 선생님이 한 마디 해요.

“박영화! 오늘 새집 지었구나. 그것도 두 개씩이나!”    

아니! 새가 두 마리나 자고 갔다고요. 믿을 수 없어요. 교실에 있는 벽거울을 보니 진짜 머리 위에 새집이 두 개나 있어요. 선생님이 자꾸 웃어요. 새집이 부러운가 봐요. 내가 가서 물었죠.

“선생님도 새집 갖고 싶어요?”

선생님 눈이 동그래졌어요. 

“응! 새집 아니라 닭집이라도 좋아! 머리카락만 많아진다면...”     


세상에서 제일 바쁜 시간은 우리 집 아침 여덟 시일걸요. 나만 빼고 모든 사람이 바삐 움직여요. 그중에서도 화장실 문이 제일 바빠요. 내가 화장실에 앉아 양치를 하고 있으면 밖에서 빨리 끝내고 나오라고 야단들이에요. 

“학교 갈 시간 다 됐어. 빨리 나와!”

마치 소파 밑 폭탄이 터질 테니 도망가야 한다는 것처럼 서둘러요. 모두들 너무 바빠요. 다른 사람이 바쁘다고 내가 바빠야 한다는 건 좀 억울하잖아요. 나는 어린이니까 천천히 해도 될 것 같은데, 누군가 내 시간을 자꾸 당겨 놓는 것 같아요, 여덟 시 삼십 분은 새들이 운동장과 나무 사이에서 노는 시간이에요. 새들은 학교에 와서 아직 한 시간도 못 놀았을걸요. 나는 학교 가는 시간이 열 시쯤이면 딱 좋겠어요. 요즘 같은 한겨울에는 해님이 따스한 빛을 마구 쏟아주는 시간이죠. 그러면 새들도 우리들도 행복하겠어요.     

 

아침에 챙겨 갈 게 너무너무 많아요. 일기장, 숙제, 준비물, 마실 물, 쉬는 시간에 가지고 놀 포켓몬 딱지, 선생님 몰래 우유에 타 먹을 제티. 정말 가방이 두꺼비 배처럼 빵빵하게 부르다고요. 방과후교실 하는 화요일 목요일은 가방이 세 개예요. 가방이 세 개라니 말이 되나요? 학교 가방 + 학원 가방 + 방과후 가방 = 가방 3개. 학교 가방은 등 뒤에 메고 학원 가방과 방과후 가방은 양쪽 어깨에 둘러요. 두꺼운 잠바 위에 그것들을 둘러메어봐요. 얼마나 웃기는 줄 아세요. 뒤뚱뒤뚱뒤뚱 나는 학교 가는 펭귄이다!      


좋은 방법이 있어요. 어린이들한테 강아지를 한 마리씩 선물해 주세요. 엄마 아빠는 안 사주니까 선생님이 선물해 주면 감사하겠어요. 강아지가 학원 가방을 물고 교실까지 갖다 줄 거예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아이한테는 고양이도 괜찮아요. 아마 고양이는 흔들거리는 가방 위에 앉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신호등을 지켜보겠죠. 경찰 모자를 씌워 주면 꽤나 어울릴 거예요. 고양이는 정말 귀엽잖아요.     


아이들과 함께 등교한 동물들은 교실 복도에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죠. 강아지, 고양이, 꽃돼지, 뱀, 달팽이, 고슴도치, 이구아나, 햄스터... 온갖 동물들이... 얌전히 있어야 될 텐데... 힘들겠죠. 처음에는 서로 눈치만 보고 있겠지만 금방 난리가 날 거예요. 개구리가 멍하게 있다가 유리창에 붙은 파리를 향해 긴 혀를 발사할 때 "착!" 소리가 나는 그때부터 시비가 붙을지 몰라요. 앵무새가 창틀에 앉아 교실을 쳐다보다가 방귀를 "뽕!" 뀌면,  깃털이 날아가고 왁자지껄 할게 뻔해요. 그 정도 되면 선생님도 못 참겠죠. 우리가 떠들 때처럼 이렇게 말할 거예요. 

“대체 뭣들 하는 거예욧!”      


하지만 선생님이 교실 문을 활짝 여는 순간, 엉망진창이 된 동물들을 보고 “으으으으”하면서 뒷 목을 잡고 쓰러져요. 착한 동물들은 너무 놀라 이렇게 외칠 거예요. 

“당번! 당번!”

교실에 있던 당번 두 명이 얼른 나와 선생님을 부축하고 보건실로 내려가요. 마음씨 착한 동물들이 미안해서 울어요. 잉잉 + 엉엉 + 꺼이꺼이 + 흑흑 + 징징 = 외계인 소리. 

“아이 시끄러워! 그만 울어 이 녀석들!”      

우리가 선생님 대신 동물들을 달래야 해요. 동물들을 모두 교실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서 자기 주인 자리에 앉혀요. 우리가 선생님처럼 가르칠 거예요. 애들은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작은 동물한테는 더 친절하게 해야 돼요. 


“박영화, 무슨 생각 하고 있니? 지금은 알림장 쓰는 시간이라고.” 

“예? 예.”

아참! 지금은 알림장 쓰는 시간이었어요. 우리 선생님은 알림장 쓰는 시간이 제일 마음이 바빠요. 아침에 화장실 문을 두드리는 형 같아요.

“빨리빨리 써! 다른 아이들 다 썼잖아! 빨리빨리!”

“예.”


[알림장]

- 1. 일기 쓰기(다섯 줄 이상)

그런데 갑자기 하루살이 생각이 났어요. 하루살이는 입이 없다네요. 그래서 먹지를 못한다 그래요. 먹을 시간이 없어서 입이 없어졌다죠. 하루살이는 하루밖에 살지 못하니까요. 너무 바빠서. 와우.    


- 2. 준비물 가져 오기(색연필, 작은 나뭇가지, 종이컵) 

내일 만들기 시간에 뭘 만들지 궁금. 나는 말랑말랑한 천사 점토가 좋아. 이번에는 당근을 만들어 볼 거야. 우리 아빠는 특이해. 왜 당근을 싫어하지?     


“영화야! 알림장!”

“아참!.”

또 깜빡했네요. 재미있는 생각들을 자꾸 끊어야 해서 아쉬워요. 내가 느린 이유를 눈치채고 기다려주면 좋겠어요. 혹시 느린 이유를 알지 못해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 주면 좋겠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죠. 줄 서서 급식소로 가야 하니까요. 선생님이 많이 배가 고프신가 봐요. 선생님에게 묻고 싶어요. 

“선생님, 오늘 자장면 나오는 날이라서 배가 더 고픈 거예요?”     


오! 아이들이 알림장을 선생님 책상 위에 올려놓고 손 씻으러 가네요. 나도 얼른 써야겠어요. 그런데 또 떠오르는 멋진 생각 하나! 혹시 밤마다 내 침대를 찾아오는 그 동물은 새가 아니라 아기 티아노사우루스가 아닐까요. 만약 티라노사우루스라면, 학교 갈 때 엄청 멋있겠어요. 아이들이 진짜 부러워하겠죠. 내 부하는 너무 커서 운동장에 앉아서 기다릴 거예요. 아! 만약 티라노사우루스라면 진짜 완.전.대.박. 

- 3. 오늘 배운 공부: 쌓기 나무로 규칙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 4. 오늘 착한 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거 봐요. 느려도 벌써 썼잖아요. 만약 내가 알림장을 빨리 썼다면 티아노사우루스는 상상도 못할뻔 했어요. 기다려 주어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 매거진 이전 글, 로운 작가님의 글입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 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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