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은 약간 녹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

그늘 밑 나무의자에

by 최형식

야영 수련 활동 이틀째, 그 아이가 기어코 사고를 쳤다. 불현듯이 달려들어 옆 자리에 있는 친구를 때린 것이다. 돌발적인 폭력에 놀란 강사들은 아이를 강사 사무실에 따로 떼어 놓고 담임인 나한테 연락을 했다. 허겁지겁 가보니 아이가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섬처럼 홀로 있는 아이를 보니 호되게 야단치려던 마음이 흔들렸다. 아이는 내가 다가가자 “언제 과자 사 먹으러 가요?”라고 했다. 나는 질문을 무시하고 “왜 또 친구를 때렸냐? 안 그러기로 약속하지 않았느냐”라며 다그쳤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내 손을 잡고 만지작거렸다. 불안정한 집착이다.


그 아이는 교실에서도 가끔 친구한테 와락 달려들었다. 그중 종윤이가 자주 손찌검을 당했다. 하지만 종윤이는 한 번도 되받아치지 않았다. 마치 쫓기는 고양이처럼 친구들 사이로 몸을 피할 뿐이었다. 종윤이와 우리 반 아이들은 마음이 아픈 친구를 귀찮아하지도 않고 특별하게 대하지도 않았다. 그 아이가 이번 야영수련활동에 동참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무심한 듯 받아주는 반 친구들 덕분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이가 잡고 있던 내 손을 놓았다. 언제나처럼 폭풍이 지나간 바다같이 평온해졌다. 나는 아이를 일으켜 세워 친구들이 활동하고 있는 목공예장으로 갔다. 모두 작품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동그란 탁자 맞은편에 있는 종윤이도 나무목걸이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강사들의 우려스러운 눈빛을 외면하고 아이를 제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내팽개친 나무목걸이를 주워 함께 만들기 시작했다.


바늘처럼 얇은 자개 조각을 핀셋으로 집어, 동전 크기만 한 나무 목걸이에 붙여서, 자기 이름을 꾸미는 활동이었다. 그런데 자개 조각이 너무 얇고 가늘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실습장으로 급히 온다고 돋보기 안경마저 챙겨 오지 못했다. 자개 조각이 자꾸만 핀셋 끝에서 미끄러졌다. 그러다가 얼떨결에 모둠별로 함께 쓰는 접착제가 담긴 통을 쏟아 버렸다.

도와주지 못할망정 도리어 아이들한테 방해가 되다니... 허겁지겁 책상 위에 흘린 끈끈한 액체를 닦았다. 까닭 모를 서글픔이 와락 달려들었다. 나는 망연히 앉아 있는 아이 손을 잡고 도망치듯 목공예장을 빠져나왔다. 아이가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까 과자 먹고 싶다 그랬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우리 둘은 야영 수련원을 빠져나와 동네로 향하는 내리막길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아이도 마음이 홀가분해진 듯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하지만 내 마음속 파도는 아직도 출렁거렸다. 아이한테 왜 친구를 때렸냐고 물어보았다. 그 이유만이라도 알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미간을 좁히고 잠시 생각하더니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말했다.

“종윤이한테 아이스크림 사줄 거예요.”


동네 가게에서 아이스크림 세 개를 샀다. 아이는 냉큼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고 야영 수련원 가는 길 쪽으로 나를 이끌었다.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먹고 싶은 것 같았다. 우리는 서둘러 오르막길을 걸어 돌아왔다. 나는 수련원 뜰 앞, 커다란 나무 그늘이 있는 의자에 아이를 앉혀 놓고 종윤이를 데리러 갔다.


목걸이 공예는 막바지 과정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무 목걸이에 자신의 이름을 다 꾸민 아이들이 줄을 서서 유약 칠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속에 키 작은 종윤이가 보였다. 종윤이도 제 손바닥 위에 목걸이를 올려놓고 줄을 서 있었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과 달리 종윤이는 나무 목걸이를 양손에 하나씩 들고 있었다. 하나는 자기 이름이, 다른 하나는 자기를 괴롭힌 아이 이름이 있었다. 아까 우리가 만들다가 포기한 것이었다.

“둘 다 네가 만든 거냐?”

종윤이가 해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내 가슴 깊은 곳에서 무엇이 올라와 울컥하더니, 아이의 맑디 맑은 눈에서 형언할 수 없는 평화로움 같은 것이 온몸을 감싸주었다. 나는 눈물이 날 듯 느꺼워져 작은 어깨를 감싸 안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들은 커다란 나무 그늘 아래, 긴 의자에 함께 앉았다. 아이들은 아까 일은 까맣게 잊은 듯 마주 보고 활짝 웃었다. 수많은 나뭇잎 사이로 화사한 빛이 보석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 아래에 날개를 감춘 천사들이 약간 녹은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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