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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Mar 08. 2022

닭살과 돌봄 사이

사랑의 묘약에 대한 눈흘김을 못 본체 하며

앞산에 봄꽃이 피었단다. 점심 먹고 꽃 보러 가기로 한 아내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방에 들어가 누웠다.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니니 좀 쉬었다가 가자고 했다. 나는 거실에서 컴퓨터를 치며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방에 들어 가보니 얼굴색이 안 좋아 보였다. 봄 나들이는 틀렸다 싶어서 아내 옆에 누웠다. 아내에게 돌봄이 필요한 시간, 아내가 잠들어서 나도 따라 낮잠을 잤다. 

     

잠결에 아내가 “춥다.” 하는 소리가 들려 눈을 떴다. 이불을 끌어 덮어주다가 얼굴을 만져보니 정말 차가웠다. 누운 채 손으로 이마와 볼을 짚어 주었다. 아내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가만히 있었다. 아무래도 아침에 먹은 밥 때문에 체한 것 같다고 했다. 배를 주물러 주겠다 했더니 간지러워서 싫다고 했다. 냉장고에서 몸살약을 찾아 물과 함께 갖다 주었다. 창밖에 땅거미가 내리고 토요일은 저물고 있었다.      


아들과 딸한테, 아무래도 네 엄마 몸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니, 저녁밥은 너희들이 준비해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창백해진 제 엄마 모습에 화들짝 놀라 냉장고에서 매실 진액을 타 오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밥솥에 쌀을 안치고 저녁 준비를 하였다.


아내만 빼고 셋이 식탁에 둘러앉았다. 모두 입맛이 없는지 그릇에 있는 밥을 덜어 냈다. 딸이 앞으로 매주 토요일은 우리 셋이 돌아가면서 점심을 준비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아들이 금방 동의했고 나도 뜸을 들이다가 그러자고 했다. 일주일 내내 돌봄을 받던 세 사람들이, 토요일 점심 한 끼는 한 사람을 위해 수고하기로 한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딸이 설거지하고 아들은 반찬통을 정리하고 나는 식탁을 닦으려고 행주를 짰다. 그런데 아들이 말렸다.

“아빠는 따로 할 일이 있잖아요.”

“뭐?”

“엄마한테 약 주셔야 되잖아요.”

“아까 몸살약 줬는데.”

“그거 말고요. 사랑의 묘약.”

아들이 엉큼하게 웃었다. 뭔지 딱 꼬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내 촉은 살아 있었다. 

"맞다. 사랑의 묘약!”     


나는 소년처럼 용기를 냈다. 닦고 있던 행주를 아들에게 넘기고 방으로 갔다. 아내는 이부자리에 혼자 앉아 있었다. 열이 조금 내린 것 같았다.

“잠깐만, 내가 약 가지고 올게.” 

“또 약?”

아내가 의아한 눈빛으로 보았다. 아마 진짜로 약을 사러 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는 세면대로 가서 양치질을 하였다. 그리고 손바닥에 물을 묻혀  단정하게 2 : 8 가르마를 타고 뚜벅뚜벅 아내 곁으로 갔다. 

“약 묵자.”

아내가 뭔 소린가 하고 돌아보았다. 나는 찰나를 놓치지 않고 입술을 동그랗게 오므려 아내의 볼에 갖다 대었다.

“사랑의 묘약!”

아내가 킥킥 웃으며 옆으로 쓰러졌다. 아들과 딸이 꼬마들처럼 엿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눈을 흘기고 싶은 닭살 같지만 아니다. 지친 일상에 몸살이 난 가족을 위한 예사스러운 돌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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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 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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