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을 첫사랑이라고 우겼다.
아홉 살들은 원래 알랑방귀다. 서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틈만 나면 담임 선생님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이었다. 전학 온 내가 보기에 우리 반은 청소 시간에 알랑방귀가 제일 심했다.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잽싸게 청소함으로 달려가 빗자루나 걸레를 챙겼다. 비질을 하는 아이들은 선생님 근처를 오락가락하며 쓴데 또 쓸고 쓴데 또 쓸고, 걸레질을 하는 아이들은 선생님 시선이 닿는 곳에서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마루 바닥을 싹싹 닦았다.
물 당번은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양동이를 들고 수돗가로 가서 물을 길어 오는 일이 힘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선생님 눈에 띄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전학 온 첫날부터 선생님을 실망시켜 드렸기에, 애초부터 빗자루나 걸레 따위를 탐하지 않았다. 알랑방구 따위로 비위를 맞출 생각도없었다. 그냥 혼자 양동이를 들고 줄래 줄래 수돗가로 갔다. 걸레 빤 물이 금방 더러워져 몇 번씩 물을 날라야 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촌놈이 얼마나 힘이 센지 보란 듯이 원하는 대로 물을 길어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 아이 한 명이 함께 물 당번을 하겠다고 따라왔다. 촉새처럼 생긴 아이였다. 나는 그 아이를 멀뚱하게 보다가 오든지 말든지 휑하니 앞장서서 걸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양동이에 수도꼭지를 틀어 콸콸 물을 받았다. 힘자랑을 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둘이라서 그랬는지, 보통 때보다 더 많게 양동이에 물이 찰랑찰랑 넘치도록 받았다. 그런데 그 촉새가 한심하다는 듯 짹짹거렸다.
"바보야! 이렇게 많은 걸 어떻게 들고 가니!"
그 아이는 양동이를 기울여 받아 놓은 물을 거의 반쯤이나 부어버렸다. 두 명이 들고 가는 물통인데 나 혼자 들고 가는 양보다 적었다. 그날 이후 촉새는 나와 동행하지 않았다. 하여튼 뭔가 잘 안 맞았다. 반 아이들과 나는 늘 그렇게 어긋나고 삐걱댔다.
한 달쯤 지났을까. 시간이 꾸역꾸역 흘러가던 어느 날 청소 시간, 내 유일한 친구 양동이를 빼앗겨 버린 바로 그날이었다. 덩치 큰 아이들이 작당해서 미리 내 양동이를 가져가 버렸다. 청소함에는 빗자루도 걸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졸지에 역할이 없어진 나는 부지런히 청소하는 아이들 속에서 멍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누구도 왜 그러냐고,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묻지 않았다. 마치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부자연스럽고 난감했다. 그 느낌은 아이들과 마구 싸우는 일보다 훨씬 불편하고 우울했다. 나는 조금씩 주눅들고 있었다.
교실 가운데 섬처럼 서 있기를 몇 분이 지났을까. 정신없이 오가는 아이들 사이로, 어떤 여자아이가 내 쪽으로 오더니, 자기가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내 앞에 툭 떨어뜨려 놓고 지나갔다. 나는 스치듯 지나는 그 아이 뒷모습과 발끝에 떨어져 있는 빗자루를 번갈아 보며 속으로 '어?'라고 했다.
그 순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보고 가지라고 준 빗자루겠지. 그 빗자루를 주워 청소를 하면 되나? 아니야 혹시 그 아이가 실수로 떨어뜨릴 수도 있어. 주워서 돌려줄까? 아닐거야. 왜 나한테 빗자루를 준다는 말이야? 이상했다. 늘 단순하고 직관적이던 내가 그 짧은 순간 온갖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렇게 혼동에 빠져 있는 사이, 어디선가 다른 남자아이가 불쑥 나타나더니, 내 발끝에 있는 빗자루를 덜렁 주워 가버렸다. 나는 또 마음속으로 '어?'라고 했다. 내 것 같은데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헷갈렸다. 하지만 내 마음속으로 따스한 무엇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있어 봄 소풍을 갔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모두 모여서 장기자랑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 노래나 춤이나 코미디 할 사람은 앞으로 나오라고 했다. 아무도 나가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친구를 추천하라고 했다. 선생님 말이 떨어지자마자 여기저기서 약속이나 한 듯 이름 하나를 외쳤다.
“이○순!”
“이○순!”
“이○순!”
아! 그 아이였다. 아무도 모르게 내 앞에 빗자루를 떨어뜨리고 간 그 아이 '이○순'이었다. 그 여자 아이가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은 나만 빼고 모두 다 알고 있었다. 친구들 등쌀에 밀려 앞으로 나온 이○순은 잠깐 수줍은 듯 몸을 움츠렸다. 선생님과 아이들의 박수소리가 한번 더 쏟아졌다. 그 아이는 두 손을 앞으로 맞잡고 천천히 노래를 시작했다.
“♪♩웬 아이가 보았네 들에 핀 장미화
갓 피어나 어여쁜 그 향기에 탐나서
정신없이 보네 장미화야 장미화 들에 핀 장미화 ♪♩~”
보일 듯 말 듯 좌우로 움직이는 작은 몸에서 맑고 고운 목소리가 나왔다. 나처럼 말이 없는 아이였다. 나는 사투리라서 입을 닫았고, 그 아이는 원래 조용하고 부끄럼이 많아 말을 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은 떠들고 장난치는 개구쟁이들을 향해 제발 '이○순' 만큼만 하라고 사정하는 소리를 종종 들었다. 나는 아이들 틈에서 천사처럼 노래하던 아이를 숨죽여 바라보았다.
세월이 흐르고 또 흘렀다. 그 후 아주 가끔 그 시절을 떠올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봄소풍 이후,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나지 않았다. 분명 날마다 한 교실에서 만나서 공부하고 놀았을텐데, 단 한 번도 눈이 마주치거나 짧게라도 말을 나눈 기억이 없었다. 그 아이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아주 사소한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빗자루와 장미화 두 가지를 잊지 않기 위해 다른 모든 기억을 지워버린 것 같았다.
'들에 핀 장미화'는 그렇게 오랫동안 빛바래지 않는 유년의 추억을 채색해 주었다. 친구들과 첫사랑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그 이야기를 아홉 살 인생의 순수한 사랑으로 자랑처럼 들려주었다. 무심한 친구들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을 첫사랑이라고 우겼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는 그것을 첫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세월이 갈수록 그 아이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리에서 소외된 외로운 아이를 위한, 착하고 순수한 어떤 아이의 고운 마음씨를 오랫동안 감사하고 싶어 그런 것 같다.
<오르골 연주곡 '들장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