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형식 Mar 29. 2022

2022. 학교 괴담

보글보글 만우절 기념 특별판 - 그 누가 학교를 지켜 줄 것인가?

먹구름이 온종일 학교를 덮었다. 오후가 되자 점점 굵어진 빗방울이 유리창을 두드리며 “비 오는데 무슨 공부냐?”며 훼방을 놓았다. 아이들도 옛날이야기 하나 해달라고 보챘다. 그래. 쉬었다 가자. 나는 교과서를 덮었다. 실내등도 껐다. 교실은 어둠침침 하니 무서운 이야기 하기 딱 좋은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의 첫 운을 뗐다.     

"사실 너희들한테 고백해야 할 일이 있다."     


생각해보면 이 학교와 나는 인연이 무척 깊었다. 마치 운명처럼 묘하게 엮어진 인연이랄까. 애초에 내가 이 학교로 전근해 올 마음은 전혀 없었다. 내가 이 학교로 오게 된 것은 평소 존경했던 교장 선생님 때문이었다. 그는 나를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책 한 권을 꺼내 보여 주었다. 오래전에 내가 쓴 책이었다.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일화 중심으로 쓴 책이었다. 그는 내 책을 읽고 감동받았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교직 생활을 모교에 헌신하고 싶다며, 나더러 일 년 동안만이라도 행복한 학교를 함께 만들어 보자고 했다. 나는 열혈독자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부임 첫날, 교장 선생님이 아무도 몰래 나를 교장실로 불렀다. 그는 이런저런 학교 이야기 끝에 알게 모르게 예전부터 전해오는 학교 괴담 하나를 들려주었다.      

“최 선생님, 저기 보이는 별관 자리가 원래 공동묘지 터였습니다. 옛날에 학교를 짓기 위해 무덤을 강제로 이장했지요. 그런데 그해부터 괴이한 일이 벌어졌어요.”     

                

교실 정면에 일장기가 걸리고 허리에 칼을 찬 일본 교장이 황국신민을 강요하던 시대, 어느 해 장마철이었다. 검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학교 안에서 남자아이 한 명이 갑자기 실종되었다. 아이는 운동장 미루나무 밑에 책가방만 남기고 사라졌다. 선생님들이 학교 안과 밖을 샅샅이 뒤지고 동네 사람들이 산과 들을 찾아도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첫 번째 아이가 실종되고 일주일 후, 비 오는 날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여자 아이가 사라졌다. 수업 시간에 화장실에 간다던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이번에도 선생님과 친구들 그리고 동네 사람들이 애타게 아이를 찾았지만, 아이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조회대 밑에 여자 아이의 신발 한 짝만 비를 맞고 있을 뿐이었다. 두 번 연속으로 똑같은 사건이 터진 것이다. 하지만 조사를 나온 일본 순사들은 우연한 실종 사고일 뿐이라고 말하고 돌아갔다.     


사람들은 말을 꺼내지 않았지만 비 오는 날이 두려웠다. 장마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무로 지은 학교 건물이 서서히 어둠 속으로 잠기고 빗줄기가 굵어졌다. 교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는 점점 커지고 운동장에는 황토물이 모여 시냇물처럼 흘렀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냥 있을 수만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낫과 괭이 쇠스랑 등 무기가 될만한 농기구를 들고 학교로 왔다. 


학부모들은 조를 나누어 학교를 둘러싸고 보초를 섰다. 선생님들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교실 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책상을 모두 뒤로 밀고 교실 가운데에 아이들끼리 두 팔로 서로 어깨를 걸고 동그란 원을 만들게 하였다. 

“절대로 팔을 풀면 안 된다!”          

그때 엄청나게 큰 벼락 소리가 학교를 뒤흔들고 교실을 밝혀주던 전등이 저절로 깜빡거렸다. 아이들은 무서움을 참으려 눈을 감았다. 

“우르릉 쾅쾅!”          

교실은 순식간에 어둠 속으로 잠겨 버렸다. 유리 창문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이 덜컹거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줄기차게 내리던 장대비가 그치고 주위가 천천히 밝아졌다. 아이들은 친구 어깨에 걸고 있던 팔을 풀었다. 밖에서 학교를 지키던 학부모들도 비에 흠뻑 젖은 채 교실로 달려왔다. 사라진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이 안 보여요!”     

분명히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는데, 벼락과 천둥이 몰아쳐서 모두 두려워서 눈을 감았던 순간, 선생님이 사라진 것이다. 아이들을 유달리 사랑하던 선생님 모습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동네 사람들은 선생님이 사라진 제자들을 찾으러 떠나셨을 것이라고 했다.           


동네에 흉흉한 소문이 돌았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일본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네 사람들한테 우연한 사고일 뿐이라고 얼버무리던 일본 순사가 제일 먼저 동네를 떠났고 이어서 일본인 교장이 슬금슬금 보따리를 싸고 이사를 가버렸다. 그들은 무슨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을에 남겨진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이 도움을 받을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아이를 잃은 부모님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엄마들은 아들과 딸이 사라졌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날마다 자식들 이름을 부르며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장마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어느 날 마을 앞으로 낯선 군대 행렬이 지나가고 있었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싸우던 독립군들이었다. 일본이 우리 군대를 해산시키자, 원래 궁궐을 지키던 장군이 부하들을 데리고 나와 만든 독립군 부대였다. 그런데 어떤 할머니가 두 팔로 행렬을 가로막고 내 아이를 돌려 달라고 소동을 피웠다. 선생님이었던 아들을 잃어버려 정신을 놓아버린 할머니였다. 독립군 장군은 자식을 잃게 된 어머니의 사연을 알게 되었다. 


장군은 군사들의 행진을 멈추게 하였다. 북쪽 하늘에서 먹구름이 몰려왔다. 장군은 부하들을 마을과 학교 주변을 지키게 하고 갑옷과 투구를 갖추어 입고 학교 안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장군은 시퍼런 칼을 빼어 들고 교실과 복도 그리고 장대비가 퍼붓은 운동장을 돌아다녔다. 벼락과 함께 불빛이 번쩍이고 폭탄이 터지는 듯 천둥이 쳤다. 아이들이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엄청나게 큰 벼락이 운동장에 떨어져서 하늘과 땅이 흔들렸다. 그 순간 복도를 걸어가던 장군이 힘껏 뛰어올라 교실 천장을 향해 칼을 찔렀다. 어두운 천장 속에서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렸다. 장군이 들고 있던 긴 칼을 타고 파란색 피가 흘러내렸다. 그리고 시커먼 물체 하나가 천장에서 ‘쿵’ 소리를 내며 바닥 떨어졌다. 사람 몸통만큼 굵은 구렁이었다. 


그 요물은 일본 놈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 애완용으로 가져온 뱀이었다. 그런데 몸집이 점점 커지자 일본인 집을 나와 학교 천장에 똬리를 틀고 살고 있었다. 뱀은 교실 천장이나 나무 꼭대기, 옥상 난간과 국기 게양대 등 높은 곳을 타고 다녔다. 그러다 장마철이 되고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 사방이 어두워지면, 혼자 있는 아이를 위에서 밑으로 덥석 물고 사라졌던 것이다.      


장군은 뱀이 나온 천장 속으로 들어갔다. 먼지와 쥐가 가득한 어두운 곳을 한참 동안 헤집고 들어가니 땅굴로 들어가는 통로가 보였다. 장군은 주저하지 않고 좁은 땅굴을 따라 들어갔다. 땅굴은 학교 바로 옆에 있는 일본인 순사의 집 지하실로 연결되었다. 지하실 끝에 여러 개의 쇠창살로 만든 방이 있었다. 그곳에는 남자와 여자, 어린이와 노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갇혀 있었다. 일본인이 훈련시킨 뱀한테 잡혀 온 사람들이었다. 학교에서 사라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그리고 선생님도 살아 있었다. 장군은 어둠 속에 있던 모든 사람을 구출하여 마을로 돌아왔다.      


이제 모두 끝났다. 장군은 피에 젖은 칼을 씻었다. 마을 사람들은 살아 돌아온 아이와 선생님을 안고 만세를 부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그리고 장군에게 큰절로 감사를 드렸다. 이제 학교에 다시는 그런 불행한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장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소."     

장군은 앞으로 100년 후에 죽은 구렁이의 아내 구렁이가 복수하러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펴보라면서 두루마리 족자를 남기고 떠났다. 


“올해가 바로 그 일이 있은지 100년 되는 해입니다.”     

교장선생님 여기까지 말하고 목이 타는지 물을 마셨다. 물컵을 들고 있는 손이 떨렸다. 1922년,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해 생긴 일이다. 그러니까 2022년, 올해가 딱 100년 되는 해다. 교장선생님과 마을 어른들은 작년부터 비밀리에 학교에 모였다. 그리고 오랜 세월 교장실 금고에서 대대로 전해져 온 그 두루마리 족자를 펼쳐 보기로 결정했다. 그 속에는 과연 학교 아이들을 지킬 수 있는 다섯 글자로 된 비법이 적혀 있었다.

  

아이들 모두 침을 꼴딱 삼키며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었다. 나는 마을 어르신들과 교장선생님이 알려준 사실을  어린 제자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분필을 들고 두루마리 족자 속에 적혀 있는 다섯 글자를 칠판에 또박또박 써주었다. 

[崔亨植先生]          


아이들이 대체 무슨 글자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비장한 표정으로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절대 큰 나무 밑과 옥상과 국기게양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라.”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하는 수 없이 한자 밑에 토를 달아주었다.      

[崔亨植先生]     

(최형식선생)     


분필을 놓고 손을 털었다. 그리고 왜 하필 올해 선생님이 이 학교에 전근 왔는지 생각해 보라고 했다. 아이들이 갑자기 무슨 말인가 싶어 멀뚱멀뚱해졌다. 나는 엄숙한 표정으로 교실 천장을 응시했다. 눈치 빠른 몇몇이 저희들끼리 쑥덕거리더니 빙긋빙긋 웃기 시작했다. 다시 전등 스위치를 올렸다. 교실이 환하게 밝았다.  2022년 4월 1일 만우절 행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끝.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3월 5주 [글놀이 소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