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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형식 Apr 12. 2022

제옥이의 전설

(동화) 꽃이 된 돌멩이 이야기

먼바다에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 있었어요. 그 섬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었어요. 섬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바다와 하늘과 갈매기 그리고 물가에서 섬을 빙 둘러싸고 있는 작은 돌멩이뿐이에요. 들을 수 있는 소리도 갈매기 울음소리와 파도치는 소리 그리고 밀려오는 물결에 돌멩이들이 작은 몸을 서로 부딪치는 소리뿐이었어요.

“자르락 자그락자그락...”

아주 작고 단단한 돌멩이들이 물속에서 부딪칠 때 나는 소리는 참 맑고 부드러워서,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것 같았어요. 사람들은 그 섬의 돌멩이를 몽돌이라고 불렀어요.    

   

몽돌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섬에서 살았기에 바다 건너 세상을 구경한 적이 없었어요. 가끔 바람을 타고 어디든 갈 수 있는 파도가 밀려와서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었죠. 어느 날 꼬마 몽돌이 파도한테 물었어요.

“파도님,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이 뭐예요?”

“그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꽃이지.”     

파도 아저씨는 온갖 아름다운 이름 앞에는 ‘꽃’이라는 이름이 붙는다고 했어요. 꽃길, 꽃비, 꽃잠, 꽃게, 꽃띠, 꽃사슴.  

“사람들이 사는 곳에 꽃이 없는 곳은 없단다.”     


꼬마 몽돌은 고개를 갸웃했어요. 아직까지 한 번도 꽃을 본 적이 없거든요.

“파도님, 꽃은 어떻게 생겼나요?”

“둥글기도 하고 길쭉하기도 하고 별처럼 또는 나비처럼 생긴 별별 모양이 다 있지”

“색깔은요?”

“무지개를 결을 따라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놓은 것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아.”

“이야! 생각만 해도 멋져요.”

“향기도 있지. 꽃들은 모두 자기만의 향기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놀라워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죠?”     

작고 까맣게 생긴 몽돌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어요.

“파도님, 꽃을 보고 싶어요. 저를 꽃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세요.”

“글쎄, 나는 힘이 세지만 물이라서 너를 안고 갈 수가 없구나.”     


꼬마 몽돌은 무척 아쉬웠어요. 그래서 눈을 감고 꽃을 상상했어요. 마음으로 하늘에 있는 무지개에서 색깔 하나를 떼어 동그랗게 말아 보았어요. 어느새 예쁜 꽃잎이 만들어지고 꽃향기가 온몸을 감싸고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어요. 그날부터 꼬마 몽돌은 꽃을 만나는 꿈을 꾸었어요. 옆에 있던 어른 몽돌들이 놀렸어요.

“돌멩이가 어떻게 꽃을 만나니. 꼬마 몽돌은 너무 세상을 몰라.”

“꼬마야, 쓸데없는 꿈 꾸지 말고 잠이나 자렴.”

“차라리 날개가 돋는 꿈을 꾸지 그러니. 하하하!”     


꼬마 몽돌은 실망하지 않았어요. 왠지 몰라도 언젠가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날이 오늘 오후가 될지 내일 아침이 될지 누가 알겠어요. 몽돌은 언제든지 여행을 떠날 수 있게 준비를 했어요. 매일매일 바닷물에 얼굴과 몸을 깨끗하게 씻고 기다리는 일, 그것이 꼬마 몽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죠. 그 소원은 금방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울퉁불퉁 볼품없는 작은 몽돌이 날이 갈수록 동글동글하고 매끈매끈 해졌어요.      


어느 날 하늘을 빙빙 날아다니며 지켜보던 갈매기 말했어요.

“꼬마 몽돌아, 하늘에서 보면 수많은 몽돌 중에 네가 제일 반짝거려.”

“고마워요. 갈매기님.”

“어쩜 그렇게 열심히 너를 가꿀 수 있어?”

“저는 언제나 꽃을 만나러 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갈매기님이 오셔서 말을 걸어주듯,  꽃들도 언젠가는 나한테 와 줄 거예요.”

갈매기 아저씨는 꽃은 날개가 없어서 이곳까지 스스로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나도 오래전 사람들이 사는 곳까지 날아가서 꽃을 찾아보았지. 그러나 결국 찾지 못했어.”     

꼬마 몽돌은 금방 시무룩해졌어요. 갈매기가 부리로 몽돌 어깨를 톡톡 치며 말했어요.

“네가 정말 원한다면 내가 사람들이 사는 곳에 너를 데려다줄 수 있지.”

“정말요?”

“하지만 꽃을 찾지 못할 수도 있어. 괜찮겠니? ”

“그럼요. 저는 잘할 수 있어요!”

꼬마 몽돌은 꽃을 찾아 갈매기 아저씨에게 선물해 드리겠다고 했어요.     


갈매기가 작은 몽돌을 입에 물고 하늘 높이 솟았어요. 눈 밑에 아득히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이 보였어요. 파도가 멀리서 잘 다녀오라고 하얀 손을 저었어요. 바람을 헤치고 날아가는 긴 여행이 시작되었죠. 가도 가도 끝없이 넓은 바다였어요. 금방이라도 시퍼런 바다로 떨어질 것 같았어요. 하지만 몽돌은 이를 앙다물고 참았어요. 갈매기와 작은 몽돌은 서로 응원하며 힘을 냈어요.       


마침내 먼바다를 지나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왔어요. 갈매기 아저씨가 어느 동네에 몽돌을 떨어뜨려 주었어요. 몽돌은 데구루루 굴러 풀밭으로 들어갔어요.

“꼬마 몽돌아, 조심해.”

“갈매기님, 정말 고마워요. 잊지 않을게요.”

갈매기 아저씨가 하늘에 커다란 동그라미를 그리고 날아갔어요.      


수풀 사이에서 꼬마 몽돌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일뿐이었어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갔어요. 친하게 지내던 풀들이 사라지고 또 새로운 풀이 나서 자랐지만 아무도 꼬마 돌멩이를 보지 못했어요. 하지만 괜찮았어요. 작은 몽돌한테 기다리는 시간이란, 친구의 초대를 받고 대문을 똑똑 두드리고 난 다음, 문이 열릴 때까지 느끼는 설렘이었어요.  

    

어느 날, 풀밭을 쫓아다니던 들고양이들이 와서 꼬마 몽돌을 둘러싸고 말했어요.

“넌 어디서 온 돌멩이야?”

“작은 섬에서 꽃을 만나러 왔어요. 몽돌이라고 해요.”

“꽃 만나러 왔다고? 여기는 꽃이 없어.”

“왜요?”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꽃을 볼 시간이 없거든. 아무도 꽃을 심고 기르지 않아. ”

“설마요.”

몽돌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어요.


“파도님이 꽃이 없는 세상은 없다고 한걸요. 저는 꼭 찾을 거예요.”

고양이들이 이상하다는 듯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저희들끼리 뭐라고 쑥덕거렸어요. 그러더니 얼룩무늬 고양이가 말했어요.   

“좋아! 그렇다면 우리가 마을 구석구석을 다 보여 줄 수 있게 해 주지. 하지만 공짜는 없어.”

다른 고양이가 말을 했어요.

“맞아! 너도 우리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해.”

또 다른 고양이도 거들었어요.

“너는 동글동글하고 딱딱한 몸을 가졌으니 잘할 수 있을 거야.”

“뭘 하면 되나요?”     


고양이들은 꼬마 몽돌이 공이 되어 주면 된다고 했어요. 그러니까 고양이 발로 몽돌을 툭툭 치면서 공놀이를 하듯 굴리고 다니겠다는 거예요. 고양이들이 또 한 마디씩 했어요.

“우리는 공놀이하고 너는 꽃을 찾고 그러면 서로 좋잖아?”

“엄청 쉬워, 너는 그냥 데굴데굴 굴러다니기만 하면 돼.”


꼬마 몽돌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하루 종일 고양이들 발길에 차이며 이리저리 다녔어요. 몽돌은 어지럽고 아파서 힘들었지만 눈을 부릅뜨고 꽃을 찾아보았어요. 하지만 고양이 말이 옳았어요. 마을 어디에도 꽃은 보이지 않았어요. 저녁이 되자 꼬마 몽돌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어요. 몸 한쪽이 깨어져 비틀비틀하며 구르는 돌멩이 되고 말았어요. 몽돌은 결국 산 아래 좁은 길에 버려졌어요.  

   

다음 날 아침이 밝았어요. 집 앞을 쓸고 있던 할머니가 길가에 떨어져 있는 작은 몽돌을 보았어요. 할머니는 빗자루를 놓고 꼬마 몽돌을 집어 들었어요. 꼬마 몽돌은 잠결에 거칠고 딱딱한 손길을 느꼈지만 너무 피곤해서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할머니는 몽돌을 주워 이리저리 살펴보았어요. 그리고 집안으로 들어와서 창가에 있는 화분 위에 몽돌을 올려놓았어요. 몽돌이 잠을 깬 것은 그때였어요. 부스스 눈을 뜨니 머리 위에 아름다운 꽃이 활짝 피어 있었어요. 몽돌은 숨이 막힐 듯 기뻤어요. 꽃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아름다웠어요. 눈이 부셔서 바라볼 수 없을 정도였어요.      


“안녕하세요! 꽃님.”

꼬마 몽돌이 정신을 차리고 겨우 입을 열었어요. 그런데 화분 위 꽃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꽃님,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요. 만나서 반가워요.”

꽃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딴 곳을 바라보았어요. 낯가림을 많이 하는 것 같았어요. 몽돌은 어색하고 미안했어요. 하지만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아름다운 꽃이 바로 옆에 있으니 가슴이 자꾸 두근거렸어요.      


그런데 참 이상했어요. 그 꽃은 아무에게도 눈을 맞추지 않았어요. 할머니가 와서 말을 붙여도 토라진 아이처럼 앞만 쳐다보았어요. 아무런 향기도 없었어요. 그 꽃은 공장에서 만든 꽃이었어요. 흙과 물과 햇빛으로 자라는 진짜 꽃들은 오래전에 사라져 버렸어요. 할머니는 진짜 꽃을 키우는 것처럼 화분에 흙을 채우고 날마다 물을 주었어요. 화분에 물을 줄 때 흙이 튀지 않도록 돌멩이를 주워 올려놓은 것이죠.   


“우리는 정이 참 많이 들었구나. ”

할머니는 꽃을 보고 자주 그렇게 중얼거렸어요. 사람이든 물건이든 오래 함께 있으면 가족같이 느껴지는 마음, 그 마음이 정이 든다는 말인 것 같았어요. 몽돌도 할머님처럼 가짜 꽃과 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낡고 오래된 할머니 집에서 가족처럼 살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할머니와 살던 낡은 집도 무너져 사라졌어요. 하지만 까맣고 단단한 꼬마 몽돌은 그대로 남아 있었어요. 돌들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꼬마 몽돌이 있는 비탈진 그 자리로 다른 돌멩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흐르는 빗물을 따라 굴러온 돌이 모이고, 나중에는 길을 가던 사람들이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를 주워 그곳에 던졌어요.      


꼬마 몽돌이 있던 자리에 어느새 돌탑이 만들어졌어요. 사람들은 그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기도 하고 잠시 앉아서 쉬어 가기도 했어요. 그러던 어느 해, 돌탑 아래쪽에 짙은 자줏빛 꽃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어요. 몸 한쪽이 깨어져 비틀비틀 구르던 꼬마 몽돌이 피워 낸 꽃이에요. 그 꽃 이름은 제옥(帝玉)이랍니다. 한동안 꽃을 잊고 지내던 세상 사람들이 잠에서 깨어난듯 다시 꽃을 심었어요. 그리고 여기저기 눈부신 꽃물결이 퍼지기 시작했어요.    

끝.



     <사진 출처: 목암님의 블로그 '삶을 이야기하다' https://blog.naver.com/treerock >


* 제옥((帝玉)은 석류풀과의 다육식물로 원산지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케이프 지역이다. 꽃은 포식동물의 위험을 방어하기 위해 점점 진화되었다고 하며 주황색 또는 진홍색의 꽃이 잎이 갈리진 틈에서 돌출되어 봄에 핀다. 자색의 꽃이 피는 것은 자제옥(紫帝玉)이다.


* 길고 서툰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댓글은 마음으로 나누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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