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평균이 행복한 아이

프리즘처럼 다채로운 우리들

by 쓱쓱

둘째는 첫째와 참 많이 다르다.


자매라고 보이지 않을 만큼 외형도 성격도 다르지만 무엇보다 학습적인 부분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첫째는 어릴 적부터 빠르고 외향적이며 신속하고 적응력도 뛰어났다.

딱히 많이 노력하지 않아도 두루두루 잘하는 편이었고 그래서 으레 아이들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둘째는 완전히 달랐다.

느리고 내향적이고 신중하고 낯을 많이 가렸다.

예민하고 짜증이 많고 집에 혼자 있기를 더 선호했다.

무엇보다 학습적인 면에서 첫째만큼 쉽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래도 특유의 성실함과 태도로 저학년 때까지 곧잘 하는 편이었지만, 고학년이 되자 학습을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나는 둘째에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지금의 자신보다 더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누구에게든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둘째도 분명 더 잘하고 싶지만 잘 안 되는 부분에 속이 상할 것이고 그렇다면 부모가 적절하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수학 시험을 치르고 온 둘째와 이야기를 하다 내가 기존에 가졌던 생각의 틀이 완전히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둘째는 자신의 수학 점수에 만족한다고 했다.(오잉? 진심일까?)

물론 엄마의 입장에서는 전혀 만족할만한 점수가 아니었고 어쩐지 더 노력하지 않는 것에 대한 변명처럼만 들렸기 때문에 둘째의 생각을 완전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이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는 너무 못하지도 너무 잘하지도 않고 딱 평균만 하고 싶어요. 그게 딱 좋아요.”


아이의 말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다.

인간은 누구나 조금 더 잘하고 싶고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성숙하고 싶어 할 것이라고, 그것이 인간이 가진 보편적인 본능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평균이 딱 좋다는 아이의 말에 순간 멍해졌다.

그렇다.

둘째는 가운데 둥그런 평균의 둔덕 밑에서 함께 있는 아이들과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내고 있었다.

아이는 자신이 어울리는 곳에서 자신이 속하고 싶은 곳에 머물 때 더 행복할 수 있다는 진리를 직감적으로 알았다.

젊은 시절 내내 인생의 1 분단 맨 앞줄에 있고 싶었고 실제 그 자리를 지키려 부단히 노력하며 살았던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삶의 중요한 관점을 배울 수 있었다.

아이는 2 분단 중간쯤에 있었지만 조급해하거나 불만스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편안하고 만족스러워했다. 아이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유로워 보였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나 또한 편안했고 그 순간이 감사했다.

이후 나는 우리 모두 안에는 프리즘처럼 다양한 빛깔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었다.

둘째는 학습적인 부분, 특히 암기와 기억력이 뛰어나진 않지만,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심, 사회적 상호작용에서의 맥락에 대한 파악 능력이 뛰어나다. 그리고 그 밖에 더 다양한 방면에서 이미 지니고 있는 더 다채로운 빛들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어디에선가 읽은 책에서 신은 이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지혜를 우리의 인중에 증거로 남겼다는 말이 기억났다.

아이의 인중을 보며 내 입술 위 인중에 손가락을 가만히 대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삶에서 넘어지고 상처받는 날들로 힘겨워질 때마다 입술 위 인중에 손가락을 대고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게 필요한 모든 지혜는 이미 내 안에 자국처럼 살아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 지혜는 공평하게 주어졌다는 것을 말이다.

keyword
이전 13화결국 내가 감당해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