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감은 있어도 잘 씹을 수 있어요.
이가 깨진 적이 있다.
이가 깨지는 것은 충치가 생겼거나 발치를 해야 하거나 임플란트를 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의미를 남긴다.
흔히 충치가 생기면 충치 부분을 긁어내고 레진으로 때운다.
혹시 충치가 많이 진행되어 신경까지 진입한 경우에는 신경을 긁어내고 제거하는 신경치료를 한 후 레진으로 때운다.
그렇게 열심히 자연치아를 살려보려 안간힘을 쓰는 경우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앗, 이가 아프네, 를 잠시 방치해 두었다가 충치와 염증의 상태가 깊고 심하면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려야 한다. 어떻게든 자연치아를 살려보겠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데까지 가버렸다면 눈물을 머금고 보내줘야 한다.
물론 살아갈 날들이 새털처럼 많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치아를 복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나마 요즘에는 임플란트라는 고가의 대안이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비용도 비용이지만, 임플란트를 하는 과정 또한 만만치 않다. 기존 이를 뽑고 이식을 위한 잇몸을 절개하고 박리하여 임플란트를 식립 한다. 혹시 뼈가 약할 경우 뼈 이식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뭐, 그렇게 되면 복잡성은 심화된다.
그렇게 시술 부위가 부어올라 죽으로 연명해하는 시간이 다가온다.
몇 년 전 엄마가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는데, 시술 후 아파 죽겠다고 보내준 사진에는 과도하게 부풀어 오른 볼이 마치 호잇 호잇, 둘리 같던 한 낯선 여인이 있었다.
이후 잇몸과 유착기간을 확보하기 위한 긴 여정이 시작된다. 거의 2-3개월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엄마는 이 기간에 자꾸 음식물이 사이에 낀다며 열심히 입안을 헹궈내셨다.
마지막 보철물을 끼우기까지 1시간이 넘게 입을 벌리고 누워있으면 엄마 피셜로 혹시 턱이 빠진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수 있다. 이렇게 나열하는 것만으로 나는 턱이 아프다.
그런데 이가 깨지는 건 조금은 다른 경험을 남긴다.
내 경우에는 기존에 금으로 때웠던 곳이 빠져 치과에 갔었다. 충치가 깊지 않아 간단하게 레진으로 마무리를 했었는데, 왠지 음식물을 씹을 때마다 치료한 이에 불편감이 지속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매우 멀쩡해 보였기 때문에 의사 선생님은 별 문제가 없는 것 같다고 하셨다.
전문가가 별 문제가 없다고 하니, 일단 별 문제가 없다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내가 좀 예민한 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생각보다 불편감은 지속되었고 이를 사용하면 할수록 아프다는 단계로 접어들었을 무렵, 다른 치과를 찾아갔다. 레진을 걷어내고 자세히 관찰해 보니, 치아에 아주 미세한 금이 가있었다. 이가 깨져 있었던 것이다.
그 금이 너무 미세했기 때문에 아주 섬세한 의사가 아니면 발견해 낼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아, 그렇지. 섬세함의 수준이 다르지. 당연하지.
충치는 없지만 고통을 줄이기 위해 신경치료를 진행하고 이후 크라운으로 씌우면 일단 씹는 충격을 덜 받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다는 의견을 들었다. 좀 더 섬세한 의사 선생님이니 맡기기로 했다.
간단하게 치료과정은...
죽도 좀 먹고 턱도 좀 빠지고 볼도 좀 부었다.
그렇게 치료는 완료되었고 적응을 위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치료 당시 섬세한 의사 선생님은 금이 미세하지만 깊고 길게 가 있어 치료를 해도 완벽하지는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래도 그런대로 사용할만할 거라며 사람 좋게 웃었다.
역시 섬세한 의사는 치료 이후의 경험까지도 섬세하게 안내해 준다.
그럼에도 나는 왠지 품이 많이 드는 치료를 했음에도 깔끔하게 불편감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 실망스러웠고 치아를 소중하게 여기지 못한 것 같은 자책감도 살짝 들었다.
그치만 뭐 어쪄겠는가, 깨지지 않게 조심했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깨져버린 것을.
어제 카페에서 주문한 라떼와 함께 쌀과자가 서비스로 나왔다.
앗싸, 쌀과자를 씹다가 문득 떠올랐다.
깨진 이도 정성 들여 잘 치료하면 다시 사용할 수 있다.
깨진 정도에 따라서 깨지기 전과 비교했을 때 크게 차이가 없이 복구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금이 간 이는 원래 상태처럼 복구되긴 어렵다.
최대한 열심히 치료하고 돌봐줘도 외부로부터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조금씩 그 충격을 인지하게 된다.
가끔은 불편감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미세한 충격으로 인지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도 비슷하다.
상처 때문에 금이 간 마음은 잘 치료하고 돌봐주면 어느 정도 회복된다.
상처의 강도와 금의 깊이에 따라 말끔히 치료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상처와 강도가 강하고 깊을수록 금이 가지 않았던 상태로 완벽하게 복구되기는 어렵다.
마음의 신경치료를 하고 크라운을 씌워 어느 정도 잘 사용할 수 있지만 여전히 약간은 신경이 쓰일 때도 있다.
물론 가장 좋은 건 치아처럼 마음이 깨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잘 돌보는 것이다. 나의 마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도 예초에 깨지거나 금이 가지 않도록 조심히 소중해 대해주는 것이다.
그치만, 혹시 이미 깨져서 금이 가버렸다면 뭐, 어쪄겠는가.
이때 필요한 건
시간과 정성을 들여 잘 치료하고 적응해 나가는 것이다.
예전처럼 완전하진 않지만, 신경 쓰이는 상태를 없애려 노력하기보다 그렇게 느끼면서 지나는 것이다.
쌀과자를 씹을 때마다 뭔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지만 맛있게 잘 씹어 먹는 것이다.
조금 불편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잘 쓸 수 있기에 쌀과자도 먹고 고기도 씹으면서
다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복닥거리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