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도 하는데.
자주 가는 카페에 앉아 논문들을 읽다가 화장실에 들렀다.
세면대에 가만히 서서 보니 모기 한 마리가 화장실 거울에 붙어 있었다.
밤새 급습한 가을 때문에 갑자기 서늘해진 공기를 피해 아늑한 카페 화장실로 피신한 모양이었다.
정형적인 도시 모기였고 크기도 그리 위협적이지 않아서 본능적으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숨을 멈추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려는 순간,
모기가 앞다리로 자신의 빨대 모양의 주둥이를 열심히 닦고 있는 게 보였다.
얼마나 몰입을 했던지 사람이 가까이에 다가오는 것도 손이 움직이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요즘 도시 모기들은 고도의 전략과 생존 지능이 발달되어 있어 순간적으로 피를 빨고 숨고 빠지기가 귀신같은 데가 있는데,
눈앞에 이 모기는 오직 자신의 주둥이를 닦는 것에 모든 관심과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었다.
주동이를 닦는 데에는 모기 나름의 목적과 이유가 있겠지만 그 순간 나는 모기에게서 예각화를 떠올렸다.
예각화란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단어이지만, 오히려 영어로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러니까 어떤 대상이나 상황에 대한 이해를 날카롭게 혹은 깊게 한다는 의미이다.
어떤 것에 대해 날을 세우거나 날카롭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칼을 날카롭게 갈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반복적으로 하나의 방향을 향해 지속적으로 칼을 가는 것이다.
칼을 가는 움직임의 횟수가 많아질수록 칼은 더 날카롭게 갈린다.
물론 더 날카롭게 갈린 칼이 무딘 칼보다 훨씬 더 빠르고 깊게 썰린다.
모기는 자신의 주둥이를 반복적으로 닦으면서 인간의 피를 더욱 빠르고 효과적으로 흡혈하기 위한 예각화를 실천한다. 당연히 더 잘 생존하기 위해서.
지난주 나는 지도교수님에게 논문을 쓸 때 논문의 차별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고민이라고 말했고
교수님은 망설임 없이 나에게 대답했다.
"그건 아직 주제와 선행연구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여 이는 예각화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예각화가 잘 된 교수님의 말에 정곡을 찔렸다.
꽤나 날카로웠고 깊었다.
모기도 하는 걸, 쳇.
반복적으로 하나의 방향을 향해 지속적으로 날카롭고 깊게 하기.
아, 그리고 결국 모기는 그대로 두었다.
맥락을 몰랐으면 모를까.., 그렇게 열심히 갈고닦는 아이를 내 손으로 끝장낼 수는 도저히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