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창문은 열어둡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퇴근길
버스 정류장에 한 청년이 서 있었다.
짧은 쇼트커트를 한 머리는 단정했고 검은색 야구 점퍼와 바지는 깔끔했다.
그리 큰 키는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날렵한 체형으로 몸이 가벼워 보였다.
한 손엔 검은색 장우산을 곱게 접어든 채 버스가 오는 쪽을 주시하며 가끔 스마트 폰을 체크했다.
번호가 다른 버스가 연달아 정류장에 도착했지만 청년이 기다리는 버스는 아직 오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 한참을 한 정류장에서 기다리다 마침내 청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청년이 기다리던 번호의 버스가 정류장에 서지 않고 2차선으로 빠져나가다 정류장 바로 앞 신호등에 걸쳐 멈췄다.
청년은 다급히 2차선에 있던 버스로 달려 나갔다. 신호 대기로 멈춰 선 버스의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는 제스처를 보냈다. 그러나 버스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청년은 계속 버스를 향해 요구했고 버스의 문은 움직이지 않았다.
문이 열리지 않자 청년은 스마트 폰을 꺼내 버스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신호등 신호에 맞춰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있었고 청년은 마치 여자친구의 사진을 찍듯 공들여 버스 앞면과 옆면을 향해 여러 장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신호등을 건너던 사람들과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시선이 청년에게 집중됐다. 정류장에 계시던 한 어르신의 목소리가 조금 크게 들렸다.
"아이고, 저거 버스 찍네. 허참."
신호가 바뀌고 버스는 그대로 자기 갈 길을 가듯 지나갔다. 청년은 재빨리 정류장으로 복귀했고 이내 사진을 선별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정차 위반으로 신고를 하려는 것 같았다.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핸드폰에서 무언가를 찾아 작업하던 청년의 옆모습이 보였다.
왠지 수줍음이 많고 내성적일 것만 같던 분위기와 전혀 다른 과감하고 다소 충동적인 행동을 보면서 내 안에 있던 선이해라는 것이 얼마나 불완전한가에 대해 생각했다.
더불어 인간의 추측과 예측의 기능과 그것의 쓸모에 대해 생각했고 사고의 불확실성과 가변성에 대해 생각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에 의한 자기 확신과 그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개방성의 부재가 얼마나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다 버스가 오는 것을 발견했다.
버스에 올라타 자리에 앉아 생각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알까?
청년이 기다리던 버스는 원래 그 정류장에 서지 않는 버스라는 걸.
그 번호의 버스는 우리가 서 있던 버스 정류장을 조금 지나 위치한 다른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