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쓱쓱 Sep 02. 2024

주체성과 관계성

좀 더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당신

 나는 그를 똘똘이 스머프라고 불렀다. 


 까만 안경테 넘어 그의 눈은 특히나 지적인 호기심이 발동할 때면 유난히 더 반짝거렸다. 

 우주와 별을 전공했고 본질과 철학에 심취했으며 관계와 연대에 목숨을 걸었던 시절도 있었다.


 문학과 예술, 사진과 과학을 사랑했던 그는 그가 읽었던 방대한 책들만큼이나 알고 있는 것도 말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그래서 한번 이야기를 시작하면 정말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극강의 N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점에서 나는 이따금 그가 일종의 정신적 단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 꽤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험난한 시간을 보냈고 그로 인해 깊은 상처가 많았지만 스스로 느끼기에도 부족한 그 큰 구멍들을 메꾸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그래서 그는 분명히 멋진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투쟁하여 얻어낸 성과들이 언제나 자랑스러웠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그에게 항상 응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가 말했다. 


 "좀 더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데, 요즘은 그게 더 잘 안 되는 것 같아."

 "음..., 주체적으로 산다는 어떻게 사는 건데?"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단단하게 살아가는 거지. 혼자 있어도 진심 괜찮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자신에게 집중하면서 온전히 충족된 형태로 살아가는 거."

 "음.., 그럼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도움을 구하면 주체적이지 못한 건가?"

 "......"


 분명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단한 느낌을 준다.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 치우치지 않고 '자신의 의지에 의해 선택하고 그러한 방식을 지켜나갈 수 있는 매우 능동적인 자세'가 떠오른다. 

 주체적인 사람이라면 왠지 스스로의 가치 기준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매우 역동적인 사람일 것만 같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이 꼭 주체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주체적인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을 의미할까?

 주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정녕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만 걸어가야 하는 것이라면 과연 인간에게 온전히 주체적인 삶이란 것이 가능할까?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또 의지의 대상이 되어 살아간다. 

 흔히 아는 사실이지만 사람을 의미하는 한자어 사람인 人은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안전하게 서 있는 모습이다. 

 

 의지하는 것 같지만 사실 버팀목이 되어주며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의지하고 있는 모습. 

 결국 어떠한 개념도 상대 개념 없이 이해될 수 없듯이 주체성 또한 관계성을 만나야 생기는 개념일 수 있다. 


 내가 있다는 것은 네가 있다는 전제 하에 생긴다. 

 나만 있다면 무엇으로 나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삶을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다면, 관계 또한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것 같다. 

 관계는 나와 네가 함께 포함된다. 

 나는 나로서, 너는 너로서 분명 두 사람은 명확한 개체다. 

 그러나 이처럼 각각의 명확한 개체들이 먼저 단단히 땅을 딛고 선 후 서로 비스듬히 기대어 의지가 되어주고 또 의지할 수 있을 때 어쩌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체적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전 10화 컨트롤 C, 컨트롤 V.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