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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쓱쓱 Aug 31. 2024

마음이론과 맹신의 폐해

예측 말고 확인하기 

 "니가 내 마음을 알아?"


 훈훈한 젊은 남녀가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다. 

 두 사람 주변에는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알록달록한 낙엽이 바람에 사정없이 흩날리고 있다. 

 

 여자가 남자를 향해 울부짖듯 소리친다.


 "가! 가란 말이야!"


 왠지 한 때 유명했던 CF 광고가 떠오를 것이다. 

 여기서는 약간 설정을 달리하여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여자가 고통스럽게 외친다. 

 남자는 여자의 악다구니에 놀라고 일그러진 표정에 놀라다가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에 더욱 놀란다. 


 그 순간 남자는 확신한다. 

 여자가 지금 자신을 강력하게 거부하고 있다고.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썩 꺼지라는 메시지를 그녀가 맹렬하게 보내고 있다고.


 남자가 그대로 발길을 돌려 뚜벅뚜벅 멀어져 간다. 

 여기까지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지금은 이성적으로 이야기할 때가 아니니 일단 피하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낙엽이 미친 듯이 소용돌이를 만들며 연인들의 고통을 대변한다. 


 그런데, 정말 여자는 남자가 가길 원했을까?


 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진짜 괴로워 끝장내고 싶어 눈앞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것을 당신이 좀 제대로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디서나 마음을 감지하는 선천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안전한 생존을 위해 발달시킨 유구한 역사의 산물이며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 가장 핵심적인 무기이자 도구다. 


 이 중요한 기술을 마음이론이라고 한다. 

 학문적으로 접근하자면, 마음이론은 프리맥(D.Premack)과 영장류 학자 우드러프(G. Woodruff)가 만든 용어로 사람이 의도나 바람과 같은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침팬지가 이해한다는 실험적 증거를 제시하면서 자신과 타인이 목적, 바람, 믿음과 같은 마음상태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마음상태가 특정 행동을 하도록 만든다는 마음에 대한 지식으로 정의했다. 


 우선 프리맥과 우드러프는 침팬지를 통해 여러 실험을 진행했는데, 

 침팬지가 타인의 심리 상태를 추론하는지 아닌지 결정하기 위해 성년 침팬지에게 인간 배우가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비디오테이프 장면들을 보여주고 침팬지의 반응을 관찰하였다. 


 예를 들어 바나나를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거나 인간 배우가 자물쇠로 잠긴 우리에서 나오지 못하는 장면이라든지, 고장 난 히터 때문에 떨고 있는 문제 등을 보여주고 막대기나 열쇠, 불 붙이게 등의 사진을 제시한 후 사진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실험 결과 침팬지는 일관되게 정확한 사진을 선택하면서 침팬지가 남의 믿음이나 욕망 또는 의도와 지식을 이해하는 마음이론을 가진다고 보았다.


 자, 인간과 가장 유사한 유전적 구조를 가졌다는 침팬지가 마음이론을 가지고 있다는 실험은 다소 웃기지만 그러니 인간은 말해 무엇하랴라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렇게 우리는 이 마음이론을 이용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며 어떤 모의를 하는지 상상할 수 있다. 

 마음이론 덕에 직접 경험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그 사람의 관점에서 세계를 경험할 수 있으며 타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러한 마음이론을 맹신하는 순간 우리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된다. 

 특히 타인의 생각과 마음을 예측하고 그것을 통제하려 할 때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를 잘못 예측하는 순간 싸움과 오해가 발발하고 관계적으로 파국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군가의 마음을 읽을 때 발생하는 오류는 정말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악을 쓰며 가라고 말하는 여자의 마음을 정말 꺼지라는 것으로 예측한다면 둘의 관계를 거기서 끝날 수밖에 없다. 

 반면에 여자가 악을 쓰면서 가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럽고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당장 자신을 꼭 안아달라고 하는 것으로 예측한다면 둘의 관계를 또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수 있다. 

 그러나 이도 저도 모두 내 위주의 예측이자 해석이기에 위험 부담은 모두 존재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직접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가? 나 진짜 가? 진짜 가도 돼? 너 나중에 딴말하기 없기다?' 이런 식은 매우 곤란하다. 

 가!라고 소리치고 있는 여자의 말과 행동에서 그 순간 내가 느끼는 것을 먼저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 니가 가라고 하는 게 정말 가버리라고, 나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느껴. 그게 너의 지금 마음이니?"


 또는


 "나는 지금 니가 가라고 소리치고 있지만 왠지 내가 너무 힘들다고 외치는 것처럼 느껴. 나는 오히려 네가 나를 좀 안아달라고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나의 생각과 느낌이 맞는 거니?"


 이처럼 내가 이해한 것을 담백하게 전달하고 확인하게 되면 일단 생각과 입장의 차이에서 오는 격차를 상당히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 무엇보다 일단 상대방에게 잠시라도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결국 갈등 상황에서는 주요한 공을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오류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분명 마음이론은 인간을 더욱 인간답게, 더욱 번성하게 만들어주는 매우 중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만을 가지고 예측할 때 매우 위험한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관계에서 오는 많은 스트레스와 어려움이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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