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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 홀릭 세종대왕, 그의 신하들

혁신 뒤에 숨은 과로의 그림자

by 김형범

세종대왕은 조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그가 이룩한 업적은 너무나도 눈부셔서 마치 '완벽한 리더'로 기억되곤 하죠. 하지만 이런 위대한 왕조를 이끌어가는 데 필요한 대가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혹시 그의 업적 뒤에는 피곤한 신하들의 한숨 소리가 가득하지 않았을까요? 상상해 보세요.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행해야 하는 왕의 지시를 받으며, 피로에 지쳐가는 신하들의 모습이요. 세종대왕과 그의 신하들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들은 지금 시대의 워커 홀릭 문화와도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세종대왕은 그야말로 혁신가였습니다. 농사 기술을 혁신하기 위해 전국에서 농사꾼의 지혜를 모으려 했고, 천문학 도구를 만들며 별을 연구했으며, 심지어 백성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문자까지 창제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조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만, 그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희생해야 했던 신하들에게는 마냥 반가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무슨 일을 또 맡게 될까?"라는 생각으로 아침을 시작했던 신하들의 하루는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습니다.


특히 장영실이라는 인물은 세종의 과학적 열망을 구현한 대표적인 인물로 꼽힙니다. 장영실은 해시계, 혼천의 등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어냈지만, 정치적 이유로 파직되며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세종대왕의 곁에서 혁신의 최전선에 서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감당해야 했던 압박감은 상당했을 것입니다. 또한, 악기를 제작하던 박연은 세종 앞에서 작은 소리의 결함까지 지적받으며 완벽함을 추구해야 했습니다. 오늘날 회사에서 끊임없이 수정 요청을 받는 직장인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나요?


신하들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았습니다. 황희와 조말생 같은 이들은 사표를 반복적으로 제출하며 부담을 줄이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세종은 이러한 저항에 유머러스하면서도 강경하게 대응했습니다. 그는 사표를 반려하며 “사직서를 쓸 시간조차 남는 것을 보니 아직 일이 충분하지 않은가 보구나”라는 식으로 답했습니다. 결국 신하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상황을 견뎌냈습니다. 세종의 시대를 살았던 신하들에게 '퇴사'란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셈입니다.


훈민정음 창제는 세종대왕의 열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입니다. 학자들과 신하들이 강하게 반대했지만, 그는 백성을 위해 끝까지 밀어붙였습니다. 신하들은 새로운 문자가 한문과 다른 점 때문에 명나라와의 외교 문제를 우려했지만, 세종은 그저 백성들이 쉽게 배우고 사용할 수 있는 문자만을 생각했습니다. 결국 훈민정음은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 중 하나로 남았습니다. 세종대왕의 의지와 신하들의 헌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었죠.


세종대왕의 열정은 조선을 움직이는 동력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신하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시대의 이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워커 홀릭 문화는 세종대왕과 그의 신하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혁신이란 늘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며, 이를 감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종종 잊히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모습도 없었을 것입니다. 세종대왕의 이야기 속에는 단순히 성공한 왕의 모습만이 아니라, 인간적인 한계와 끊임없는 도전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3줄 정리

1. 세종대왕의 혁신적인 업적은 조선을 발전시켰지만, 신하들의 과로와 희생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2. 장영실과 조말생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워커 홀릭 문화와도 닮아 있다.

3. 세종의 열정과 신하들의 헌신은 조선을 움직인 힘이자, 역사의 이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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