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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이어온 천재적인 엉뚱함, 하리보의 성공 비결

엄숙한 어른들의 입에서 터져 나온 아이 목소리가 만든 마법

by 김형범

상상해 보세요. 정장을 차려입은 비즈니스맨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가득 찬 무거운 회의실입니다. 숨 막히는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진지해 보이는 한 중년 남성이 입을 엽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굵직하고 중후한 목소리가 아니라, "나 이 빨간색 곰돌이가 제일 좋아!"라고 외치는 다섯 살 배기 아이의 앙증맞은 목소리입니다. 순간 엄숙했던 분위기는 와르르 무너지고, 화면 속 어른들은 서로 젤리를 자랑하며 아이처럼 즐거워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방송사고가 아닙니다. 전 세계 소비자를 10년 넘게 사로잡은 전설적인 젤리 브랜드, 하리보의 '키즈 보이스(Kids' Voices)' 광고 캠페인 이야기입니다.


https://youtu.be/qv64gSHZJl8?si=6I1AtMsDYnBAFXdG


한국의 시청자들에게도 엘리베이터나 작전 현장 같은 진지한 배경에서 "보 골드베런 팀이다, 오바!"라고 외치던 더빙 광고로 꽤 익숙한 장면일 것입니다. 처음 이 광고를 접한 사람들은 어른의 몸에 아이의 목소리가 입혀진 기묘한 부조화에 당황하면서도, 곧이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합니다. 영국에서 처음 기획된 이 독특한 광고는 단순히 웃음을 주기 위한 일회성 유머가 아니었습니다. 하리보 측은 '어른도 젤리를 먹는 순간만큼은 아이처럼 순수하게 행복해진다'라는 브랜드의 핵심 메시지를 가장 직관적으로 전달할 방법을 고민했고, 그 결과 시각과 청각을 완벽하게 분리하는 과감한 시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겉모습은 넥타이를 맨 어른일지라도, 젤리를 씹는 그 순간 내면의 자아는 어린아이로 돌아간다는 것을 이토록 명확하게 시각화한 것입니다.


이 엉뚱해 보이는 전략의 결과는 실로 놀라웠습니다. 어른의 모습과 아이의 목소리라는 이질적인 조합은 소비자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박혔고, 광고 호감도와 브랜드 파워는 수직 상승했습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이 캠페인은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미국, 프랑스, 한국 등 전 세계 19개국으로 수출되었습니다. 인종과 언어, 문화적 배경은 모두 달랐지만, '누구나 마음속에는 아이가 살고 있다'는 보편적인 정서가 통했기 때문입니다. 각 나라의 언어로 더빙된 이 광고들은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에서 수천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보는 콘텐츠가 되었고, 덕분에 하리보는 경쟁이 치열한 글로벌 제과 시장에서 독보적인 젤리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습니다.


보통의 기업들이 트렌드에 맞춰 매 시즌 광고 컨셉을 바꾸는 것과 달리, 하리보는 이 '키즈 보이스' 전략을 무려 10년 넘게 고수해 왔습니다. 강산이 변한다는 긴 세월 동안 같은 형식을 유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이 전략이 가진 힘이 강력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결국 하리보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화려한 특수효과나 복잡한 설명 없이도, 인간의 가장 본능적이고 순수한 즐거움을 건드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마케팅이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른이라는 무거운 껍데기를 잠시 내려놓고 아이처럼 웃게 만드는 젤리 한 봉지의 힘, 그것이 바로 하리보가 10년 동안 지켜온 성공의 마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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