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순이 권태기를 극복하고 싶은 집순이
집순이 일상의 시작은 늘 운동과 함께다. 이렇게 말하면 내가 운동 매니아처럼 보이지만, 실은 내가 살기 위해 운동하는 인간형일 뿐이다. 그리고 이렇게 정기적으로 운동을 한지는 사실 몇개월 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조금씩 하다보니 구력이 붙어 그런지 생각보다 할만하다. 심지어 매일 하다보니 안하는 날은 몸이 찌뿌두둥한 지경이 이르렀다. 아, 이렇게 운동형 인간이 만들어지나보다, 라며 은근 기뻐하는 요즘이다.
애초에 나는 운동과는 최대한 거리가 멀게 지내온 사람이다. 평생 마르고 근육 없는 애,로 살다보니 하루만 운동을 좀 쎄게 하고 나면 기본 이틀은 앓아누워야 하는 전형적인 비운동형 인간이었다. 스쿼트나 근육 운동을 하루 정도 심하게 하고 나면 그 다음날은 어김없이 허벅지가 땡겨서 운동을 못 간다. 그런 식으로 일주일에 퐁당퐁당 헬스장을 가게 되니 몸에 근육이 쌓일 틈이 없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운동을 꾸준히 하게 된 계기는 이사하고 나서부터다. 그 전에 살던 아파트에도 헬스장이 있었지만 내가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라 그냥 심심해서 대충 시간을 떼우는 날이 허다했다. 그런데 지금 아파트 헬스장은 내가 자발적으로 가게 되는 상황이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헬스장에는 운동하게 만드는 동력이 숨겨져 있다. 그건 바로 사람들.
지금 이 아파트는 역이 아주 가까운 역세권 아파트라 그런지 젊은 직장인들 아니면 나이든 분들이 많다. 내가 운동하는 시간은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난 직후인 오전 7시반 정도. 그때 아이를 등교시키고 헬스장으로 가면 이집 저집에서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보통 나이대는 대략 50대에서 70대 사이. 간혹 20대나 30대도 보이지만 주 연령층은 나이가 많다. 내 또래의 학부모처럼 보이는 젊은 엄마들은 보이지 않는다. 나이드신 분들은 정말 운동에 진심이다. 매일같이 수영장 둘레를 따라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러닝머신을 타기도 한다. 내 나이보다 족히 20살, 30살 많아 보이는 분들이 허리 꽂꽂이 세우고 근육질 다리로 걷는 걸 보면 나도 나이들어 저렇게 살아야지 싶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 나이인데 늙어서 고생하는 이유는 다 근육이 없어서라는 걸 요즘 너무 절실히 깨닫고 있다. 아프지 말고 오래 살려면 방법은 운동 뿐이라는 걸 알아가는 중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헬스장에 간다.
아이 등교시키고 헬스장으로 출근해 스트레칭을 좀 하고 러닝 머신 위에 오른다. 어떤 날은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근육 운동을 병행하기도 한다. 그렇게 운동을 하고 있자면 아침에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한눈에 보인다. 헬스장은 아파트 한가운데에 뻥 뚫린 공간에 자리하고 있는 수영장 바로 앞에 있다. 통창이라 운동하려고 모인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눈에 보인다.
처음 이사하고 한달 정도 지났을 때 매일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중국인 아주머니가 한분 계셨다. 풍채가 아주 좋으신데 매일 같은 자전거에서 매일 같은 시간에 자전거 페달을 밟는 분이다. 여러 번 마주쳐서 인사를 하고 지나치려는데 그분이 말을 걸어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중국인인가?"
여긴 말레이시아 중국인들이 많은 사는 아파트라 그렇게 물어온 것 같다. 나는 한국 사람이라 대답했는데 그 아주머니는 곧장 다른 질문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이 아파트 어디에 사냐, 직장을 다니느냐, 가족이 어떻게 되느냐, 여기에 얼마나 살았느냐... ” 등. 이럴 때 좋은 방법은 대충 말하기다. 호기심을 채워줄 정도의 딱 그만큼의 정보만 제공하되, 나는 그쪽에 어떤 것도 물어보지 않는다. 그러면 더이상 질문할 동력을 잃고 말을 걸지 않는다. 그게 나의 오랜 해외 생활에서 얻은 일종의 트릭이다. 나의 정보를 제공하고 빌미를 주기 시작하면 그 끊임없는 호기심이 나를 쫓아다니게 된다. 아주머니는 그동안 품어 왔던 호기심을 어느 정도 충족했는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아마 내일이면 여기 운동하는 대부분의 아주머니들이 나에 대해 알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여기 중국인 아주머니들은 늘 모이는 멤버가 있다. 각자 운동을 마치고 나서 작은 풀의 수영장을 에워 싸고 모여서 다함께 스트레칭을 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들의 소셜을 겸한 수다가 시작된다.
남자들은 여기서도 역시 소셜이 별로 없다. 그들은 각자 움직인다. 빠르게 걷는 것과 런닝의 중간 쯤의 속도로 매일 운동하는 30대 후반의 남자, 근육이 다 성나 있는 정말 열심히 근육 운동만 하는 인도계 30대 남자, 아파트 수영장 근처를 매일 20바퀴는 도는 듯한 80대 가까이 보이는 할아버지가 이시간이면 거의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다. 그중에서 특이한 사람들도 있는데, 두 남자가 매일 와서 같이 운동하는 메이트도 그들 중 하나. 한명이 근육 운동을 가르쳐 주고 한명은 그 가르침 대로 운동을 한다. 그런데 특이한건 배우는 쪽 몸이 훨씬 더 좋다는 사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매일 같은 운동 기구를 타는 50대 중반 쯤의 아주머니도 있는데 그분이 운동을 하면 밖에서 걷다가 그분을 보고 유턴해서 오는 할머니 두 분이 계신다. 그리고 셋이 같이도 아니고, 이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이 쉬고, 다른 사람이 말하면 또다른 사람이 쉬면서 번갈아 둘씩 대화하는 이상한 대화를 계속 이어간다. 그 대화는 이 50대 아주머니의 운동이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나라면 귀찮아서라도 운동을 그만두던가 운동 시간을 바꿀 것 같은데 꾸준히 계속 하는 걸 보면 아마도 꽤나 오래된 친분 관계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꾸준함에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제일 열심히 하는 할아버지가 한 분 계신다. 70대로 보이는데 매일 헬스장에서 1시간 이상 운동을 즐기신다. 런닝, 자전거타기, 걷기 등 돌아가면서 운동을 하는데 늘 제일 늦게 까지 남아 있고 매일 빼놓지 않고 운동하는 분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몸에 근육이 아주 많아 보인다.
헬스장에 이렇게 나이든 분들만 있는 건 아니다. 자주 마주치는 20대 여자 두명이 있는데, 한명은 인도계 아가씨다. 늘 위아래 긴 트레이닝복(아마 땀복으로 추측되는)을 입고 런닝머신을 뛴다. 이 더운 나라에서 그런 옷을 입고 계속 뛸 수 있다니 원래부터 다른 건가 체력이 좋은 건가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리고 이 헬스장 이용객 중에 제일 젊어보이는 20대 중국계 여자. 그 사람은 종잡을 수가 없다. 어떤 날은 파트너인듯 보이는 남자친구와 와서 운동을 배울 때도 있고, 어떤 날은 마치 자기를 보라는 듯, 운동 기구 사이를 가로 질러 뛰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어떤 날은 분명 잠옷으로 보이는 새틴 소재 곰돌이 패턴의 반바지 잠옷을 입고 와서는 셀카를 열심히 찍더니 그 옷을 입은 채 런닝을 하기도 했다. 그 분의 행동을 보는 재미도 은근 쏠쏠하다.
매일 이렇게 다채로운 사람을 만나서 사람들 관찰하는 것도 어느덧 나의 일과 중 하나가 됐다. 그중에서 오지랖 넓은 분은 나에게 말을 걸었던 그 아주머니. 그 분은 아파트에서 걸을 때 최소 3명 이상과 대화하면서 걷는다. 걸을 때 옆을 스치는 모두와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데 어떨 때는 그냥 서서 대화를 나누느라 운동을 잊을 때도 있다. 이쯤되면 운동을 하려고 나오시는 건지 아니면 소셜을 하려고 나오시는건지 분간이 가지 않지만, 그분과 인사할 때면 늘 활짝 웃으면서 반겨주시는 모습이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 같다. 원래 긍정적인 에너지는 금세 퍼지는 법이니까.
뭐든 하나에 꽂히려면 어떤 방식으로든 나만의 재미가 있어야 한다. 나는 헬스장에서 사람들 관찰하는 재미를 찾은 것 같다. '오운완', 하면서 나만의 만족도도 상당히 높아진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사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운동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