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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e, from us 0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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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Mar 09. 2017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았다.


수상자들은 감독과 동료 배우뿐만 아니라 제작자, 분장사와 카메라 감독, 심지어는 말단 스태프까지 수많은 조력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비단 할리우드에만 국한되는 장면이 아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는 황정민의 ‘숟가락’ 수상소감부터 최근 연말 연기대상에서 상을 탔던 한석규의 대상 소감 속에도 스태프의 노고에 대한 감사,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대한 애정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껏 겪은 사회 경험들을 응축해 본 결과, 참으로 그들은 주인공만큼이나 위대한 조연들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누군들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을까. 적어도 한 번쯤은 자신이 어떤 창작물의 주체가 되어 보고 싶지 않을까. 대중의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독이 든 성배’와도 같지만, 반대로 대다수가 경험할 수 없는 신비롭고 특별한 경험이기도 하다. 그 방향이야 어떻든 간에 한 사람의 삶과 업적이 타인의 관심 속에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축복받아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스태프들은 밝은 조명이 비추는 곳에 서지 못한다. 그들의 자리는 그 조명 바로 아래, 음영이 져 어두운 스튜디오의 어느 한 공간일 뿐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카메라를 들쳐 멘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하고 배우들의 분장, 촬영 세트 등이 최적의 상태가 될 수 있도록 한 씬 한 씬 진행되는 촬영 과정을 예의 주시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치 힘겹게 마무리된 결과물이 운 좋게 대중의 큰 사랑을 받게 되더라도 발이 부어라 뛰어다녔던 스태프들에게 돌아오는 기회와 보상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언제나 조력자로서만 살아야 하는 것일까.


그들도 꿈을 꾼다. 업계에서 최고가 되는 것 일수도 있고, 직업적 개념 이외의 차원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이상일 수도 있으며, 특정한 필드 내에서의 전문가가 되고 싶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간에 그들이 언제까지나 조력자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예를 들어 어느 매니저는 훗날 자신이 관리했던 유명 연예인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거대한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릴 수도 있고, 또 어떤 VJ는 할리우드의 유명 카메라 감독인 ‘엠마누엘 루베즈키’처럼 영상 업계에서 유일무이한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버틸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도울 수 있는 것이다. 정말 미치도록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고통과 시련은, 물론 그것들이 살을 에고 불안감을 증폭시키기도 하지만 결코 그들이 포기하게끔 만들지는 못한다.


직업적 분야와 집단의 형태를 막론하고 소위 ‘성공한’ 자들의 언저리에는 항시 ‘그들이’ 있다. 그들은 가족이고, 친구이고, 동료이고,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가장 빛나는 조명을 한가득 받는 시상식 자리에서 저만치 멀리 떨어진 무대 밑 ‘그들이’ 눈에 아른거릴 때면,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꿈꾸는 자’에 대한 예의를 표하고 그 꿈의 과정 속에 함께할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하지 않겠는가.


어쩌면 그들을 비추고 있는 ‘보이지 않는 빛’이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반드시 그럴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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