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me, from us 10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onymous Aug 16. 2017

파리에서

나는 최대한 대중교통 이용을 자제했다.


그냥 여기저기 걸으며 오감으로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미술관, 박물관의 작품들에 매료되었다가 적당히 사진도 찍을 만큼 찍었을 때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공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잔디밭 위에는 사람들이 일광욕을 즐기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강렬한 햇빛은 나뭇잎 사이로 깊게 파고드는 중이었다. 그늘 아래서는 선선한 미풍이 시소처럼 왔다 갔다 움직이고 있었는데, 순간 그 모든 풍경들이 너무나 포근했다.


포근함이 더해져 나른해지기 시작할 때, 바로 앞쪽의 물가 주변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가만히, 그 사람들 중 한 명에게 나를 대입시켜 보았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속에서 무언가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지긋이 책에 빠져들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환경이 그들에게는 또 다른 일상이 된다는 것. 파리가 왜 예술, 낭만으로 가득 차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두 번째 날 아침에는 숙소 근처에 있는 노천카페에서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그 순간이 또 그렇게 좋았다. 여행자로서의 설렘이 개입되었다는 점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이곳의 일상은 항상 새로움과 기분 좋은 예감으로 덧입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천카페는 정말 많았는데, 하나 같이 비슷한 듯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고,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고전 양식의 건축물들은 저마다의 기품과 교양을 갖춘 듯했다.


그 공간들 사이사이에서 사람들은 열을 올려가며 자기주장을 피력하기도 했고, 잔잔히 흐르는 센 강처럼 나긋한 사랑을 나누기도 했다. 역동적이고, 또한 평온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색깔을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동시에 누구보다 강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실로 멋져 보였다. 해외여행을 많이 해보진 않았지만, 일찌감치 서양 문화와 예술을 동경했었던 나로서는 한번쯤 꼭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깊게 각인 되었다.


정말 흥미롭게도 그렇게 새로운 풍경들에 허우적대다 늦은 밤이 되면 갑자기 한국인과 우리만의 정서가 그리워지는 것이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를 경험한 사람과의 교감은 그 깊이가 확연히 다르다. 눈이 머무는 모든 곳이 아름다웠던 이국적 분위기에 휩싸이면서도,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 한 번쯤 어스름한 골목 혹은 카페의 구석 자리에서 나타나 주기를 바랐던 것은 어쩌면 나의 과도한 낭만성이 배양한 욕심이었을까.


혼자여서 좋다가도 어느 고요한 순간에 문득 떠오르는, 이제 막 느낀 ‘처음의 감정들’을 고스란히 나누고 싶은. 그 순간이 파리의 어느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테이블이 두세 개 정도는 비어있고 양초가 천천히 타들어 가는 빈티지 카페라면 더없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이전 09화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