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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e, from us 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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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Mar 22. 2017

맵고 따듯한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흔히 ‘잔상’이라고 부르는 이것들은 머리와 가슴속에 기생하면서 뜻하지 않은 순간 우리를 숙연하게 만든다. 희한한 아이러니다. 행복했던 과거의 기억들은 그리 많지도 않을뿐더러 그마저도 사라질 듯 말 듯 흐릿하게 남아있는 반면 충격과 상처로 얼룩 진 기억들은 버젓이 내 몸 구석구석을 비집고 다닌다.


가끔 가족과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보곤 한다. 나이가 들면서 가족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더해진 덕분에 혼자 있을 때면 종종 그분들과 내가 함께했던 과거들이 굴뚝 연기처럼 뭉근하게 떠오른다.


나는 사춘기를 유난스럽게 보낸 편에 속한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소위 ‘양아치 짓’은 하지 않았지만, 그 무렵 대부분의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책상에 앉아 공부하기를 싫어했고 밤늦게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땀에 절 때까지 춤을 추고 운동을 해야만 스트레스가 풀렸다. 중학교 3학년이 끝나갈 무렵 나는 고등학교 진학으로 인해 그 당시 만나고 있던 여자 친구와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꽤나 슬퍼하고 있었는데, 부모님은 완강하게 ‘이제 그만 만나라.’고 선을 그어버렸다. 그러면서 가지고 있던 핸드폰을 압수해갔는데 정확히 무엇 때문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악- 소리를 지르며 대들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적당히 반항하는 시늉만 하다 제 풀에 지쳐 결국 부모님 뜻에 따르고 말았을 터인데, 그날따라 유달리 언성이 높아지고 말투가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아버지까지 나서 나를 회유하기 시작했는데 도통 대화가 차분하게 이어지질 않고 더 격렬해지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웃기지만, 아마도 나는 그토록 풋풋한 만남을 ‘사랑’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다. 그때는 정말 진지했다. 또래 친구들은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절정에 이른 사춘기 무렵, 처음으로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보통은 중고등학교 무렵일 텐데), 그 관계에 대한 의존과 집착은 상당한 수준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학교’는 늘 무언가를 억압하는 위치에 서있다. 호기심과 솟구치는 감정, 혼란스러운 고민들을 포함하여. 그런 상황에서 이성 친구는 쉴 새 없이 요동치는 감정 기복을 차분하게 어루만져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다시 돌아와서. 나는 이성적인 반항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고, 여태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건만 상스러운 욕을 뱉어내고 말았다. 그 말을 뱉자마자 곧바로 방구석에 세워져 있던 기다란 죽도가 내 어깨 위를 세차게 내리쳤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번쩍 들면서 죽도의 손잡이를 향해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아버지였다. 나는 아픈 것보다도 아버지가 나를 때렸다는 사실에 더 놀랐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잔소리를 한 겹 두 겹 보태어 쏘아붙일 때도 항상 옆에서 부드럽고 인자한 표정으로 중재해주었고, 항상 독서나 영화, 클래식 음악 감상을 생활화하시는, 부드러운 분이셨다.


나는 단박에 정말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가만히 기를 죽였다. 눈물은 이미 터진 지 오래였다. 옆에 서 계시던 어머니도 살짝 놀란 눈치였다. 아버지는 말없이 방을 나가버리셨다.


늘 그렇듯 시간이 흐르고, 나는 죄송스러움에 제대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 늦기 전에 말해야 했다.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그 날 그 시간 속 구도와 서 있는 자세, 표정, 목소리 톤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어린 나이에 다소 큰 충격이었던 것 같긴 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호된 매질은 분명 사랑이었음에 틀림없다. 지금에서야 나는 그 날의 매질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아마 그 날 내가 혼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나는 속된 말로 개차반 같은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가장 예민하고 날카로운 시기에 이미 나의 반항심은 정점을 향해가는 중이었고 툭하면 정말 ‘나쁜 길’로 빠져버릴 수도 있는, 그 정도로 불안한 존재였다. 그러니까 그 날 내려친 행위는 그저 ‘사실’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그 뒤에 가려진 진실은, 나를 혼돈 속에서 구해 준 아버지의 따듯한 손길이었다.


아마도 아버지는 잠자리에서 퍽퍽한 마음을 홀로 다스렸을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기에 어쩔 수 없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는, 이 질풍노도의 시기를 온전하고 건강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보듬어주고 싶은 부모의 감춰진 거룩함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날의 기억은 맵기도 했지만, 참 따듯했던 것 같기도 하다.


정말로 오늘 밤은, 계속해서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픈 날이다.


존경하는 나의 부모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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