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지고 나서야 그 의미를 인지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대개 그것들은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행위들로 분류된다. ‘부모’의 부재는 개 중에서도 가장 실체적이고 거대한 부담으로 치환되어 그들의 헌신 아래 있던 대상들을 무겁게 짓누른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은 비단 연인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어머니가 간단한 수술을 받으셨다. 그간 여러모로 여유가 없어 오랫동안 참아왔던 신체 특정 부위의 통증을 없애는 수술이었는데 수술 후에 나흘 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 아버지는 일시적으로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 곁을 지켜야 했기에 자연스럽게 집안일을 내가 떠맡게 되었다. 나는 부모님에게 걱정 말라고, 알아서 잘할 수 있다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 짧은 나흘 동안,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위대함을 체감하게 되었다. 정말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내가 먹을 끼니를 차리는 것부터 설거지, 빨래, 청소, 식물 가꾸기, 분리수거, 음식물 쓰레기 처리, 그 외의 자잘한 일들까지. 눈 딱 감고 한 번에 끝내자던 다짐은 두어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싹 사라졌다. 허리와 어깨는 뻐근해지고,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그다음에는 무릎이 지끈거리고 급기야는 짜증 섞인 독백이 하나 둘 튀어나왔다.
이 모든 것들을 근 30년간 묵묵히 해왔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장기간 직장을 다녔고, 대학 공부가 다시 하고 싶다며 만학도가 되셨다. 철인이나 다름없었다.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절대 마르지 않는 헌신과 희생의 원천을 지닌 것 같았다.
어설프게 집안일을 끝내고 나니 다른 일을 할 여력이 없었다. 가만히 소파에 앉아 선풍기 바람을 쐬는데 노곤하게 잠이 쏟아졌다. 그냥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30분 동안 부동자세로 어찌하여 어머니는 그토록 고결한 존재인지를 생각해보았다. 자식을 키워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아낌없이 주는 마음을 논리적으로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정말이지 웃긴 사실은, 내가 매년 집안일을 하게 되는 횟수는 고작해야 두세 번이지만 그때마다 부모님에게 잘해야겠다는 존경심에 고취되었다가 이내 다시 '내 생각만' 하는 철부지로 회귀한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나는 결핍이 많아요.' 구구절절 설명하면서 갖가지 요구사항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공부를 더 하고 싶으니 학비를 지원해달라는 둥, 회사 생활이 맞지 않으니 퇴사하겠다는 둥 가족의 희생이 필요한 시점에서 나는 언제나 ‘당연히’ 나의 의견에 따라주기를 바랐다.
그렇다. 26년 동안 나는 ‘당연함’ 속에 있었다. 입었던 옷은 빨래 바구니에 넣어 놓으면 되었고, 다 먹은 밥그릇은 싱크대에 담가놓기만 하면, 거기서 내가 할 일은 끝이었다. 군대에서 자주 했던 화장실 청소도 집에서는 단 한 번 해본 적이 없다. 기껏해야 간혹 분리수거를 하거나 청소기를 돌리는 정도가 다였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최대한 내가 원하는 모든 희망사항을 다 들어주셨다. 사고 싶은 물건, 가고 싶은 학원, 먹고 싶은 음식 중 그 무엇도 흘려듣지 않았다. 쪼들린다 싶으면 본인들의 소비를 줄였다.
이러한 일상적 행위들을 부모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 할 것들이라고 단정 짓기엔 그 범주가 너무 광대하다. 부모님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서 ‘당연함’이란 배제되어야 마땅하다. 언젠가 그런 시기가 올 것이다. 황혼으로 저무는 부모님과 한 사회의 주축 세대로 나아가는 내가 교차되는. 그때가 오면 이전과는 반대로 우리가 그들의 뒤에 ‘당연히’ 서 있어야 한다.
늘 시야에 머물던 어떤 것이 부재하게 되면 이렇듯 많은 자문과 복기의 메시지를 떠안게 된다. 부모님의 영원한 부재를 상상해보았다. 별 다른 문제 없이 흘러가던 내 인생이 만신창이가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결과이다.
지금보다 더 자주, 두 분에게 사랑을 표현하고자 한다. 포기하지 않고 버티며 지나온 날들에 진실로 감사드리고 있음을 전하고 매 순간 ‘당연해 보이는’ 숱한 일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모범적인 아들이 되고 싶다. 뒤늦게나마 짧은 부재를 통해 딱 그만큼의 의식적인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잘하자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