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럽다’는 표현이 딱 맞다.
어머니의 그토록 서러운 눈물을 보고 있자니, 나는 복받쳐 오르는 억울함과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친척들이 모두 모인 명절날, 나는 굳이 표출하지 않아도 될 ‘내 생각’들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이 때다 싶어 쏘아붙였다. 포커스는 남들과 다른 나의 독특한 행보에 맞춰지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안정과 평범한 삶’을, 나와 형은 ‘도전과 주체적 삶’을 강하게 어필하기 시작하면서 논쟁 아닌 논쟁이 벌어진 것이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모른다. 요즘은 급격히 다변화되고 있는 사회라, 아무 생각 없이 직장에 취직해 그저 그런 삶을 살아가는 건 기성세대의 구시대적인 발상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그렇게나 쏘아붙인 것이다.
어머니는, 친척들이 모두 떠나간 뒤에 강단 있는 목소리로 서운함을 표현하다 화를 주체하지 못한 다음, 결국엔 생전 보이지 않던 눈물을 주르륵 서럽게도 쏟아냈다. 순간, 나는 어떤 적절한 말을 해야 할지 판단할 수가 없어서 제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그리고 조금 후에, 그 눈물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아서 더 이상 제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애써 참으려 했지만, 결국엔 나도 굵직하게 떨어지는 눈물을 막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불이 꺼진 방으로 재빨리 들어가 ‘후’ 쉼 호흡을 하며 눈가를 쓱 문질러 닦아냈다. 그러면서 속으로 떠오르는 모든 상스러운 욕들을 마구 쏟아냈다.
‘어찌하여 나아지지 않는 것인가. 가족 중 누구 하나 분투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도대체 왜.’ 마지막엔 언제나 그랬듯 애꿎은 이 사회 탓을 살짝 해보고는, 다시 밖으로 나와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다 잘 될 거예요. 그동안 저희 둘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무시하려던 게 아니에요. 그냥, 저도 답답해서 그랬어요. 지금처럼 천천히 하나씩 해나가면 되니까 걱정 마세요.’ 힘겹게 위로를 건넸다. 그제야 어머니는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알겠다고, 다만 부모의 그 깊은 마음을 알아 달라고 하시면서 단어와 단어 사이를 인자함으로 채우셨다.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나는 어제의 그 시간들이 갑자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짓누르는 무게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거대하여 버티기 힘들 때는 잠시 내려놓고 모든 감정을 솎아내야만 한다. 그러면 조금은 후련해진 듯 붕 떠 있었던 마음이 착 가라앉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도, 형도, 어머니도, 아버지도 분명 그 시간 속에서 불순물 같은 뭔가를 솎아냈음에 틀림없다. 그 날은 우리가 가장 세차게 부딪혔던 날이고, 서로의 진심을 간과했던 날이고, 그러다가 다시 한번 믿음과 사랑을 확인하여 굳건해진 날이기 때문이다.
그분들의 그 마음을 잊지 말기를. 그리고 잃지도 말기를. 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