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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onymous Aug 16. 2017

마라톤

부산에서 열리는 지역 마라톤 대회의 비경쟁 부문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총 10km를 뛰는 코스였는데, 스타트 신호가 울릴 때까지만 해도 ‘가볍게 즐기다 와야지’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다 중반을 채 지나기도 전에 나는 급작스러운 다짐을 하나 해버렸다. ‘멈추지 말자.’, ‘걷지도 말자.’


나름 운동을 열심히 해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앞서 달리는 사람에게 지기 싫은 경쟁심이 뒤섞인 채로 끊임없이 다짐을 되새김질했다. 둘 중에서도, 경쟁심이 멈추지 않는 뜀박질의 주된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후반부에 이르러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을 때, ‘여기서 멈추면 내 옆, 그리고 저 앞에 뛰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는 거다, 지는 거다.’ 수십 번은 되뇌었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가 가진 하나의 속성일 수도 있고, ‘마라톤’이라는 대회의 성격이 주는 어떤 임무감 같은 것일 수도.


뭐든 간에, 내가 가지고 있던 근성과 체력에 새삼 놀라기는 했다. 어쩌다 보니 까맣게 잊고 지냈던 잠재력들을 하나둘씩 발견하는 시간들이 주는 생경함과 뿌듯함은 생각보다 큰 의미를 가지는 것 같다. 다시 한번 나를 믿게 되면서 발현되는 자신감은 이전의 그것보다 적어도 곱절은 부풀려진 크기로 생성된다. 특별한 경험, 일상을 재 정렬하는 이벤트들을 삶의 곳곳에 되도록 많이 설치해두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평범함과 비범함의 차이는 종이 한 장이라고 했던가. 달콤하고 안정적인 혹은 성공과 실패가 공존하는 불안한 일상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나는 당연히 후자다.


개인적으로, 이 세상에 ‘평범해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 저마다의 꿈을 꾸고 있고, 각자의 위치에서 그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 과정을 조금 더 단축시켜주는 매개체가 바로 경험과 도전이다. 도전이 많아질수록, 삶은 유희적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즐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삶을 즐긴다는 것은, 어떠한 경제적, 사회적 위치로부터 전혀 구속받지 않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과 같다. 비로소 ‘인간다워지는.’


그렇지만, 삶은 매 순간 행복과 낭만으로만 가득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나아가서, 경험과 도전을 계속한다고 해서 누구나 다 비범한 존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나를 포함하여) 코앞에 닥친 일상이 너무나 버거워 ‘특별한’ 경험이라고는 쳐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특별함은 절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상대적인 것일 뿐이다. 그저 내가 사사로이 행할 수 있는, 기존의 일상을 흔들어 볼 수 있는 정도만 된다면 그 자체로 유의미한 것임에 틀림없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것도 마찬가지 개념이다. 누군가는 이것을 전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내가 설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멈추지 않고 끝까지 달렸다면, 타인의 평가나 잣대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그리하여 도전의 순간들을 진득이 마주하다 보면 어느 순간 본인이 성숙해져 있음을 홀로 조용히 느끼고는, '잘 살고 있구나.' 옅은 미소를 이따금씩 지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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