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인 공간들에 부치는 러브레터
어떤 공간이 ‘베이스캠프’가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공간의 점유가 활동 또는 작업의 기반(‘베이스’)이 될 것, 그리고 그 공간의 점유가 일시적이고 비주기적일 것(‘캠프’). 집은 생활의 기반이 되지만 반영구적으로 점유하게 되는 공간이므로 베이스캠프로 생각할 수 없다. 사무실에 있는 개인 업무공간 또한 항구적, 주기적 점유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비일상적 필요에 따라 개인 또는 집단에게 일시적으로 점유되는 공간만을 베이스캠프라고 부를 수 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런 공간들에 매력을 느꼈다. 물론 내가 베이스캠프라고 이름붙일 만한 멋진 장소를 접하게 되는 것은 보통 스크린 안에서다. 특종의 실마리를 잡은 취재팀이 임시 본부로 쓰는 언론사 회의실. 정장 차림의 비밀요원이 치밀한 계획을 짜내는 안전가옥. 영화들은 평소라면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들까지도 베이스캠프로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대사관’은 원래 영구적으로 점유되는 유형이지만, 《아르고(Argo)》나 《모가디슈》에서 쿠데타로 인해 그 엄격한 불가침성이 도전받는 상황에서는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가 된다. 언제라도 반란군이 쳐들어올 수 있는, 그래서 탈출 전까지 일시적으로만 점유할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된 것이다. 이런 공간들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만큼이나 매혹적인 데가 있다.
그렇다고 베이스캠프에 대한 내 판타지가 대중매체를 통해서만 빚어진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일주일 동안 학교 축제를 촬영한 적이 있는데, 우리는 축제 기간 동안 아무도 쓰지 않는 교실 하나에 책상과 의자, 카메라와 컴퓨터, 스피커와 소파를 가져다 놓고는 일종의 임시 본부, 또는 클럽하우스를 만들었다. 그곳은 일을 하는 곳이기도, 쉬는 곳이기도 했다. 이런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모두—역사를 바꾸는 기사가 쓰이는 곳이나 국가의 안위가 달린 곳은 아닐지라도—비일상적이고 일시적인 공간을 가져 본 적이 있다. 여행의 설렘을 안고 도착하는 호텔은 여행의 기간 동안 우리의 활동이 기반하는 곳이다. 알아듣기 어려운 음성들과 낯선 교통 체계가 지배하는 어느 도시에서, 그곳은 휴식과 (일시적이나마) 거주의 상태를 제공한다. 우리는 하루의 관광이 끝나면 당연한 듯 호텔로 돌아가고, 너무 많이 걸은 나머지 오후부터 발이 아플 때도 호텔에서 잠깐 쉬었다 가는 것이다. 우리는 럭셔리 호텔을 리뷰한 글과 영상을 (실제로 그곳에 갈 일이 없더라도) 찾아 읽으며 호텔에 대한 우리의 낭만을 표현하곤 하는데, 이 낭만은 호텔이 모든 것이 생소한 곳에서 우리가 편안하게 점유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점과 관련이 없을 수 없다.
어린 시절 이불을 여기저기 걸쳐 만들었던 방 안의 요새, 또는 공주나 왕자가 그려진 어린이용 실내 텐트 또한 베이스캠프의 정의에 어느 정도 부합한다. 그것들이 설치된 방과 구분되는 활동 기반을 실제로 제공했다기보다는, 공간의 점유자인 어린 우리에게 그렇게 인식되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어쨌든 우리는 우리 방이 주는 일상성에서 벗어나고자 그 안에 구축된 비일상적 공간으로 향한 것이고, (부모님의 성화, 현실적 필요 등에 의해) 그곳에서 다시 일상의 영역으로 돌아가야 하기까지는 보통 하루가 채 걸리지 않는다.
비일상적 점유의 공간이라는 베이스캠프의 성격은 베이스캠프 판타지의 기저에 무엇이 있는지를 암시하기도 한다. 먼저 ‘점유’에 대한 욕망이 있다. 아무리 한시적이더라도,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준-배타적으로 점유할 수 있는 공간의 존재는 일정 정도의 안온함과 안정성을 제공한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베이스캠프는 호텔처럼 명시적으로 숙박을 위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집과 비슷한 양상으로 사용되는데, 프로젝트 룸에서 야근을 마치고 아침까지 쪽잠을 자거나, (내 경우에는) 학교 축제 중 당장 촬영해야 할 행사가 없을 때 클럽하우스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는 경우가 그렇다. 베이스캠프를 지칭할 때 소유격이 흔히 붙는다는 사실(‘내 텐트,’ ‘너희 호텔 방,’ ‘우리 회의실’) 또한 그런 공간들에 내재되어 있는 안온함을 말해주는 듯 보인다. 베이스캠프의 이런 성격은 유형으로서 카페와의 비교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데, 카페는 일시적으로 사용하지만 점유할 수 없는 공간이기 때문에—점유하게 되는 것은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좌석’이고, 그마저도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는다는 조건 하에 불온전하게 점유하게 된다—베이스캠프로 보기 힘들다. 이 점유불가능성 때문에 카페에서 안정성이나 안온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고, 카페 공간을 이용하는 어느 누구도 ‘우리 카페’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두 번째 요인은 비일상성에 대한 욕망이다. 일상으로부터의 벗어남은 그 구체적인 내용과는 별개로 꽤나 낭만적으로 생각되곤 한다. 여행이나 휴가에 대한 항구적 로망은 말할 것도 없고, 선거운동이나 집중 취재와 같이 단기적으로 격무를 동반하는 일이더라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특종을 잡은 기자들의 밤샘근무를 멋지게 그려내는 영화와 드라마와 소설은 얼마나 많은가? 명확한 목적이 동반된 비일상은 힘들더라도 매력적이다. 이 지점에서 비일상성 자체가 가지는 낭만성은 분명해진다.
베이스캠프는 그 정의상 특정한 비일상적 이벤트를 물리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베이스캠프의 존재는 그러한 이벤트의 존재를 전제한다. 비일상적 맥락이 없는 베이스캠프는 있을 수 없다. 호텔에 묵는다는 것은 여행이나 출장을 떠나왔다는 것이고, 선거캠프가 존재하려면 다가오는 선거가 있어야 하며, 안전가옥의 사용은 모종의 비밀 작전을 암시하는 것이다. 베이스캠프와 비일상성이 이렇듯 본질적인 긴밀성을 가진다면, 베이스캠프에 대한 로망은 일정 부분 비일상에 대한 그것에 의해 형성되었을 수밖에 없다. 결국 베이스캠프는 평소보다 더 신나거나, 중요하거나, 의미있는 일들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서, 또 그러한 비일상적 사건의 공간적 증거로서 매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힐데 하이넨(Hilde Heynen)은 『건축과 모더니티』에서 하이데거와 벤야민 등을 인용해 현대성의 특징을 ‘집없음,’ 또는 ‘뿌리없음’의 상태로 정의한다. 삶이 가정과 직장, 여가 등으로 분화되고 사회의 구조와 관계가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은 전통적인 삶의 방식과 공동체적 뿌리에서 비롯하는 진정한 ‘거주’의 경험을 접하지 못하게 되었다—“기능적인 ‘현대’ 집들, 방갈로, 아파트는 거주자에게 텅 빈 의미없는 껍데기일 뿐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사라진 거주가 남긴 자리는 일시적이고 감각적인 자극들의 몫이 되고, 연속적인 ‘경험’이 아닌 일시적인 ‘체험’으로 채워진다. 개인의 뿌리와 같은 ‘집’이라는 개념마저도 쉽게 바뀌고 옮겨질 수 있는 것이 될 때, 현대는 가장 분명한 방식으로 그 이전과 구분된다.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지만, 그 어느 곳에도 뿌리내릴 수는 없다. 현대를 맞은 우리는 한편으로 공동체와 거주의 상실을 애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항상 새로운 일을 하고 색다른 여가를 즐기며 이곳에서 저곳으로 바삐 움직이는 ‘항구적 비일상’을 멋진 현대적 삶으로 인식한다. 베이스캠프는 그러한 현대의 양가적 조건에 가장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유형이다. 베이스캠프가 우리의 점유에 대한 욕망을 일시적으로나마 만족시켜 주는 것은, 사라진 거주의 흔적을 현대의 제약 안에서 희미하게 재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험해 보지 못한 거주에 대한 그리움을 ‘일시적 점유’의 형식을 통해 위로하는 것이다. 그러나 비일상성을 전제하는 공간으로서의 베이스캠프는 (그러한 그리움과 별개로) 거주에 묶여 있기보다 개인적이고 유목적인 비일상을 지향하는 우리의 삶의 방식 또한 지원한다. 그래서 베이스캠프는 현대의 두 가지 욕망을 표현하고 포용하는 현대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어떻든, 이것은 모든 일시적인 공간들에 부치는 러브레터다. 내가 베이스캠프라는 유형에 남들보다 더 매료돼 온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주는 색다름과 안온함은 분명히 특별하다. 일상으로부터의 변화는커녕 일상마저 어려운 전염병의 시대에 베이스캠프가 우리와 점점 멀어지는 것은 그래서 아쉽다. 언젠가 호텔에, 클럽하우스에, 또 다른 어떤 공간에 조금 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점유와 비일상에 대한 현대적 판타지는 아마도 가장 명징해질 것이다.
참고문헌
Heynen, H. (2013). 건축과 모더니티(이경창, 김동현 공역) (초판, pp. 17-38, 121-145). 시공문화사 Spacetime. (원서출판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