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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일기 Aug 12. 2018

[출간이야기]원고 수정을 시작하다

초고는 쓰레기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 내 세상이 180º 바뀔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더 잠잠했다.


내가 지금 계약을 끝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런 변화가 생기지 않았던 탓이다. 뭔가를 더 하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덜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리에 앉아 어떤 변화가 생기려나 두근두근 기대하게 되는 딱 그 정도의 나날들.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것도 없었고 전달받은 것은 더더욱 없었다. 내 일상은 놀랍도록 여유로워졌다.

보통 원고를 수정하지 않나? 그런 생각으로 파일을 열었다. 아직 완고를 전송하지 않았으니 원고 수정이라도 해 볼 참이었다. 그렇게 파일을 열고 하나하나 읽어나갔다. 읽다 보니 자괴감이 몰려왔다.



지금 글을 이지경으로 써 놓고 투고를 했던 건가?



중간중간 보이는 오타에, 쓴 이유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서술들. 말도 안 되는 비유들이라던가 괜히 허세를 부려보겠답시고 끄적거렸던 문장들도 가득했다. 순간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러워졌다. 나름대로 잘 썼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글을 다시 보는 순간 그 환상은 깨져버리고야 말았다. 많은 작가님들이 '초고는 쓰레기'라고 하는 이유를 그제야 짐작할 수 있었다. 정말 쓰레기를 세상에 풀어놓을 뻔했구나. 소름이 쫙 돋아 그 자리에서 다시 원고를 수정하기 시작했다. 문장을 다듬고 몇몇 문단은 아예 새로 작성했다. 그러다 보니 내 원고의 문제점이 어렴풋이 보였다.

대체 중요한 게 뭘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어떤 편집장님께서는 내게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조금 부족하다고 이야기해 주신 적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그 말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었는데, 퇴고를 하며 쭉 읽어보다 보니 그 조언이 어떤 것을 의미하고 있었는지 확 와닿았다. 그러나 이제 와서 수정하기엔,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출판사에서는 추가 원고를 요청했다. 몇몇 주제로 글을 조금 더 써 주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다. 추가 원고를 쓰기 위해 노트북을 열었지만 그 때문인지 한 문장을 쓰는 것도 힘들었다. 한 꼭지를 겨우겨우 완성해 친구에게 보여주니 '이전의 글들은 좋았는데, 네가 지금 보여준 글은 크게 흥미롭지가 않아.'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겨우 한고비 넘었다, 싶었는데 또다시 슬럼프였다. 애써 붙잡지 말고 하루 정도는 쉬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노트북을 덮고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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