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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이야기] 원고 퇴고를 끝내다

슬럼프 극복

by 여름밤일기

슬럼프가 그리 길게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 이때쯤 슬럼프가 찾아올 것임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슬럼프가 찾아온 것을 비교적 빨리 인정한 것이 맞겠다. 지금은 더 이상 글을 못 쓸 것 같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냉큼 노트북을 덮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언젠가 또 계기가 있다면 당연하다는 듯 글을 쓰게 될 것을 알았기에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다만, 원고를 빨리 전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약간의 초조함만이 나를 쪼아대었을 뿐.


다음 날은 일이 있었다. 바쁘게 어딘가로 가야만 했고, 그렇게 가는 길 혹시나 싶어 노트북을 챙겼다. 그리고 차에 올라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글이 이상하게 보이는 것이야, 초고니까 그럴 수 있다. 엉망인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처음 '책'을 쓰는 것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것을 다듬으려고 출간까지의 유예기간을 길게 잡은 것 아니겠나. 내 글이 깔끔하고 정돈된 것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신선하다거나 재미있게 느껴질 것 같긴 하다. 단점을 찾아내기보다는 장점을 찾아내기 위해 애썼고, 그러면서도 내 글에서 부족한 점들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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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다 보니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대로 작성한 것이다 보니, 꼭지별 주제가 명확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문제인듯했다. 이미 완성해 넘긴 글들은 어쩔 수 없다지만, 지금부터 써야 할 추가 원고는 그 부분을 염두에 두고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생략한 이야기들 중에 포인트가 될 만한 주제들이 있나 고민해보니 생각보다 많은 에피소드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쓰고 싶은 에피소드들을 떠올린 후, 내가 이 책을 선물하고 싶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 누구보다도 짙은 기억을 남겨주었던 내 여행의 소중한 일행들. 다른 그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좋은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마음으로 다시 노트북을 열었다. 덜컹거리는 버스 안, 그 누구보다도 멀미가 심한 나였지만 잠시간 그 모든 것을 잊을 정도로 글 쓰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쓰다 보니 원고를 얼추 마무리할 수 있었다. 출판사의 교정교열이 이어질 것을 알고 있었고, 그 교정을 통해 글이 조금 더 다듬어지기를 바라며 출판사로 초고 완성본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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