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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일기 Jan 15. 2019

오르홍 폭포를 만나다

아침에 눈을 뜨니 하늘이 온통 흐렸다. 새벽 나절에 본 보석 같은 별들이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데 아침엔 푸른색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을 만큼 사방에 희끄무레한 구름이 가득했다. 아쉬움을 느끼며 채비를 마치고 밖으로 향했다.



“스노(Snow)!”

“네?”

“스노, 스노!”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기사 아저씨들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스노우”를 외친다. 의아한 표정으로 뒤를 도는 순간 내 눈에 들어온, 눈 쌓 인 8월의 산봉우리. 저 먼 산에 하얗게 눈이 쌓인 게 보인다. 8월에 눈을 보고 있다니, 하루 새 계절이 바뀌기라도 한 걸까? 몽골의 모든 날씨를 겪고 가는 것 같다는 건 농담이 아니었다. 눈만 내리면 완벽하겠다는 나의 이야기가 이렇게 현실로 이루어졌다. 굉장히 낭만적이면서도 얼떨떨한 순간이다. 쌀쌀하다 못해 추운 날씨여서, 가져온 패딩을 껴입고 스카프까지 목에 칭칭 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한 폭포엔 물이 가득했다. 간밤에 내린 비 덕분이라고 했다. 물이 아래로 쏟아지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정말 그림 같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런 풍경을 멋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이번엔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것들이 너무 멋있었다. 조금 맑아진 하늘과 그 하늘이 비친 폭포. 폭포의 뒤로 보이는 풍경에서는 폭포의 역동적임과 상반되는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마법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의 ‘9 와 4분의 3 정거장’ 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이곳과 다른 장소들 사이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내가 지금까지 본, 그리고 내가 알고 있던 몽골과는 다른 몽골, 몽골 속의 몽골을 만났다. 너무나도 이질적인 풍경 덕분에 판타지 소설 속 한 장면이 재현된 것 같은 느낌이 물씬 들었다.



바람이 불었고 내 뒤로는 계곡물이 빠르게, 그러면서도 잔잔하게 흘러내려가고 있었다. 머리 위로는 매가 낮게 날고 여기저기 빛바랜 현무암이 있는 곳.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가족 여행 겸 많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한참을 구경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을 잊었다. 단체 여행의 특성상 빠르게 진행되던 일정에 여유라는 것이 나타난 순간이었다. 원래의 나는 아주 게으른 여행을 선호했는데, 이곳에서만큼은 그 스타일을 고수하며 주변의 것들을 즐길 수 있었다. 혼자 생각하고, 내가 보기에 좋은 곳에선 계속 머무를 수 있는 곳. 우리 일행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자신이 원하는 장소에서 폭포를 마음에 담았다.


이곳을 떠나야만 한다는 것이 너무 아쉽고 또 아쉬웠다. 몇 발짝 걷다 돌아보고, 다시 몇 발짝 걷다 돌아보기를 반복했다. 조금 더 보고 싶은 풍경이 눈에 띄면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다시 그 자리에서 미적거렸다. 다행히 그것은 다른 일행들도 마찬가지인지 우리가 차로 돌아가는 시간은 폭포로 올 때보다 몇 배로 길어졌다.



그렇게 걷는데 앞으로 한 무리의 염소 떼가 보였다. 아니, 우리를 향해 전진하는 염소 떼였다. 사람을 피해 도망가는 동물의 무리는 많이 보았으나 다가오는 아이들은 처음이었다. 그 모습은 흡사 인간과 염소의 전쟁이 발발한 것과도 같아 보였다.


염소들은 힘차게 다가왔다. 그리고 우리의 근처로 다가와서는 한가롭게 풀을 뜯어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가까이서 염소나 양을 본 것은 처음이기에 그들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한참을 지켜봤다.


염소들은 풀을 뜯다가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서로 뿔을 치대며 싸워대기도 했다. 딱딱, 뿔이 부딪히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들려왔다. 덩치 큰 다른 염소가 한참을 싸우는 두 염소 사이에 끼어들더니 둘을 분리시켰다. 싸워대던 둘은 언제 싸웠냐는 듯, 다시 평화롭게 풀을 뜯었다. 큰 염소는 자신이 할 일을 다 마쳤다는 듯 다시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뭐랄까, 염소들의 생리를 조금이나마 본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해야 할지.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었다. 다음 목적지까지도 한참을 달려야 했기에 한시라도 빨리 출발해야만 했다. 올 때처럼 다시 우르르 멀어져 가는 염소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할 푸르공에 올라탔다. 차는 다시 움직였고, 그렇게 멀어지는 염소 떼와 폭포의 모습이 새삼 다시 아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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