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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밤일기 Jan 22. 2019

몽골에서 맞이하는 스물두 번째 생일

내 몽골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날

내 몽골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날, 소중했던 날, 그리고 마법같이 아름답고 황홀했던 순간. 이날은 나의 스물두 번째 생일이자 몽골에서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오전 일찍부터 온천욕을 하러 간 일행들을 기다리며 짐을 싸고 있을 무렵 가이드 언니가 냄비를 손에 들고 게르로 들어왔다. 평소와는 달리 냄비의 뚜껑이 꼭 닫힌 채였다. 메뉴를 궁금해하며 뚜껑을 열어보니 건더기가 듬뿍 든 미역국이 한 솥 가득 담겨 있었다. 여행지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생일날 아침이 미역국이라니. 예상도 하지 못한 터라 더더욱 놀랍고 또 감동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밥에 굶주린 우리 일행들도 하나둘씩 게르로 돌아왔다. 그리고 시작되는 조촐한 생일 파티.


“하나, 둘, 셋!”



상상도 못 한 파티였다. 여행 초반에 일행들에게 내 생일을 알리기는 했으나 마지막 날까지 이것을 기억해줄 것이란 기대는 크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숫자를 세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생일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해서 눈물이 난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비로소 실감한 듯하다.


하늘은 푸르렀다. 온천에 몸을 담그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손가락 하나를 물에다 담가보고 다시 푸르공으로 향했다. 설레는 하루의 시작, 그 순간 우리 모두가 함께였기에 더더욱 기뻤다. 


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풍경이 사랑스러웠다. 혼자서라도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했던 노래가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고, 같은 노래를 수도 없이 반복해 들으면서도 지겨움을 몰랐다. 마음이 부풀어 올라 ‘펑’ 하고 터져버릴 것 같은 날이었다.



행복감은 이내 또 아쉬움으로 물들었다. 풀을 뜯는 말, 소, 야크들과 차 바로 앞을 날아다니는 매. 그리고 그 옆의 독수리. 오늘로 공식 일정이 끝난다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무슨 마법에라도 걸린 양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눈앞에 펼쳐진 몽골의 풍경과 오전에 문을 열었을 때 보이는 푸른 초원, 평화로우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 이제 또다시 이 모든 것들이 추억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그저 아쉽고, 아쉽고, 또 아쉬울 따름이었다. 언제나 마지막은 아쉬운 법이라지만 보통 시원섭섭한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그냥 ‘섭섭’만 남았다.




“이 멤버 리멤버” 하고 외치는 목소리들이 정겹다. 과연 우리가 다시 이렇게 여행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지금의 멤버가 또다시 모여 같은 곳을 여행할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순간 저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버텨내기 위해 흩어질 테니. 그래서 더더욱 

소중한 오늘이다.


이제야 이리저리 흔들리는 푸르공에 좀 익숙해졌는데, 이제야 차에서 조금 편안히 잠들 수 있게 되었는데. 힘들었지만 즐겁기만 했던 순간들이,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은 풍경들이 머릿속을 쉼 없이 맴돌고 또 어지럽혔다.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기에 마지막이 더더욱 아쉽다.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초원 한가운데에 차를 세웠다. 주변에 그 어떤 인적도 느껴지지 않는 곳에 오직 우리만이 앉아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옆은 가파른 비탈이었고, 아래로 더 넓은 초원과 물길이 이어졌다. 굉장히 정적인 풍경이었으나 그 속에 모형처럼 자그마한 동물들이 돌아다니는 모습 정도는 쉽게 확인할 수 있었기에 그리 심심한 풍경 또한 아니었다.



세차게 바람이 불어오는 비탈의 끝에 서서 넓은 풍경을 마음에 담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껏 나를 심란하게 한 우리의 마지막도, 어떠한 아쉬움이나 즐거움마저도.


점심은 컵라면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먹는 컵라면이었던지라 반가움이 앞섰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인스턴트 음식에서 느껴지는 그 향에 속이 부대꼈다. 대충 끼니를 때운다는 생각으로 해치운 후 다시 이동했다.


우리는 몇 번의 마트를 들렀고, 아주 오랜만에 포장도로를 달렸다. 전쟁 같았던 어제와는 달리 기가 막히게 평화롭고 또 안정적인 길이었다. 새삼 포장된 길에 대한 감사함이 차올랐다. 우리가 마트에 들렀을 때, 나는 예상치 못한 선물을 또 받게 되었다.


마트 안을 종횡무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닐 때였다. 우리의 기사님인 토모루가 아주 신중하게 초콜릿을 고르는 모습이 언뜻 보였다. 이것저것 비교해가며 한참을 들여다보는 모습에, 나중에 돌아가서 아들에게 주려고 하는 건가 생각하며 그 뒤를 무심히 지나쳤다. 몇 가지의 과자와 음료를 집어 들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입에 문 채 마트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나의 모습을 본 토모루가 손짓으로 나를 부르더니(우리는 서로의 말을 하나도 알지 못했기에 보디랭귀지가 최선이었다) 그렇게 신중하게 고른 초콜릿을 슬쩍 건네었다.



“함트 데레(같이 먹어).”


일행들을 가리키며 함께 먹으라는 이야기를 건넨다. 그러면서 함께 보여주는 웃음이 너무나도 순박하고 반갑다. 참으로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지 않은가. 내가 좋아하는 몽골의 풍경들 속에 사람들의 모습을 함께 그려 넣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 친절하기 마련이어서 내 몽골 여행은 더더욱 아름답고 따뜻한 색으로 물들어가곤 했다. 나는 그것이 퍽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또다시 이동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마지막 숙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니 고비를 바로 앞에 둔, 작은 게르 캠프였다. 어디를 봐도 썩 깨끗하고 좋은 환경은 아니었으나 나는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멀리 보이는 미니 고비의 야트막한 모습과 그 앞으로 보이는 커다란 물. 호수인지 개울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던 그 물 위에는 백조 다섯 마리가 줄을 맞춰 헤엄치고 있었다. 좋은 날씨, 그리고 좋은 풍경. 별로 특별할 것 없었던 나의 생일이 그 어떤 날보다 아름답게 장식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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