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밤일기 Jan 29. 2019

몽골에서 찍은 열 장의 단체 사진과 허르헉 파티

이토록 소중한 인연들

오후 일정은 ‘말타기’였다.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면 말을 타본 적이 없었고, 살아 있는 동물의 위에 올라탄다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나와 함께 갔던 친구는 이미 승마 여행을 하고 왔던 터라 말타기에 익숙해 보였다. 마주(馬主) 아저씨가 고삐를 잡고 가되, 승마를 할 줄 아는 친구는 혼자 가기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출발.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 아저씨? 저 버리고 가시면 안 돼요! 아저씨!”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저씨가 내 말의 고삐를 놓아버린 채 나를 먼저 출발시켰다. 아저씨는 한국어를 할 줄 몰랐고, 나는 몽골어를 할 줄 몰랐다. 아저씨를 애타게 불러보았으나 내 옆을 지나쳐 간 아저씨는 내 쪽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말 위에 덩그러니 앉아 아저씨를 외치고 있으니 친구가 옆으로 와서 요령을 가르쳐준다.


“고삐의 길이를 같게 하고, 박차를 가해봐. ‘추!’ 하고 외치면 말이 앞으로 갈 거야.”


목을 살살 쓰다듬어 주고, 고삐를 감아쥔 채 말의 아랫배를 살짝 찼다.


“오, 오! 간다, 가!”


한 번 움직이기 시작하니 속도를 내거나 줄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아니, 줄이는 것은 말이 알아서 했고 나는 빨리 좀 가달라며 재촉하는 것밖에 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터벅터벅 걷는 말의 움직임에 맞춰 내 몸도 함께 터벅댔다. 안장에 부딪히는 엉덩이를 구해내자 옆으로 메고 있던 카메라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꽤 즐거웠다.


덜컹대며 부딪히는 카메라에게 백 번 정도 사과를 건네었던 듯하다. 그러다가 결국 카메라의 안전을 반쯤 포기하고서야 주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낮은 모래 언덕들, 여기저기에 보이는 돌산, 그리고 앞서가는 일행들. 앞서가는 모습이 《순례자》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살아 있는 생명과 함께한다는 것은 아주 신비하고 묘한 일이다. 방향 조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원하는 방향 쪽의 고삐를 당겼는데 말이 투레질을 하며 고개를 틀었다. 왜 귀찮게 구느냐고 성질을 내는 것 같기도 하고, 얼핏 짜증을 내는 것 같기도 했다. 울상을 지은 채 말을 바라보다가 옆을 지나가는 친구에게 방향을 트는 방법을 물어보니 부드럽게 움직여야 한단다. 부드럽게? 대체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부드럽게 당기라는 뜻인가?


친구의 모습을 한참이나 관찰하고서야 무슨 의미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당기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고삐를 움직이는 것이구나. 슬쩍 손을 들어 오른쪽으로 고삐를 옮기니 말이 자연스럽게 방향을 틀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교감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이 말에게 더 애정이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고삐를 잡은 손을 아래로 내리고 있으니 손으로 말의 체온이 전달되었다. 꿈틀꿈틀 움직이는 말의 근육이 느껴지고, 가만히 그것을 느끼고 있다 보니 이 아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더더욱 와 닿았다.


어느 정도는 걷다가, 또 어느 정도는 빠르게 걷기를 반복했다. 그새 말의 움직임에 익숙해졌는지 말이 걷는 동안 주변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혼자 타박타박 뒤를 따라가는 나를 본 일행들이 부럽다며,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던졌다. 그것은 아마 사실이었을 것이다.


달그락대는 말의 움직임 때문에 엉덩이가 아팠지만 그래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신나게 즐겼으니까. 고삐에 반복해서 스친 살갗이 살짝 까지고 무릎이 저렸지만 그래도 마냥 즐겁기만 했다.




“언니, 저 말 혼자 탔어요!”

“혼자 탔어요? 아주 잘했어요!”


우리가 말에서 내리니 말들은 주인과 함께 몽골의 초원을 신나게 달려 사라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탔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속도로 달리는 말들을 바라보며 가이드 언니에게 잠깐 자랑을 하고, ‘참 잘했어요’ 도장처럼 칭찬을 건네는 언니를 뒤로한 채 방에 들어가서 휴식을 취했다. 가이드 언니들은 오늘 저녁에 예정되어 있는 ‘허르헉 파티’를 준비한다고 했다. 뭔가를 분주하게 준비하기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찾다가 남은 폴라로이드 사진 필름을 몽땅 소진해버리기로 결정했다. 우리의 일행은 가이드님과 기사님들을 모두 합쳐 총 열 명. 딱 그 정도의 필름은 남아 있는 상태였다.


캠프의 요리사라는 분에게 부탁해 총 열 장의 단체 사진을 찍었다. 몽골에서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 그리고 가장 따뜻한 사진이 이 순간에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같은 듯 다르고, 다른 듯 같은 사진 열 장을 한데 모아 뒤집고 랜덤으로 사진을 가져갔다. 어떤 포즈를 한 사진이 걸렸을까, 그런 기대감에 부풀어 사진을 확인하고 가방 속에 소중히 보관했던 우리들.



따뜻하게 비치는 햇살과 그 아래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낭만적이었다. 분주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차분했던 오후, 나는 우리 일행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이 순간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의 애틋한 마음은 이어진 허르헉 파티로까지 이어졌고 여기서 모든 일행이 함께 모여 나의 생일을 다시 축하했다. 초코파이를 이용해 케이크를 만들고 준비해 온 향초에 불을 붙여 생일 촛불을 대신했다. 그렇게 나의 스물두 번째, 그리고 오늘의 두 번째 생일 파티가 시작되었다.


“앞으로도 행복하고, 하는 일들도 다 잘 될 거고….”


일행들은 나 몰래 준비해둔 선물을 꺼내 주며 덕담을 함께 건넸다. 그러나 나는 그 덕담들을 제대로 듣지는 못 했다. 이미 그때쯤 눈물이 터져 펑펑 울어대고 있었기 때문에. 너무나도 고맙고, 감동적이고, 행복하고 또 행복해서. 이렇게까지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가이드 언니들과 기사님들이 돈을 모아 준비해준 커다란 초콜릿과 와인, 일행들이 써준 생일 축하 편지, 그리고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게르 캠프의 요리사 D가 건넨 음료수까지. 일행들의 선물을 바리바리 품에 끌어안은 나는 이 순간 세상 그 누구보다도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선물을 따로 준비하진 못했다고 이야기하던 다른 일행들은 차에서 앰프를 꺼내 오더니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재생시켰다. 부족한 건 단 하나도 없었다. 맛있는 음식에 시원한 맥주, 내 품에 가득 안긴 선물들과 지금까지의 여행을 함께한 우리 일행들까지. 이미 차고도 넘칠 만큼 많은 것을 가져서 다른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이 순간이 너무나도 만족스럽고 또 사랑스러웠을 뿐이다.


한참을 울고 나서야 눈물을 그쳤다. 행복하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울어본 건 난생처음이라, 낯선 것 같기도 하면서 기쁘기도 했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내게 만족감을 부여했다.


이제 남은 것은 ‘맛있는 식사’뿐. 푸짐하게 준비된 허르헉을 늘어놓고, 고기가 얼추 식기를 기다리며 냄비에 함께 넣었던 돌을 꺼내 손에다가 마구 비볐다. 손이 촉촉해진다나, 뭐라나. 그리고 바로 식사 시작.


커다란 고기를 한 손에 들고, 다 같이 건배하고 먹고 놀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하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하던지.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다들 흐르는 시간에 기꺼이 몸을 던졌다.




우리 일행은 아주 오랫동안 바깥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뒤쪽으로 자작나무가 흔들리고 더 먼 곳에서 해가 붉게 지기 시작할 때까지,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도 더 오래. 캠프파이어를 하듯 둘러앉아 이 여행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우리의 여행이 어땠는지 이야기하고 또 공감했다. 함께여서 더 즐거웠노라 이야기하는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한가득이었다. 그렇게 개어가는 우리의 마음을 따라 하늘도 점차 개어가는 듯했다.


해가 완전히 지며 날이 쌀쌀해졌다. 이제 해산하자며 흩어지는 우리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올려다본 하늘, 쏟아질 것 같은 별빛들의 향연. 밤하늘이 시끄러웠다. 색색의 별들이 저마다의 빛을 내며 잔뜩 반짝이던 몽골의 밤, 소란스러웠던 우리의 하늘.



별들의 소란스러움만큼이나 호들갑을 떨어대던 우리는 돗자리를 펼치고 그 아래에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자글자글한 은하수가 하늘을 길게 가로지르고 수도 없이 많은 유성들이 하늘을 가르며 떨어졌다. 날은 살짝 추웠고 온 동네가 개미 밭이었으며 미니 고비라는 이름에 걸맞게 사방이 온통 모래였지만 그래도 개의치 않았다.


달은 이제 막 떠오르는 중이었다. 덕분에 하늘의 별과 은하수를 너무나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이리라. 선물 같은 하루였다. 맑아진 하늘, 일행들의 축하, 혼자 탔던 말과 눈앞에 펼쳐진 사막. 그리고 그 사막 위로 쏟아지는 별들.


하늘에는 여전히 유성이 마구 떨어지고 있었다. 생일 축포는 이것으로 대신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마저도 나의 생일을 축하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온 세상이 너는 오늘 행복해야만 한다고, 이것보다 더 행복해져야 마땅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온 마음 가득 빈틈없이 행복해졌다.



모두가 들어간 밤, 하루의 끝이 찾아올 때까지 밖에 홀로 누워 은하수를 보며 노래를 들었다. 정말로 행복하고 또 아쉬운 날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내일은 한국으로 가야만 한다는 사실이.



이전 14화 몽골에서 맞이하는 스물두 번째 생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